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인연을 다스리며' - 민은주 한지조형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5-02-04 19:14 조회8,07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민은주 한지조형展 '두 겹의 시간' 2015. 02. 04(수) ~ 02. 26(목) 롯데갤러리 광주점(롯데백화점 11F) 영겁(永劫)의 인연을 다스리며 민은주 한지조형전 ‘두 겹의 시간’ 한 호흡에도 쉬이 날아갈 것 같은 종이 한 장.그 위태로워 보이는 보드라운 물성은 자연의 빛을 담아낸 결과일 뿐, 외려 강건하다.으레 천년을 간다는 우리의 종이 한지, 이 한지에 묵묵히 삶을 투영하는 이가 있다. 한지 공예가 민은주, 그녀의 작업은 참 단단하다. 닥나무의 얽히고설킨 섬유가 수십 번의 물질에 의해 한 장의 종이로 거듭나는 것처럼, 작가의 작업은 한지의 견고함을 그대로 닮았다. 작업은 단순히 종이를 덧입히는 것이 아닌 여러 번 중첩한 한지를 건조해 문양을 새기는 과정을 거친다. 문양이 새겨진 한지는 선조들의 미감이 살아 숨쉬는 문갑, 반닫이, 궤, 사방탁자, 서안 등의 나무백골(白骨)에 입혀지고, 이내 남아있는 골격은 한지로 마감하거나 혹은 그 위에 옻칠을 가하게 된다. 한지 위의 옻칠은 종이의 수명을 열 배 연장시킨다 하여 예로부터 ‘만년지(萬年紙)’로 일컬어졌다. 지속성이 배가된 한지, 그리고 가구 명인에 의해 탄생한 백골은 백동 장석과 금박, 색색의 자개 등으로 장식되며 수려한 구조물로 완성된다. 민은주의 결과물은 의미 그대로 화려하지만, 속되지 않은 완연한 맛을 자아낸다. 기교의 과잉을 절제하며 이음새, 자물쇠 하나하나도 가벼이 넘기지 않았던 옛 명장의 섬세함을 쫓는 듯하다. 문갑사방탁자 확대 작가는 본시 구상조각을 전공했었고 고된 작업과정을 익히 몸에 익혔던 터이다. 어찌 보면 과정의 수고로움이 낯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한지를 만져온 시간은 녹록지 않았다. 때로는 한지작업을 통해 살아감의 번뇌를 풀어내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의 이치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한지는 내게 봄날의 꽃이었고, 한여름 느닷없이 쏟아져 내리는 한 움큼의 소나기였으며, 가을의 빨간 단풍이었고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폭설이기도 했다”는 그녀의 회고에서 작가가 갖는 한지에 대한 애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불어, 한지에 새겨진 문양에서는 미적인 장식성 외 수복강녕(壽福康寧)과 덕이 충만한 삶(攸好德)을 기원하는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부귀와 번영 등 인생의 찬란함이 투영된 모란은 화려한 금박으로 단장하기도 하고, 맺어진 인연 희망 가득한 금슬로 빛나길 바라는 지, 얽혀있는 당초문 위에 나비 장석이 놓여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한쌍의 봉황과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십장생, 그리고 세상에 그 큰 뜻 펼치라며 힘차게 차오르는 잉어무리까지 우리 삶의 마중물이 되는 절절한 바람들이 촘촘히 새겨져있다. 그러나 민은주의 문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꽃이다. 불교에서 연기(緣起)를 강조하는 것처럼 작가는 억겁의 시간 속 수많은 인연들을 수천송이 연꽃으로, 그리고 흩날리는 꽃잎으로 은유한다. 겹겹이 쌓인 종이의 살결처럼 우리네 삶도 얼기설기 무수한 인연으로 이뤄진다. 사람살이가 내포하는 삶의 번잡스러움, 그리고 이에 의한 생의 외연이 비좁아지는 역설처럼 삶의 매 순간순간을 조율해가는 과정은 뜻 그대로 고된 행로일 터이다. “꽃 피기 전에는, 기대하는 이도 없는 진달래여라” 며 일찍이 옛 시인은 읊었더랬다. 오랜 시간을 웅크리다 이제야 우리에게 인생 이야기를 건네는 작가, 에둘러 말하면 지금에서야 자기만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홀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과정, 그 영겁의 시간을 창작을 통해 다스리는 세월이 부디 완성형의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며, 이번 자리가 많은 분들의 소중한 인연으로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