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본성의 소요유-김대원의 '마음을 걷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6-11 08:32 조회9,81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김대원 <녹아버린 찬란함>,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 150x150cm 자연본성의 소요유-‘마음을 걷다’ 김대원 한국화 40년 초대전관념보다 현장감흥과 내면풍경삶과 예술 속으로 마음 걷기 전통은 생장의 기반이자 토양이면서 동시에 안주하거나 극복해야 할 정형이 되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한 지역양식을 이루어 온 남도미술계는 물려받은 화맥의 계승과 더불어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창작의 과제 또한 분명한 게 사실이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요즘의 개별화된 청년화단 활동에서 예향전통의 호남회화 양식은 이미 지난 시대의 전형으로 밀려난 듯 싶지만, 그 전통에서 출발했던 선배작가들 가운데는 이를 토대로 시대문화를 담는 독자적 회화세계로 진전시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암 김대원 교수의 화업 40년은 한 작가로서 창작세계 뿐 아니라 호남화단 또는 한국회화의 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행적이기도 하다. ‘마음을 걷다’라는 이름으로 5월 30일부터 6월 2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중진작가 초대전으로 상록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가 그 현장이다. 숙성된 지역문화 자산으로부터 독자적인 창작세계를 일구어가는 시기별 작업들로, 호남 전통화맥의 수묵산수 학습과, 회화의 근본을 찾아 소재ㆍ질료ㆍ형식을 끊임없이 바꿔가는 변화과정, 자연 본성을 따라 마음자리를 비춰내는 근래의 화폭까지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크게 보면 전통으로 다듬어진 관념소재와 화법으로부터 생동하는 현장의 실경산수로 옮기고, 그 자연과의 소통 교감에서 일어나는 흥취를 따라 자유로워진 필묵으로 비형상의 화폭들을 이루다가, 그런 가운데 마음에 비춰지고 덧쌓이는 삶의 단편들을 엮어 세상과 자연과 예술이 합일된 심경 속으로 소요유하는 회화세계의 흐름을 보인다. 이를 대략 시기별로 살펴보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전반까지 전통문화 탐구,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의 실경감흥 몰입,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전반사이 민족문화에 대한 재해석,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비형상의 심경세계가 두드러지는 요소들이다. 먼저 초기작인 <산사의 가을>은 대학 재학 중이던 1975년 [전남도전]에서 수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고풍스런 산사 수행도량과 석탑이 단풍조차 거의 다 진 늦가을의 마른 나무들과 배경의 바위산에 둘러싸여 있는 고즈넉한 수묵담채화다. 갈필과 세필을 주로 하여 기왓골이나 목조가옥 구조, 원근의 나무들, 암산의 바위골을 세세하고 잔잔하게 그려냈다. 전통 필묵과 준법을 따르면서도 서양화의 풍경화 같은 구도나 구조물의 3차원적인 묘사는 당시 일반적인 남도화풍과는 다른 방식이면서 탄탄한 기본기를 짐작케 한다. 8폭 병풍그림인 <설악>(1984)처럼 전통산수화 요소가 많이 남아있던 초기단계에서 지암은 정형화된 수묵산수화의 답습보다는 우리 옛 문화를 화폭에 끌어들이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곡성 태안사 부도탑비 돌거북이나, 나주 불회사 돌벅수와 영암 쌍계사터 석장승을 한 쌍으로 구성하여 이끼 낀 모습을 주변 초목이나 경물과 더불어 수채화 같은 수묵담채로 세밀하게 묘사한 고풍스런 작품들이 이를 말해 준다. 이 같은 전통에 대한 천착은 수많은 현장사생 여행을 통해 점차 살아있는 현장의 기운과 감흥을 직접 호흡하는 실경산수화 위주로 기울어진다. “실증과 관념을 넘나들며 속기 없는 자연의 감흥을 나타내어 자연귀의, 정신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던 때다. 요동치는 파도의 선과 수평선에 어리는 하늘빛이 각기 다르다는 <동해바다>(1990)와 <남해> <노도>(1992), 도끼로 쳐내듯 거친 필치들이 파열하듯 화폭 가득 터져 오르는 <홍도소견>(1993), 오색의 지질들로 장관을 이루는 산자락들 너머로 아스라이 물안개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장백폭포>(1992), 붉은 농염이 파도처럼 천지에 가득한 <붉은 운해>(1992)와 <황산일몰>(1994) 등이 그런 예다. 그러나 현장의 벅찬 감동과 흥취를 담은 실경을 계속해도 “몸에 배인 습(習)을 떨쳐내는데 고통스러울 뿐, 성에 차지 않는” 작업이라 여겨졌다. 화려 현란한 필묵의 몸짓도 허세나 공허여서는 안되며, 상투적 관념과 필치의 흔적들을 털고 스스로 통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천명에 이른 90년대 말 과감히 자기 틀을 깨고자 했다. 필묵은 더 자유롭게 풀되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 고전설화와 전래동화에서 소재를 취하였다. 민화 속 호랑이와 산수자연을 해학적이면서도 함축적으로 풀어 각색한 <사랑가>(1999), <옛날 옛적에> 연작, <일월도> <에헤라디야>(2004) 등이 이 시기 그림들이다. 한시도 머무름이 없었던 지암은 2000년대 중반, “변화만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라 여기고 또다시 자기혁신을 단행한다. 화폭에서 형상은 거의 사라지고 자연과 일상과 심경들이 어른거리는 ‘마음일기’를 풀어내는 작업들이다. “목적성을 갖지만 무의식적 행위에 가까운 필묵의 자유로운 유희, 보여주는 것보다는 그리는 자신의 절대 무한의 자유로운 유희”를 추구하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희비와 부딪힘, 갈등, 죽음, 환희, 충만감 등이 내면에 쌓여지고 그런 단편들이 삭히고 엮이면서 문득 일기 같은 그림들로 펼쳐지는 것이다. <자상한 거짓말>(2005) <덜 익은 관계>(2006) <내 모든 순간의 너>(2008) <가장 시원한 복수>(2014) 등 제목도 다분히 암시적이다. 지암 김대원 교수는 늘 자기혁신을 거듭하며 ‘내면의 열정을 오래토록 뿜어 올릴 분화구’를 찾아 왔다. 이제 대학 강단과 공무에서 물러나는 시점에서 이번 40년전을 중간정리로 삼고 줄곧 열망해 온 창작의 진수를 찾아 예술적인 소요유로 몰입해 볼 시간을 갖게 된 셈이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전남일보. 2014. 6. 11) 일부 수정 가감 ▲ 김대원 <눈길 속 편견>, 2011, 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 72.5x60.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