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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과 분출, 그 동일시의 교감 - 이인성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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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8-28 20:08 조회11,1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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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우리 연구소의 연구원인 고영재 큐레이터
    (광주롯데갤러리)[2013아시아문화예술활성화거점 프로그램 운영사업 결과보고서](2014. 2. 무돌마루사업단)에 실었던 지역작가 공간 크리틱중 일부입니다. 반년여 지나긴 했지만 여전히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광주 청년작가에 대한 객관적 조명이자 비평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운영자 주)



    이인성 <울음> 2013, 61x73cm, Acrylic on canvas



    상실과 분출
    , 그 동일시(同一視)의 교감

    이인성 회화작업의 가능성

     

    반추와 투영, 감성, 내적인 이미지, 자아, 소통.

    예술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들이다. 외부세계의 재현이라는 미술의 피상적인 역할을 넘어서, 인간의 삶 깊숙이 파고드는 심상의 표현, 더불어 다양한 갈등구조를 건드리고 위로하는 장르적 속성은 미술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 가치이다. 감상자라는 제한된 역할에서 예술의 향유자로 그 소통의 폭이 깊어지는 연유도 이 부면에서 기인한다.

    회화를 주된 표현형식으로 삼는 이인성의 작업은 장르의 가장 본연적인 힘에 천착한다.

    이차원의 매체에 일으키는 작가만의 환영(illusion)은 그것이 이차적 재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체감의 폭을 확장시키는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시기와 이후 3년 간의 작업에서 보이는 왜곡된 형태와 선, 색채의 어울림은 다분히 표현주의적인 성향을 보인다. 얼핏 주정주의(主情主義)의 태도를 드러내지만 주제 표출에 있어 전지적 시점과 관찰자 시점을 오가며 현대인의 시대적 상실감과 공허함을 이야기한다.

    작업 초기, 창작자가 갖는 포부란 종종 이상적이고 광의(廣義)의 영역을 언급하는 형태를 띤다. 최근 들어 변화된 이인성의 화법은 관람자에게 사유의 여운을 던져준다. 이전 작업에 비해 형식과 내용 면에서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며, 평면회화에 농밀한 기운을 배가시킨다.


    소외와 소내(疎內)의 교차점

    2009년과 2010~2011년도의 개인전 타이틀은 각각 <혼란 속의 일상>, <Agit>, <In Agit>이다. 작가가 바라본 다양한 삶의 현존(現存)은 실재적(實在的)이며 지극히 감정이입의 양상을 띤다. 은신처, 혹은 근거지의 의미로 해석되는 아지트(Agit)는 외부와의 단절이란 속뜻과 함께 삶의 용이함을 위한 침잠으로도 읽혀진다. “좀처럼 공개되어지지 않는 삶의 일기장처럼 회화, 혹은 미술이라는 방식으로 일기를 만들어낸다는 작가의 주장을 염두에 두었을 때, 창작 자체가 작가에게는 사념의 기록이다. 화법은 다소 무심한 시점으로 일관하지만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그 현상의 본질을 보려한다. 이미지와 기호, 혹은 이것이 허상임을 깨닫지 못하는 스펙터클의 현대사회에서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현대인의 의식세계를 작가 자신의 상황과 아울러 표현한다. 전시 <혼란 속의 일상>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그리고 이로 인한 억압의 현재에서 채 드러내지 못한 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데, 현대인이 안고 가는 근원적인 상실감과 고독이 일상 한 켠에 재현돼있다. 도시 불빛을 배경으로 골방에 은밀히 자리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공허한 눈빛, 해소와 분출 따위의 본능 아래 부대끼는 클럽 안의 사람들, 다양한 미디어의 허상에 둘러싸인 일상의 무료한 공기 등은 현대인의 실존에 관해 고민한 나름의 결과물이다.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삶의 찰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신경증적 강박이 자리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굵은 회화적 터치와 암울한 색감, 경험에 바탕을 둔 상황묘사 등에서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가까이 다가간다. <혼란 속의 일상>에서 작가가 바라본 삶의 쟁점은 Agit 시리즈에서도 이어진다. 클로즈업된 일상적 공간에는 건조한 공기가 흐른다. 무채색의 무거운 톤으로 일관하다가도 표류하는 감정의 기류를 상징하듯, 적색, 청색, 황색의 색조가 화면 전체를 감싸 안는다. 홀로 서있거나 혹은 무리 지은 인물 배치에서도 개체적 자아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빠른 붓질로 단행한 이목구비는 하나같이 소멸되거나 생략되어 있다. 어떠한 상황 속에 놓여진 는 필연적인 그 상황 안에서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사회에서의 인간소외라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문제의식이 작품 면면에 돋보이는데, 사회로부터의 단절에서 자아로부터 사회에의 단절이라는 현상학적 접근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와 나의 관계성은 그것이 각기 동떨어진 객체로 양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인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작가가 드러내는 아지트는 보다 실제적인 부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비슷한 맥락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소내(疎內)를 환기시켜보자. 인간이 느끼는 소외감을 깊이 파고들면 이는 자신이 안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라 한다. 소외의 반대 의미로, 사회로부터의 고립이 아닌 철저히 자기 안으로의 몰입을 뜻하는가 하면, 소외된다는 극한의 부정성을 자신으로의 침잠이라는 긍정적 기운으로 치환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주체의 깊이를 응시하는 소내는 타인의 상황에도 주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하기에, 사회와 인간, 그 안의 관계망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예술 영역에서는 익히 유효한 태도로 여겨진다. “나와 주변의 이야기를 작업을 통해, 동시대 속 개인의 모습을 자유롭게 풀어내고자 한다는 이인성의 다짐은 나와 타인의 심리적 유대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동일시(Identification)의 귀결일 것이다.

