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섭 회화의 비정형 판타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12-10 08:54 조회9,67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최종섭 <Korean Fantasy>1991. 한지. 91x72cm 최종섭 회화의 비정형 판타지 광주시립미술관 재조명 회고전광주 추상화단 2세대 구심점한국적 비정형 추상회화 몰입 1974년 8월,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당시 고교 2학년이던 필자는 같은 반 친구 셋과 함께 우리학교 미술교사이시던 고 최종섭 선생님을 뵈러 동명동 댁을 찾았다. 늦은 결혼에 아직 신혼이던 선생님은 처가댁에 기거하면서 작은 방 한 칸을 작업실 삼아 삼복더위에 속옷차림으로 땀에 흠뻑 젖어 작업하고 계셨다. 캔버스에 하얀 바탕칠을 하고 거기에 흰 물감방울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떨어뜨려 잔잔하면서도 반복적인 요철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그 자체로 보면 단색조 미니멀 아트 계열의 화폭이라 할 수 있는데, 나중에 당시 작품들을 보니 그 하얀 반점들의 바탕 위에 안료의 특수효과를 두텁게 겹쳐내면서 비정형의 추상화면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1992년 초 늦추위가 아직 쌀쌀하던 때, 췌장암 말기로 투병 중이신 선생님을 뵈러 병원을 찾았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 초췌해졌을 뿐 선생님은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옆의 보조침상을 작업대 삼아 작은 종이에 수채화를 그리고 계셨다. 구불거리는 필선과 엷은 색감들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그려내는 풍경화들이었는데, 진통제 투약으로 잠시 붓을 들 수 있을 때마다 잠시잠깐씩 작은 그림 한 점씩을 그리시는 거였다. 그동안 신세 졌거나 마음에 담고 계신 분들께 남은 가족들이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고통을 참으며 생을 마무리 하는 세심한 배려였다. 내색할 수 없는 비감과 안타까움으로 그 귀한 투혼의 작품 한 점을 감사히 받았다. 2014년 12월, 한파 속 적막에 쌓여있는 조용한 시간에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실을 찾았다. 선생님이 생을 달리한지 22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술관이 작고작가 초대전으로 기획한 그분의 작품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11월 25일에 시작되어 내년 2월 22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회고전답게 선생님의 60년대부터 마지막 유작까지, 더불어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전시 관련 유인물이나 글, 사진자료들까지 고루 정리되어 있다. 최종섭 화백의 작업은 ‘현대작가 에포끄회’를 창립하던 64년 무렵을 비롯한 초기작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70년대 중반 이후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전체 회화세계를 파악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전위적인 작품활동 정신과 예술적 사회 환경의 유대를 강화하여 현대문화의 혁신을 실현’하고자 했던 ‘에포크회’ 창립이념처럼 63년 작품은 안료를 거칠고 두텁게 쌓고 긁어내어 장 포트리에의 앵포르멜 ‘인질’ 연작을 연상시키거나,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다른 작품에서도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필촉들로 내면의 활화산을 분출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은 1967년 개인전 때 남긴 “현대가 내게 주는 불안과 위기와 고뇌, 그리고 모순은 나로 하여금 안이한 상태에서의 호흡을 바라지는 않았다. 내 나름의 의지와 염원과 괴로움을 담아보려는 노력과 용기를 찬탄해야 옳을지..”라는 글에서 당시 작업의 일단을 살필 수도 있다. 