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작가가 꾸민 ‘시간의 정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지인 작성일24-06-17 12:12 조회1,38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건희 <Daimon>, 2024, 수제한지, 닥섬유, 아크릴, 신문 5인의 작가가 꾸민 ‘시간의 정원’ 6.5~6.24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외부 기획전 세월이 덧쌓인 양림동산의 푸른 숲속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이 외부 기획자를 초청해 마련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종다양한 시간의 현상과 경험과 의미를 시각예술로 번안해 펼쳐내는 ‘시간의 정원’ 전시로 서울의 을지예술센터 박지인 큐레이터가 5인의 작가를 초대해 꾸몄다. 박지인 큐레이터의 기획 글과 작가소개 글을 일부 생략하고 옮겨본다.- 편집자 주 시간의 본질은 변화와 지속이다. 변화란 시간의 바깥 혹은 외부에 대한 것이고, 비속은 시간의 안 혹은 시간의 내부에 관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시간은 생물에게만 작동한다. 생물만이 그 분명한 시작이 있고 또 그 끝이 있다. 시작과 그 끝 사이가 지속이고 흐름으로 시간은 작동한다. 스스로 변할 수 없는 무생물의 세계는 무시간적일 수밖에 없다. 변화에 대한 좌표나 수리적 측정은 시간의 공간화에 다름 아니다. 흐름이며 지금 지나가는 시간은 그 흐르는 것 이외에 다른 것들은 결코 동시에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측정되거나 움직이지 않는 선으로서의 시간은 흐름이 멈춘 시간, 즉 측정된 지속이며 이것은 공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을 지속 자체로서 “무엇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며 “모두가 되어가게 만드는 것”으로 파악했다. 시간 자체가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생물, 특히 인간은 각각 자신의 시간 속에서 뭔가가 되거나 뭔가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시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시간의 안으로 들어가서 그 흐름 속에 있는 어떤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여 대상에 대한 감정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직관을 사용하여 그 흐름에 접속하고 이입하는 방식이다.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 자체가 이렇게 ‘창조적 진화’의 과정이라면 이 창조적 역량은 근본적으로 예술적이다. 예술가들은 각가에게 지속적인 이런 흐름 속에 배태되어 있는 창조적 역량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의식의 바깥, 즉 공간 속에 이러한 흐름을 감각적으로 구성하고 재현한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뭔가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자의든 차의든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신체의 감각과 뇌의 인지를 이용해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이면을 이끌어낸다. 여기서 삶과 예술에 대한 작가적 태도는 작품이 드러내는 세계관이 되고, 여기서 작품은 곧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일상을 대변해 동시대성을 만들어낸다. 여기 5인의 작가가 있다. 각기 다른 삶을 영위하지만 경험하고 인지한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티스트라 불린다. 전시 ‘시간의 정원’은 각각의 아티스트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지속적인 의식 속에서 경험하고 인지한 대상을 공간 속에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하는 전시이다. 이건희는 다이몬 시리즈를 통해서 시간 바깥의 시간에 대한 감정을 종이라는 미디움을 사용하여 형상화 시키고 있다.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고분의 벽면에 새겨져 있을 법한 암호처럼 종이 위에 새겨진 이미지들이나 생명의 허물같이 아슬아슬하고 연약한 종이조형물, 그리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물기가 쫙 빠진 듯이 보이는 종이작업은 매우 탈시간적으로 보인다. 이미 특정 시간이 빠져나간 듯이 보이는 그녀의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른 시간 속에서 우리와 마주보게 하면서 지속이라는 시간의 본질을 다시금 음미해 볼 수 있ㄴ는 기회를 제공한다. 배달래는 흘러내리는 물감의 우연성처럼 자신이 우연히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믿으면서 그 우연성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을 회화와 퍼포먼스, 설치작업을 통해 발견하고 확인하려 한다. 실존의 가능성에 대한 뜨거운 감정을 냉정한 푸르른 색 속에서 녹여서 격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뜨거운 감정을 차가운 색으로 바꾸는 예술적 노력과 실존적 용기는 차가운 푸른 색을 붉은 색보다 더 뜨겁고 강력한 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감정이 정념화 되면서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의미를 더욱 냉철하고 심도 깊게 탐구하고 있다. 신영희의 영상작업 <기원의 기원>은 멜로드라마, 격정, 그리고 이상화를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영상매체로 표현한다. 작품은 현실과 동떨어진 특정한 세계와 그 세계가 특정한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구성되고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전달되는지, 그 효과가 어떤 식으로 이상화 되는지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작가가 제시한 세가지 주제는 시작도 끝도 없이 서로가 원인이 되고 결과도 되는 텅 빈 과정을 끝없는 이야기처럼 펼쳐내고 있다. 김일권은 생태학이라는 주제로 작업해 나가는 데 있어 자연의 잃어버린 순수함을 향한 향수를 전파하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여기서 예술이 우리의 필요와 좌절, 결단을 그 주제의 일부로 가져와 실현할 수 있는 전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작가는 믿고 있다. 작품 속 이미지들은 순천만의 오염과 사회적 불감증으로 진행 중인 문제들에 대처하는데, 행동가로서 지난 수년간 얼마나 고분분투하고 저항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며 이를 다매체적인 접근과 예술적으로 고민하고 고뇌한 흔적들이 담겨 있다. 이지송은 투채널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에서 흐릿하게 흐르는 물의 이미지와 그 흐르는 물을 다른 디지털 신호로 변형시킨 듯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흐르는 물의 바깥에서 물은 흐름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우리에게 인지되지만, 실제 흐르는 물 속에 있으면 물은 디지털 방식으로 경험된다. 일상적인 시간의 지속에 깨어지는 순간에야 우리는 비로소 시간을 의식할 수 있는데 그 지속의 시간이 기억을 통한 회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지속 자체는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흐름이지만 지속을 의식시키는 변화는 디지털적이다. 이지송은 우리의 삶이 이렇게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맞물려 있는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보여준다. - 박지인 (을지예술센터 큐레이터) 이건희 <Daimon>, 2024, 수제한지, 닥섬유 배달래 <Samsara-Chakra2023-4>, 2023, 캔버스천에 안료, 270x1200cm 배달래x최재훈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 2021, 단채널 비디오 신영희 <Prototype des Pathos>, 2020, 단채널 비디오 신영희 <Origin of Orign>, 2020, 2채널 비디오, 2003~2005, 종이에 연필, 수채, 각 39x54cm 김일권 <다시 온 순천만>, 2023, LED패널, 혼합매체 김일권 <시간의 어떤 정원>, 2024, 단채널 비디오 이지송 <흐르다>, 2020, 다채널 영상, 무한루프 이지송 <흐르다>, 2020, 다채널 영상, 무한루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