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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위한 그림 - 박태규 극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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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09-08 08:55 조회6,6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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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위한 그림

    박태규 극장전 여기 사람이 있소


    2015. 9. 5 - 9. 30 광주극장


    회화와 영화의 장르적 힘을 생각한다
    . 평면의 화폭과 스크린에 구현되는 형상, 실재적 허구, 혹은 실제의 사실은 보는 이에게 단순히 아름다움과 즐거움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회화는 이미지의 독해성 측면에서 그 기원을 해석할 수 있고,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의 발견이 사실적 기록의 미학이라는 시대의 모더니티를 반영한 결과인 것처럼, 예술에 있어 개념이 강조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 장르들이 지니는 공통의 키워드는 분명 재현(representation)’이다. 더불어 재현의 가치는 그로 인해 세상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하여 두 매체는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으로써 그 힘을 발현하게 된다.

    화가이자 영화 간판쟁이로 세상과 호흡하는 박태규 작가가 고마운 이유도 바로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재현의 힘, 그것의 진솔함에 있다. 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전인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 극장전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간판쟁이 그림이니 극장에서 선보이는 게 무에 그리 특이할까마는 전시장소가 80년의 역사를 포용한 광주극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대를 투영해온 공간과 시대를 그려내는 화가의 조합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전시의 타이틀 또한 무리가 없다. 무리가 없다 함은 현재를 반영한다는 의미이다. 예술가가 지키고 있는 태도의 지속성, 즉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문제제기, 또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은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가치 있는 흐름으로 인식된다.

    여기 사람이 있소라는 절박한 외침과도 같은 전시 주제는 진행형의 사실을 담아내며 그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기를 권유하는데, 작가는 보여주는 방법에 있어 크게 세 가지 형식을 취한다. 첫 번째 전시 섹션은 가상의 영화 간판화이다. 15년 전 그의 간판 작업 초기에 특징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이 가상의 화폭은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가상의 영화를 구성하고 실제의 영화 간판처럼 제작한 작품을 뜻한다. 광주의 오월정신을 쟁점화한 <광주탈출>, <풍경소리>, 각각 함평양민학살과 노근리양민학살을 담아낸 <바람나무>,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주로 사건의 상징적 코드와 가상 영화의 핵심적인 카피 문구를 밀도 있게 배치하는데, 상업과 순수미술의 간극을 적절히 넘나들며 회화와 영화의 메시지 전달력을 극대화시킨다.

    이번에 선보이는 가상의 간판화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태규는 금번 전시의 중심축인 본 작품들에서 기억의 행위를 강조한다. 또한 2014년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듯이 역사에 대한 반성적 시각으로서의 기억이 재차 부각된다. 슬픔으로 짙게 물들어 을씨년스러운 팽목항의 모습과 80년 오월의 상징성을 교차시킨 작품 <기억 거기 누구 없소>에서는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이 아픈 역사를 모두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이 스펙터클한 화면으로 인해 우리가 잊고 있는 참여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동일한 연작 <기억 여기 사람이 있소>에서 더욱 극적인 상황은 제시된다. 기울어져가는 배의 허공 위로 흩날리는 무수한 노랑 꽃잎들은 져버린 생명들을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여기 사람이 있소라는 모든 상황을 함축하는 문구는 배경에 자리한 무등산(無等山) 전경과 드라마틱하게 어우러진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 사람이 우선인 세상은 작가가 바라는 이상향일 터이다.

    시민참여형인 두 번째 전시방식에서 박태규는 이러한 바람을 소소하게 드러내려 한다. 관객과 영화가 소통하는 극장의 장소성에 집중하며, 관객이 기억하는 광주극장, 혹은 관객들이 풀어내는 영화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간판화로 제작한다.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본 작업은 극장 미술실에서 진행하는데,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단편적인 의미 이상으로 관객의 삶을 끄집어내고 이미지화 하는 행위는 작가 나름의 기억을 매개로한 어울림의 실현(實現)으로 해석된다.

    극장 뒷편 <영화의 집>에서 선보이는 기억 연작들은 기존의 간판화 형식이 아닌 회화성을 살린 작품들이다. 주로 풍경이 주를 이루는데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내포하는 의미와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기억 고요>, <기억 노란 리본>에서는 낮게 가라앉은 팽목항의 대기만큼이나 착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밤하늘의 별이 된 황금빛 물결 위의 귀한 생명들, 화면 가득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 감지되는 생명력과 간절한 실천의 기운,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소나무, 그리고 자연의 흐름 안에서 피고 지기에 항상 아름다운 호박꽃. 이렇듯 작가가 대상을 투영하는 방식은 그의 주제의식과 일목요연하게 일치하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히 기법적인 표현력 이상의 회화 본연의 힘을 체감하게 한다.

    박태규 작가가 오랜 기간 천착해온 장르인 회화. 그의 태도와 행위의 지속성은 회화이기에 가능했고, 더불어 회화의 근원적인 감동을 선사함은 그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어느새 흔하디흔하게 쓰이고 있는 문구. 이 문구가 자주 쓰일수록 작가 또한 붓을 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고, 사람 또한 올바른 역사 안에서 귀해진다.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보면서 예술가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는 표현이 더욱 명료하게 다가온다. 끝으로, 사회에서든 예술에서든 시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반성함을 지겹다’, 혹은 고루하다라는 말로 일갈할 것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고 영 재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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