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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의 흔적과 현존 - 박세희 'Mig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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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6-02-05 16:44 조회5,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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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의 흔적과 현존 - 박세희 ‘Migration’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는 삶은
    언제나 새로운 살림살이와 낯선 구조 속에
    라는 주체를 밀어 넣게 된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이동의 삶으로서,
    자궁에서 지구로,
    그리고 지상에서 이후의 어떤 곳으로 옮겨가는
    생성과 소멸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박세희 작가노트

    영상과 사진, 복합매체 설치작업 등으로 세상 삶의 생성과 소멸, 이주, 그 흔적들에 대한 사유와 시각이미지를 연출해내는 박세희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4일부터 17일까지 [Migration]이라는 제목으로 마련된 이 전시는 대부분 유목적 풍경연작들이다. 주로 사진으로 기록된 평면이미지들과 영상이미지 설치형태로 이동’ ‘비어있는 공간’ ‘개인의 방’ ‘공간의 안무4개의 주제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동·이주는 박세희 작업에서 중심부를 이루는 주요 테마다. 현대사회와 사람살이의 일반적 풍경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인데, 일상적인 이동의 연속으로서 우리 삶이 늘 중간지대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나 문명이나 전자매체나 유목이 일반화된 요즘의 세상에서 박세희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거나 그 모두에 속하거나 하는 확장된 개념의 중간지대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삶의 단상들을 채집해 왔다. 지난 해 말레이시아 체류 중에 이방인으로서 접했던 또 다른 삶의 중간지대 풍경들을 사진이미지로 담아와 이곳에 옮겨놓았다.

    비어 있는 공간연작은 폐허인 듯 버려진 듯 낯선 공간을 탐험하면서 이라는 잔해 속에 배어있는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내밀한 교감과 사유로 접속해보는 작업이다. 특히나 도시개발들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날 것 상태의 공간들에서 본래 삶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낯선 풍경이 되어버리는 현장을 경험하고 이를 이미지로 기록해놓은 것이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적 삶의 현장이기도 한 인적이 희미해진 공간에 넝쿨과 자연생명들이 새로운 체류자가 되어 무성하게 서식해 있고, 그들 틈새에 몇 개의 오브제들을 의도되지 않은 듯 옮겨놓아 결코 비어 있지 않은 낯선 공간을 연출하고 이를 다시 이미지로 담아내었다.

    개인의 방은 또 다른 나를 구획하는 지극히 사적이면서 심리적인 공간에 대한 반추의 작업이다. 찌든 땟자국, 뜯겨진 벽지와 낙서로 드러나는 몇 겹의 삶들을 발굴해내는 것은 일정하게 구획지은 빈 공간에 방안공기처럼 떠도는 여러 거주의 흔적들, 평안과 은둔과 비탄과 실존의 기운들을 방문자의 시선으로 되비춰내는 것이다. 더불어 이동식 휴식처이자 임시숙소인 텐트와 그 안팎으로 벌여진 잡다한 생필품들의 풍경을 정지화면 같은 모니터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거주공간에 관한 방송뉴스가 흐르도록 해서 결코 정지나 단절이 아닌 이동과 머물음에 관한 복합적인 시지각 경험을 유도한다. 박세희는 낯선 장소가 나를 에워싸는 개인적인 공간이 되는 것은 그 낯선 공간이 나라는 주체와 관계하게 되어 내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내주, Dwell)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공간의 안무몸의 질서, 율동적인 움직임, 형태 특히 몸이 표현하는 다양한 동작들과 건축물을 인식하고 사용하고 즐기고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을 결부시켜 바라본 볼프강 마이젠하이머(Wolfgang Meisenheimer)의 생각을 대입시켜 본 작업들이다. 실제로 박세희 작업에서 건축적인 공간과 구조는 자주 등장하는 시각적 요소이다. 작가 자신도 건축과의 관계는 그 공간을 안무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전체 구조와 부분들의 조합, 창과 벽의 화음, 공간의 구조들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직선, 장식적 요소들의 반복과 변화이런 물리적 공간의 구성들이 느낌과 사유, 기억을 통해 나의 공간으로 인식되게 한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공간의 내부에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은 그 풍경을 담아내는 창이나 문틀이 스테인드글라스 또는 영사막이 되어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해 준다. 여기에 박세희는 비춰지는 풍경을 다른 곳의 이미지로 바꿔 넣어 또 다른 실내공간과 외부풍경의 조합을 연출해낸다. 어떤 경우에는 과거 공공묘소였던 공간이 지금 새 출발하는 신랑신부들의 웨딩포토 촬영장소가 되고 일상 휴식처가 되기도 하며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생활 속 공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도시개발의 힘이 번져들어 오는 발산마을 어느 폐가의 벽면이 크고 작은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쇠락한 생의 흔적들과 함께 대형 천에 실사이미지로 담겨져 전시공간에 벽처럼 설치되어 있다. 이미 본래의 장소에서 사진으로 기록되어 이동된 이 이미지는 불안정한 현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듯 계속해서 바람에 너풀거리고, 그 한쪽에 6개월간 기록한 발산마을 풍경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40분 영상으로 압축되어 투사되고 있다. 작년에 진행한 <중간지대 프로젝트-발산마을> 작업이다.

    올해 신작인 <고인돌>은 검은 장막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이 위로부터 불에 타들어가다 화면이 열리고 고인돌 풍경이 드러나는 2분 영상이미지다. 고인돌은 과거 어떤 이의 주검의 묘소다. 그 고인돌은 과수원 속 풍경의 일부로 현재의 삶과 함께 공존한다. 고인돌이 단순한 돌덩이이거나 어떤 소멸을 간직한 흔적이거나, 때로는 역사의 어떤 지점과 현세를 연결하는 매개물이든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에 따라 가리워질 수도 있고 드러날 수도 있다. 소멸과 흔적 현재의 삶이 하나의 연속선에 있음을 시각이미지로 말해 온 박세희의 묵시적 표현인 셈이다.

    디지털시대 우리의 삶은 시간과 공간의 퇴적이 이루어질 만큼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떠도는 삶들이 대부분이다. 이동·이주가 일반화된 요즘의 풍경 가운데서 생성과 소멸과 그 흔적들을 재발견하고 기록하고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유목하는 여행자로서 자신과 모두의 현재를 중첩시켜내는 박세희의 이번 전시는 그 자체로도 작가행로 중 일시 멈춘 상태의 중간지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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