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속 환희심과 회화적 무한자유 ; 김병모 회고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3-02-08 16:17 조회1,48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병모 회고전에서 <봄의 기쁨>(왼쪽),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62x360cm/<가을예찬>(오른쪽), 2010, 캔버스에 아크릴, 150x310cm 대자연 속 환희심과 회화적 무한자유; 김병모 회고전 2023.01.31-02.12 / 화순 석봉미술관 몇 년전 세상을 떠난 김병모 화백(1949~2019)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는 고인이 회화에 입문한지 50년째 되는 해이다. 시기별 작업의 흐름과 더불어 일생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김병모의 화업은 크게 보면 지역화풍을 따르며 회청색을 주조로 자연사생을 즐기는 1970~80년대 청년기, 독자적 회화세계를 모색하며 색채와 필법에서 보다 과감한 시도를 거듭하는 90년대 전환기, 비로소 그 자연에 끄달리지 않고 나의 화경(畵景)으로 녹여내는 2000년대 이후 화흥 화취(畵興 畵醉)의 시기로 구분된다. 김병모의 20~30대 청년기 작업들은 이른바 호남 구상화풍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면서 회청색조가 감도는 색감과 붓질로 풍경의 일부를 화폭에 담는 소박한 작화태도를 보인다. 1970년 현장사생화 <제주 용두암>, 1973년의 <눈이 내린 풍경>, 1975년 <어느 마을>, 1980년 <깊고 넓고 높은>, 1983년 <바다 위의 등대>, 1985년작 <햇빛이 내린 등대> 등이 그런 예들이다. 뒤로 가면서 붓질과 색감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화폭에 윤기가 더해지는데, 자연을 주관적으로 해석 변형하기보다는 담담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빛과 색채를 유화의 맛을 살려 화폭에 담는 작업들이다. 이 같은 경향은 80년대에 집중되는 인물화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공모전 출품을 위한 작업들인데, 실내로 비쳐 드는 빛이 여인의 자세와 코스튬을 따라 잔잔한 븟질의 일렁임과 명암대비를 만든다. 단독인물상이나 가족 모습 모두 외광을 따라 평온한 분위기를 이루며 포커스를 맞춘 부분의 표정과 옷주름 등에서 세필묘사가 감각적으로 구사되기도 한다. 더러는 빛과 여인의 구도와 자세, 뭉그린 붓질과 색채를 통한 명암처리 등에서 지도교수였던 임직순의 화풍도 은근히 비친다. 이 시기에 풍선 부는 아이 소재가 몇 점 보이는데, 천진무구한 동심으로 순수미를 높이려는 설정으로 보인다. 1980년의 임신 중인 <아내의 초상>을 비롯, 1983년작 <L양>, 1987년 <C양>, 1988년의 <실내>와 <풍선을 부는 소녀의 초상>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김병모의 작업은 1990년대 들면서 적극적인 변화를 찾는다. 넓어진 시야와 함께 순도 높은 원색의 사용이 늘어나고 자연 경물을 작은 세모꼴 필촉들의 조합으로 군집화하거나 색면덩이로 구성하여 화폭에 생기를 돋우게 된다. 단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고 그 생명존재 하나하나를 자연과 화폭의 구성체로 인식하여 깊이 있는 감성적 교감을 열어놓는 것이다. <언덕길> <언덕길을 따라서>(1991)나 <녹음을 입은 등대> <해금강>(1993), <안나푸르나>(1994) 등은 예전에 비해 색채가 훨씬 밝아지고 붓질이 활달해진 작품들이다. 묘사 대상을 넘어선 화면 구성체로서 풍경 요소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주관적 해석이 더해지게 된다. <깊은 가을>(1995), <가을이 부른다>(1995), <자연의 리듬>(1996), <풍요>(1997), <푸른마을>(1999) 등에서 달라진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은 이 시기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어서 이후에도 <지리산 달궁>(2002), <단풍이 지기 전의 첫눈>(2016) <겨울병풍산>(2016)에서도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꽃무더기로 화면 하단을 두른 반나의 여인상 <휴식>(1990)이나 한 다발 꽃송이를 그린 <정물>(1996)에서처럼 자연풍경이 아닌 소재들도 색채와 붓질이 훨씬 유려해지고 장식적 요소까지 가미되기도 한다. 