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품은 선각자 공재 윤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10-29 08:37 조회10,12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윤두서 자화상 : [조선사료집진속] 사진(1937) / 원작(18세기 초) / 적외선 촬영사진(2006) 세상을 품은 선각자 공재 윤두서 국립광주박물관 서거 300주년 특별기념전성정과 실사정신을 중시한 회화세계동서고금을 통찰한 근대적 문예인 올해는 한국 미술문화사에서 조선후기 시대문화를 앞서 이끌었던 선각자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서거 3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8월 29일과 30일 해남 현산면의 백방포 공재고택에서 제7회 공재문화제로 뜻 깊은 기념행사의 서막이 열렸다. 이어 10월 21일 국립광주박물관은 공재를 기리는 특별기념전을 개관하여 1월 18일까지 계속한다. 또 10월 21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미술사학자인 명지대 이태호 교수의 윤두서의 생애와 회회세계를 살펴보는 시민강좌가 열린데 이어, 오는 11월 26일 타계일에는 광주박물관에서 전문학자들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학술세미나가 예정되어 있다. 공재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문화변동기인 숙종대의 문인이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남인계열 집안인지라 현실정치보다는 학문과 시서화에 마음을 의탁하였다. 이로 인해 오히려 세파에 초연한 선비정신과 혜안으로 세상과 문화를 폭넓게 통찰할 수 있었다. 국립광주박물관이 마련한 기념전은 48년 짧은 생애에서 30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탐닉하게 된 공재의 회화세계와 그 바탕을 고루 소개하고 있다. 전시물은 그가 남긴 자료나 필묵의 일부이지만 이미 근대적인 천문ㆍ지리ㆍ문예의 세계를 아우르던 시대의 선각자를 만나보는 자리다. 그의 시대정신과 예술적 감각은 고전과 당대, 조선과 바깥세상을 폭넓게 넘나들고 있었다. [방성도]나 [일본지도]처럼 시공간을 초월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사를 비롯, [고씨화보]나 [관규집요] 등 중국에서 들어 온 화본집이나 묵적들로 기초 화법을 익히던 흔적들, 당대 지식인ㆍ문인들과 교우 속에서 체득한 묵향 그윽한 산수ㆍ인물화들과, 현실을 직시하는 실사구시 정신의 실경사생화까지 그가 품은 세상은 대단히 폭이 넓다. 그의 회화는 ‘누각산수도’ ‘월야강루도’ ‘고사도’ ‘군선도’처럼 고전적이고 관념화된 산수풍경이나 인물도 없지 않지만, 당대 민초들의 삶의 모습들을 예리한 관찰과 재치 있는 구성력으로 포착해낸 ‘채애도’ ‘석공공석도’ ‘경답목우도’ 등의 풍속화, 서양식 소재와 구도로 묘사한 ‘채과도’ ‘석류매지도’, 대상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그 동세와 기운을 살려낼 수 있는 ‘준마도’ 등 빼어난 회화적 감각과 표현력을 보여준다. 후배 김윤겸은 “그는 옛것을 배우되 변통할 줄 알았다”고 평했고, 남태응 또한 “말을 그릴 때면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해 보기를 몇 년간 계속했다. 말의 모양과 의태를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볼 수 있고 털끝만큼이라도 비슷함에 의심이 없는 후에야 붓을 들어 그렸다”고 기록을 남겼다. 문기와 사생력을 결합시킨 공재의 사실정신은 ‘격물치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마음 밖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이치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학식과 탐구를 기초로 삼아야 하고, 실재하는 것들과의 직접적인 대면과 요체의 파악을 통해 한 치의 헛됨이 없어야 한다는 실사정신을 구현해낸 것이다. 물론 공재가 정확한 실사를 강조하면서 일반 화공과는 다른 문기와 품격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만물의 성정에 능통하고 만물의 형상에 능변하며 삼라만상을 포괄하여 헤아릴 줄 아는 것이 ‘화지’이다. 형상의 의표를 터득하여 도로서 안배하는 것이 ‘화학’이다”([기졸])며 외형의 사실만이 아닌 사의의 중요성을 밝히기도 하였다. 공재의 현실 존재에 대한 명철한 파악과 내적 정신성의 표현은 ‘자화상’에서 극점을 이룬다. 혼이 담긴 눈빛은 물론 터럭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흩날리는 듯한 자화상은 그가 추구한 사의와 사실정신의 단적인 예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시대 [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그림 사진과, 최근의 적외선ㆍ현미경 촬영사진까지 곁들여 이 그림이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초본일 가능성과 함께 관련 오해나 추정도 소개하고 있다. 그림을 방편으로 삼은 공재의 세상 통찰은 동시대는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기념전에 함께 구성된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에 이르는 윤씨일가의 가맥은 물론, 당대의 조영석ㆍ김두량ㆍ심사정, 그의 선도적 작업들을 토대로 조선후기 문예중흥기를 꽃피우는 후대의 정선ㆍ김홍도ㆍ김득신ㆍ정약용, 조선 말기 호남남화의 화맥을 다시 일으켜 세운 허련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내노라하는 서화가들의 작품에서 한국회화사의 큰 봉우리인 공재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4.10.29)▲ 윤두서 <경작도> <채애도>. 1719년 [윤씨가보] 장첩. 39.2x30.5cm ▲ 윤덕희 <창해범장도 滄海颿檣圖>. 18세기. 종이에 먹. 32x25cm▲ 윤 용. 화원별집에 실린 산수도, 묵포도. 18세기. 비단에 담채. 28.3x19.2cm ▲ 정약용ㆍ초의선사, <월출산白雲洞帖>. 1812. 종이에 담채. 개인소장 ▲ 허 련) <추경산수도>. 19세기. 종이에 담채. 105.4x53.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