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서양화단을 태동시킨 화가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04-29 21:23 조회8,86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호남 최초 서양화가 김홍식의 ‘욕장’(1958, 왼쪽)과 한국 첫 추상화가 김환기의 ‘아침의 메아리’(1965) 남도 서양화단을 태동시킨 화가들 남포미술관 10주년 특별기획전유입기부터 세대별 작가 조명호남 화맥과 예술개념의 분화 남도 서양화단의 초창기부터 형성과정의 주역들을 만나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흥 남포미술관이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과거 속에서 미래를 보다’ 전시회로, 지난 24일 시작해 오는 5월 24일까지 한 달간 이어진다. 근대문명의 유입기에 서양화를 유학하고 돌아온 일제시대 양화가들과, 그들로부터 미술수업을 받고 지역화단을 가꾸면서 여러 유형으로 분화해 간 제자세대 작품을 통해 역사를 되짚어보는 전시다. 전시는 1920년대 중반 이후 광주·전남 서양화단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1세대 양화가 3인과, 이어 1930년대 말부터 태평양전쟁시기 일본 유학파 가운데 16인, 이들의 제자세대 중 타계한 7인까지, 크게 3대에 걸쳐 26명의 작품 1∼2점씩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기획전에는 일부 유학파 작품이 비록 후대의 것이지만 새로 찾아지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취지를 살리기 위해 시골벽지 미술관에 23점을 대여해 주어 전시의 진가를 높여주었다. 첫 전시실에는 양화 1세대인 김홍식, 오지호, 김환기 3인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여수출신 김홍식이 호남 최초로 1928년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3년 뒤 화순의 오지호가 같은 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양화 유입의 물꼬가 터졌다. 이어 신안출신 김환기가 1936년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를 졸업하게 되는데, 이들에 의해 남도 서양화단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셈이다. 김홍식은 여수에서 청년활동과 민족개화운동을 펼치다 부친 작고 뒤에야 다시 붓을 들게 되다보니 호남최초 서양화가라는 위치가 퇴색되었다. 오지호는 민족문화론 예술철학을 바탕으로 약동하는 자연의 생명력과 태양의 광휘를 한국적인 색감과 현장감흥으로 담아내는 호남 구상회화의 토대를 다지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한국 첫 추상화가 김환기는 재학시절 아방가르드 미술운동부터 이후 신미술과 민족문화 전통요소의 접목시기를 거쳐 우주적 세계관의 추상회화를 펼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펼쳐내었다. 이 지역에 서양화단의 기초가 다져지는 시기는 1940년대 중반부터다. 일본유학파들이 귀국 후 미술활동을 시작하고, 외지인이지만 이곳에서 활동한 작가까지 20여명 정도의 유학 2세대들이 목포미술동맹과 목포미술원(1946년), 녹영회(1946년), 황우회(1946년), 광주미술연구회(1948년) 등을 결성하며 목포와 광주를 중심으로 초기 화단을 일구었다. 대체로 일본 외광파에 기초를 둔 자연주의 구상화풍이 주류이면서, 출신학교 성향에 따라 주관적 대상해석과 표현형식에 비중을 두기도 한다. 이들 활동에 의해 ‘호남화단’이라 할 만한 전문집단이 형성되고, 미술개념에 관한 지상논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교직과 작품활동을 병행한 이들에 의해 후진이 양성되면서 지역미술계가 점차 두터운 토대를 다져나간다. 이 섹션에는 강동문 강용운 고화흠 김동수 김보현 김수호 김영렬 김영자 배동신 백영수 손 동 신재호 양수아 양인옥 윤재우 임직순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학파이면서 작품이 확보되지 않은 문동식 문 원 백홍기 천병권 등은 전시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지역 서양화단이 근대기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시기는 대개 1950년대 말 60년대 초 무렵이다. 유학파 스승들로부터 미술수업을 받은 후학들이 청년세대를 이루면서 미술인구나 활동방식에서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1958년 목포 ‘십대전’, 1964년 광주 ‘현대작가 에포끄회’ 같은 현대미술운동도 그 예다. 작품 또한 주관적 변형이나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모색하는가 하면, 추상·비구상으로 현대성을 모색하는 작업까지 훨씬 폭넓어져 간다. 이들 세대에서 아쉽게도 일찍 작고한 일곱 작가를 초대하였는데, 구상계열이면서 서로 다른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던 국용현 진양욱 오승윤 최쌍중과, 비정형회화로 비구상·추상미술을 일관되게 추구한 정영렬, 최종섭 등이다. 여기에 특별초대로 손상기가 포함되었는데, 39세 짧은 생애동안 소시민의 삶과 시대의 그늘을 거친 표현성과 우울한 풍자로 기록해 내었다. 이번 전시준비 과정에서 다시 부딪힌 한계지만, 초창기 자료나 작품의 확인이 어려운 작가들이 많다. 그만큼 지역 문화자원인 작가들의 자료와 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발굴과 정리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열악한 사립미술관의 의지나 드문드문 전시와 출간작업보다는 거시적 관점에서 지역의 문화자산을 정리하고 공유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차원의 단계별 작업이 시급하다. 이 공적 과제에 대한 지자체와 공립미술관의 의지와 역할이 그만큼 절실한 것이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5. 4.29)▲ 오지호 <조선소 풍경>(1969), 손동 <선암사의 부엌>(1943) 강용운 <원야>(1965), 양수아 <작품>(196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