비로소 자연대상과 화폭을 화가의 것으로 조율하게 된 김병모의 작업은 지천명을 넘어선 2000년대 이후, 특히 회갑 즈음인 2010년을 전후로 자연합일된 회화적 유희의 세계로 펼쳐지게 된다. 호탕하고 대범한 붓질과 쏟아지는 듯, 녹아내리는 듯 뒤덮어지는 생명의 환희심으로 자연공간 한복판을 휘두르거나 유유자적 낙천적 세계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 같은 환희심의 표출은 온통 은행나무 단풍빛으로 캔버스를 뒤덮은 <노란 가을>(2001)을 비롯, 녹청의 푸르름으로 둘러 채운 <깊어가는 봄>(2004), 하늘인 듯 바다인 듯 푸르른 뒷산 그늘 아래 간일한 시어 같은 필치들이 산뜻함을 더하는 <봄의 편지>(2009) 등이 달라진 그의 화폭들을 보여준다. 이어 비로소 작업에만 전념하게 된 2011년 이후로는 마음속 무한공간에 자신만의 화경(畵景)들을 자유상상으로 펼치고 옮겨내기를 맘껏 즐긴다. 화면 가득 쏟아지듯 채워지는 생명의 기운을 더 즐기면서 100호 150호 캔버스들을 잇대어 굵은 붓자욱과 온통 한 색조로 채우는 작업을 늘리거나, <별천지>(2016), <봄의 기쁨>(2019), <구름을 지나서>(2019)처럼 구름인 듯 산그늘인 듯 활달한 붓질들로 둘러 세운 색면덩이들이 녹아내리는 산야 사이로 폭포처럼 한줄기 틈새가 공간을 가르기도 한다. 또한, 잘 다루지 않던 누드들을 간일한 필선들로 도상화시킨 <누드소품>(2017 전후) 연작, <누드>(2019), <두 누드>(2019) 등을 마음대로 구성해낸다. 만년에 그가 즐겨 다룬 소재는 구름과 바람과 낚시, 자화상인데, 그만큼 무엇에도 걸림 없는 자유와 진정한 자신의 본체를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가령 <포도나무 구름>(2015), <하얀 구름>(2016), <동쪽의 구름>(2017) 등등 허공의 구름들도 화폭공간에서 무리를 이루어 대지나 바다의 색면과 짝을 이루는가 하면, <지상낙원>(2012), <무릉도원>(2015), <일출>(2016)처럼 해안가 기암절벽이나 등대섬도, 화사한 봄꽃 만발 과수원도, 단순간결 색면들로 융화된 심상세계를 만끽한다. 그런 대자연 속에 노니는 자신의 초상을 <무엇을 낚는가>(2016), <미조리의 월척>(2018), <놓아주려 잡았느냐>(2018) 같은 한점 낚시꾼의 자화상으로 자주 표상화하는데, 그가 진정 낚고 싶었던 것은 열린 대자연 속의 무한자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기별 큰 흐름에서 볼 수 있듯이 김병모의 일생 화업은 만년에 이를수록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닫는다. 대자연과 일체가 된 환희심과 회화적 자유를 찾는 여정이 비로소 제 길을 찾은 듯 활달한 붓질과 넓게 펼쳐지는 선명한 색채, 대범한 공간 운용, 산야와 바다와 구름과 폭포와 바람결들이 서로의 형체나 색채의 본성에 매이지 않는 대비와 공존의 화음으로 크고 작은 화폭들을 이루어 낸다. 지역화단의 전형을 따르는 그림들로 자족하기보다 타성화된 그런 아류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일구고 싶은 적극적 예술의지와 낙천적 심성이 마침내 자기확신의 단계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한허공을 향해 한껏 빈 낚시줄을 던지는 그의 호방함이 자연구상과 조형추상의 경계를 벗어난 또 다른 화폭들로 이행되어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김병모 <노인>, 1976, 캔버스에 유채, 131x98cm / <실루엣(실내)>, 1988,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김병모 <봄의 편지>, 2009, 캔버스에 유채 / <지상낙원>, 2012, 캔버스에 아크릴, 136x103cm 김병모 <깊은 가을>, 1995, 캔버스에 유채, 59x79cm 김병모 <깊어가는 봄>, 2004, 캔버스에 아크릴, 91x182cm 김병모 <포도나무 구름>, 2015, 캔버스에 아크릴 / <누드>, 2019, 캔버스에 아크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