서구 현대미술의 궤적이 그렇듯이 최화백의 작품에서도 비정형의 거친 호흡이 숨을 고르면서 이후 단계인 옵티컬 아트의 흔적이 나타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Work 69> <Work 71>은 사선과 수직 수평의 직선과 마름모꼴 기하학 구성에 유기체의 곡선형 도상이 조합되고 대비적인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는 전혀 상반된 화면형식을 보여준다. 일부는 단색 화면에 노끈들을 구불거리게 반복시키거나 격자형으로 분할된 화면 일부에 짧은 노끈을 유선형으로 붙여 미니멀리즘 계열의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규칙 바르게 화면질서를 구획하는 옵티컬 아트 형식은 부자연스러웠던 듯 이내 7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일정형태를 벗어난 비정형회화로 전환한다. 하얀 반점들 위로 몇 겹의 물감층을 덧쌓고 깎아내기를 반복하거나, 태고의 깊이나 심층 내면을 탐구하듯 그 중첩된 화면 위로 덧칠한 단색을 일정 간격으로 긁어내어 부정형 배열을 이루기도 하고, 번짐 효과가 가미된 엷은 필선들을 반복적으로 내려 그어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1977년 개인전 작품에 대해 김인환 미술평론가는 “최종섭의 작품에서 나는 ‘장엄한 침묵의 언어’같은 것을 본다. 단색으로 칠해진 캔버스 위에 길다란 세선을 반복하여 늘어놓아 본다든지 온통 점점으로 메꿔 본다든지 하는 무상의 행위 가운데서, 그렇듯 냉냉하고 건조하기조차 한 과묵한 화면 위에서, 어떤 단호한 결의를 읽게 된다”고 평하였다. 이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서 80년대 들어서는 거친 질료들의 응축된 층위 사이사이로 매끄러운 띠들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거나, 닳고 녹슨 고대유물의 문양처럼 갈색 요철효과를 배치하기도 하고, 거칠고 불규칙한 부분과 어둡고 매끄러운 부분을 넓게 공간분할해서 시각적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두텁게 퇴적된 물성과 내면의 깊이, 거칠고 투박한 면과 매끄럽고 잔잔한 면의 공간대비 촉각적 화면효과를 탐구하던 최 화백의 비정형 회화는 80년대 중반부터 한지를 주 소재로 큰 전환점을 보인다. 닥나무 종이로 슬레트 지붕 같은 골을 만들고 젖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구멍 나게 밀어 속 색깔을 내비치는 새로운 작업방식에 집중하게 된다. 그 골 형태 요철효과가 한옥의 문살모양으로 바뀌고, 한지의 물성변화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루다가 88년경부터 생애 최후의 연작주제인 ‘코리안 판타지’로 이어진다. ‘코리안 환타지’는 작가가 평생 천착해 온 근원과 전통에 바탕을 둔 독자적 현대 추상회화를 구축해내려는 열념의 마지막 소진단계였다. 덧쌓는 재료가 두텁고 끈적이는 인공안료에서 흡습성과 반투명성을 지닌 천연 한지로 바뀌었을 뿐 덮고 드러내고 밀어내고 찢고 태우면서 겹쳐지는 중첩효과는 넓은 여백부분과 시각적 안배를 조율하면서 경쾌한 비정형 판타지를 이루어내었다.그리고, 생의 마지막 에너지가 잔불처럼 희미해져 갈 때, 최화백은 홀로 남기고 떠나야 하는 아내에 대한 애끓는 사랑과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으로 비정형 소품 100점을 목표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진통제보다 더한 사랑의 힘으로 단장의 고통을 견디며 그려가던 <사랑하는 내 아내에게 바치노라> 연작은 55년 짧은 생애의 최후 작품이지만 오히려 생명의지와 활력이 넘치는 화면을 50점까지 이어가던 중 안타까운 생의 불꽃은 끝내 지고 말았다. 전시를 기획한 시립미술관의 김민경 학예연구사는 “그는 자신의 심상에 있는 주관적인 개념이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물질을 탐구하고 그 내면적 조형적인 질서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끌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코리안 환타지’를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작가 에포크회’를 구심점으로 호남 현대화단에 추상미술의 맥을 일궈온 최종섭 화백의 비정형 예술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는 귀한 회고전이다. - 조인호의 미술이야기(2014.12.10, 일부 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