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혀, 천리를 가는 말들의 풍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10-03 15:32 조회9,31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백종휘 <천리마>, 2014, 순지와 합성소재 부유하는 혀, 천리를 가는 말들의 풍경 저 수많은 말들의 난무는… 차라리 봄날의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처럼 몽환 속의 환청이었으면이나 좋으련만, 몽롱한 뇌리를 쑤셔대는 날선 바늘의 느낌을 차라리 쾌감으로나 받아들였으면…- 윤정현 ‘…말들의 풍경’(광주드림, 2014. 8.18) 참으로 말이 무성해진 세상이다. 말을 옮겨내고 퍼트릴 수 있는 매체나 장치나 자리들이 감당할 수 없이 확장되어가는 이즈음의 세상에서 말은 소통의 매개 이상으로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의 풍경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우연찮은 일이었겠지만, 말에 대한 얘기를 담은 두 개의 전시가 같은 시기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상연의 ‘부유하는 혀’(2014. 8.26-10.25, 쿤스트라운지 슐츠&융 갤러리)와 백종휘의 ‘천리마’(10. 1-10. 7, 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 개인전들이다. 김상연의 ‘부유하는 혀’ 김상연은 그동안 인간 내면에 드리워진 삶과 욕망의 그림자를 묵직한 먹작업으로 풀어내거나 아날로그 시대의 소들에 날개를 달아 현시대의 응어리들을 풀어내는 상징이미지로 전시장 가득 펼쳐놓기도 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글자로 대신한 사람들 사이의 ‘언어’에 관한 얘기를 새겨놓았다. 대부분 목판활자처럼 판각한 글자들을 불규칙적인 두께와 형태로 교집합시키고 검게 먹을 입힌 소품들이다. 한글과 한자, 때로는 영어 스펠링에 인물상까지 한판씩 무리를 지어 벽면에 떠 있는 것인데, 어떤 뜻보다는 단지 여러 낱글자들의 조합일 뿐이다. 마음이 없는, 뜻이 담기지 않은 말들의 난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듯하다. 게다가 글자의 형체마저 녹아 흘러내리거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일정한 고리들로 얽히며 같은 허공을 맴돌 뿐이다. 김상연은 이번 작업들에 부친 작가노트에서 “나이가 들수록 세상의 물질문명은 명확해져 가는데 나의 정신은 오히려 모호하고 계산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측정 불가할 정도로 혼미하다”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하다고 습관적으로 학습했던 수많은 것들은 이제 8할이 무의미해져 버렸고, 나머지 2할마저 온갖 탐욕의 방법만으로 쓰임새를 한다. 이해는 기계의 계산에 맡겨 판단되어지고, 본능은 차마 밖으로 표출되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소멸된다. 명확하지 않는 것들은 이제 명명되지 않으며, 슬프게도 이름하지 않는다… 과학이 명석하게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미미한 조연으로 옮겨간다. 아니, 인간은 애초에 사물의 조연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도 “사물의 形으로 모든 의미를 부여하려했던 지난날들에 미안한 마음이다. 명명되지 않았던 미미한 것들…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덩어리의 미미하고 무의미한 부분(이었던 것들)에게 字를 빌어 감사한다”는 것이다. 작업의 소재나 형식은 달라져도 자기 안에 비춰지는 세상에 대한 내면적 성찰과 은유적인 표현들, 검은 먹 속에 침잠된 수많은 언어들이 모습을 달리하며 응축되고 있다는 점은 김상연의 일관된 주제의식이라 여겨진다.▲ 김상연 <말의 집> <붉은 혀> <나는 너다>, 2014백종휘의 ‘천리마’ 백종휘의 작업도 세상의 ‘말’에 관한 조형적 풍자이다. 작업 주제인 ‘천리마’는 같은 발음인 ‘말’(馬)과 ‘말’(言)을 연결한 동음이의어 풀이이다. 꽤 넓은 전시장 대부분은 무리를 지어 허공을 내달리는 말들로 설치되어 있다. 나머지 가장자리에 몇 개의 소품들이 놓여있지만 담고 있는 얘기꺼리는 마찬가지로 ‘말’(馬) 형상을 빌어 사람들 간의 ‘말’(言)을 비유한 것들이다. 이번 백종휘 작품전에서 주연과도 같은 <천리마>는 거의 실물크기 12필의 백마들, 달리는 군마상들이다. 한지로 떠내어진 말들은 힘차게 파동을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지만, 다리 일부가 없거나 몸뚱이 여기저기가 불에 타서 상처 입은 상태들이다. 더욱이 뒤쪽 말일수록 훼손은 더 심해 머리부분만 멀쩡할 뿐 몸뚱이 대부분이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다. 백종휘는 이 작업에 대해 “‘말’(言)에 대한 심리적 현상으로 살아오면서 ‘말’(言)로 인해 받았던 상처와 경험”이라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을 차용하여 ‘‘말’(言)들이 천리 길을 상처와 아픔과 고통을 전달하며 횡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관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진실보다 거짓일 때가 많다. 진실의 소멸은 잠시 갈등을 봉합하고 불안을 잠재운다. 진실은 거짓보다 불편하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짓에 열광한다. 그렇게 진실이 소멸함으로써 우리는 피해를 받고 고통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것 또한 진실이기에 사람들은 이 고통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과 달콤한 거짓에 관한 조형적인 가시화는 검은 색과 흰색으로 줄지어 선 또 다른 <천리마> 군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름기둥 위에 올려진 발 없는 말들은 날개를 가진 천리마로 모두가 같은 형상이지만 사탕처럼 달콤하고 매끄럽거나, 귀에 설고 거칠고 껄끄러운 말들 속에서 세상에 떠도는 진실과 거짓, 나쁘거나 좋음에 관한 풍자를 담아낸 것들이다. <삶 반대 말>은 그런 상처와 곡해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떠도는 말(言)들의 소멸을 말(馬)의 마지막 죽음과도 같은 형태로 함축해 놓은 소품이다. 모양새 좋게 줄무늬로 치장한 얼룩말 두 마리가 머리와 몸뚱이는 이미 땅속으로 반쯤 스러져가고 발만 허공에 버둥거리고 있는 형상이다. 작가는 “‘말’(言)은 나에게 있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무의식 속 깊이 저장된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작업을 한다… 소통의 단절과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삶에 대해 위로를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김상연ㆍ백종휘, 서로 작품의 소재와 형식은 다르지만 현시대 세상이나 삶 속에서 언어가 갖는 확장성과 그에 따른 파장들, 소통과 이해와 공유의 매개체이면서도 그 말이나 글로 인해 일어나는 숱한 상처와 고통과 오해들, 그러면서도 정제된 언어 한마디가 갖는 해갈과 치유와 이끄는 힘에 대해서까지 동병상린의 메시지들을 전하고 있다. ▲ 백종휘 <천리마>, 2014, 순지와 합성소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