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되는 공기 - 정찬부展 > 전시비평/리뷰

본문 바로가기

전시비평/리뷰

Home > 남도미술소식 > 전시비평/리뷰
    전시비평/리뷰

    전이되는 공기 - 정찬부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07-17 08:32 조회7,623회 댓글0건

    본문






    전이되는 공기 - 정찬부


         
    2015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 - 정찬부
     
         2015. 7.15() ~ 7. 30(), 15일 간 

         
    롯데갤러리 광주점



    원형으로의 이행 그리고 순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이 소위 문명사회의 비평론에서 감지되는 논점은 인간성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그 위험성의 경향, 그리고 미래사회의 위기에 관한 명확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넘쳐나는 자본, 반복되는 대량생산과 소비 등 과거의 빈곤함에 비해 풍족하기 이를 때 없는 지금의 상황이 이상향이 아닌 디스토피아의 실현으로 느껴지는 연유는 '현대성의 과잉'과 유관하다. 현대문명이 이룩한 고도의 기술적 발전이 단순히 양적 팽창으로 인식되는 단계를 넘어서, 가상 혹은 인공적인 감성을 현대인의 지배적인 의식으로 파생시켰기에,이 현대적 감수성에 대한 거부와 수용의 문제는 사회 문화 전반에서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작용한다. 정찬부의 작업은 위와 같은 현대문명사회의 쟁점에서 출발한다.

    주지하다시피 미술의 영역에서 매체의 변화는 무수히 거듭되어 왔고, 다양한 미디어로 점철된 지금의 예술에서 정찬부 작가의 매체 또한 이채로운 물성을 수반한다. 대량생산되는 플라스틱 빨대를 주재료로 등장시키는 작가는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복제와 소비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특질에서 미적 가치와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단순히 가시적인 미감에 국한하지 않고 일관된 내용을 구축한다. 물질 고유의 본질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던 작가의 초기 작업 성향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플라스틱이라는 인공의 매체로 자연의 동식물을 재조형한 <In the garden> 시리즈가 실재로서의 가상이었다면, 점차 비정형화된 형식을 띠는 이후의 <발아> 연작에서는 자연계의 유기적인 생명력을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계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외부 세계로서, 비정형성으로 인한 유동적인 에너지, 나아가 생성과 소멸, 재생성이라는 순환의 서사를 역설적이게도 현란한 인공물의 파편을 집적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아름다움으로의 순환, 그리고 그 가능성을 역설하는 조형어법은 최근 들어 더욱 구체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다. 작가는 물질감에 천착하며 원자, 픽셀과 같은 기본적인 생성 구조만을 상기한다. 이번 전시의 메인 설치작인 <Come into bloom> 연작에서 볼 수 있는 타원형, 혹은 수직체 형태의 설치작품에서는 재료 자체의 고유성이 배가된다. 물성만을 부각시킨 구조물들은 그것이 단순히 생산과 소비, 폐기의 과정에서 나아가, 원형으로 전이될 수 있는 순환구조의 단초를 제시하는 것이다. 종국에는 풍성한 시각언어로 재구축된 플라스틱은자연물에서 무생물까지를 포함해 끊임없이 불멸하기를, 그리고 생명력을 내포하기를바라는 정찬부 작업의 논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어찌 보면 정찬부작업의 힘은 원형 제시라는 비가시적 구조에서 외려 체감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데 있다. 유기적 관계망 안에서 그 지니는 위치에 따라 의미라는 것이 규정되듯이, 순환 구조 내에서의 무생물, 생물의 의미는 개별적으로 인식될 수 있거나 불변하는것은 아니다. 생명력이라는 체계 안에서 그 의미는 비로소 인식될 수 있으며, 이번 전시의 주제가 내포하는 표제어 또한 순환하는 생명력으로볼 수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과 같은 인공물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썩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인공의 질서를 구축한 인간만이 재생성의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아닐까? 모두가 체감하는 바깥세계의 질서를 보다 가치 있는 흐름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주체도 인간일 터이다.

    무심히 버려지는 문명의 부산물에서 새로운 시각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고, 그러한 시각예술의 생명력에서 회복 가능한 지점을 모색하는 작가의 이번 전시에 보다 많은 공감, 그리고 교감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Copyright 2024 광주미술문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의 이미지들은 게시자와 협의없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