    그의 날을 사색함

    수평선 위로 펼쳐진 잿빛 하늘, 그 가운데에는 약속과 희망을 상징하는 무지개가 아스라이 자리한다. 등을 진 인물들은 관람자와 동일한 방향에서 풍경을 응시한다. 건물 안의 개방된 공간에 자리한 몇몇의 인물은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무심히 원경의 공기를 느끼는 듯하다. 화면 구성에서 불안전하게 잘려 있는 검은색 프레임은 화폭에 확장된 공간감을 부여하는데, 우측 상단에 엇각으로 놓인 검은 색면이 아래의 희미한 인물과 대조를 이루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2013년 개인전 <HISDY>에 선보인 작품 너머의 풍경이다.

    특별한 서사성을 드러내지 않는 이인성의 근작은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전 작업보다 무채색 위주의 색조가 더욱 두드러지며, 표현주의적인 재현 방식에서 나아가 보다 절제된 경향을 띤다. 더불어 단순화된 터치와 색면, 그리고 상황을 제시하는 데 있어 최대한 잉여표현을 생략하는데, 외려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작업의 의도는 작가 본인의 기억으로부터 나를 보는취지이다. 전시 주제로 쓰인 <Hisdy>His + day의 의미를 합성해 놓은 표현으로 그의 날이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20대의 갈등과 고민으로 점철된 종전의 작업 성향에 비해, 작가 스스로 과정 중에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히 바라본다. “지난 일기장(작업)을 보면서, 그 시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지나간 나를 이해한다는 작가는 반성적 시각에서 나의 현재에 몰입, 감상자에게도 비슷한 소회(所懷)를 불러일으킨다.

    사색의 여운을 안겨주는 작가만의 이야기 전달 방식은 여전히 매력 있는 화법(話法)으로 다가온다. 쓸쓸히 머리를 움켜쥐며 홀로 식사하는 사람, 얼굴에 음영을 드리운 채 클럽 한구석에 자리한 젊은이들, 나체의 모습으로 욕실에 앉아있는 여인, 누군가의 손길로 머리손질을 하고 있는 남자 등, 유독 관계 안에서 홀로 위치한 인물들이 눈에 띈다. 피상적으로 두드러지는 쟁점은 관계, 혹은 소통의 부재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상황에서 독해할 수 있는 자아의 현재, 의 지금에 관해 재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지니고 있는 일상에 관한 관찰력, 그리고 사유의 폭은 사뭇 섬세하고 밀도 깊다. 또한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항상 나의 존재와 결부되며, 나의 이야기를 넘어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 점이 이인성 회화작업의 가능성이자 힘이다.

    다양성이라는 명분으로 급변해 온 현대미술은 익히 다양한 매체와 형식들을 수반한다. 형식의 현란함 뒤에 따라오는 내용의 부재라든가, 시장성, 혹은 예술에 마켓팅이라는 개념이 부각되는 형국에서, 삶의 현재를 깊이 있게 조망함은 때로 진부한 흐름으로 명명된다. 자신이 바라보는 창작의 가치가 사회와 인간의 삶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는지, 무엇을 위한 예술을 염두에 두는지, 끊임없는 의문부호를 던져야 한다. 이인성의 작업에서 그 순기능의 확산을 엿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_ 고영재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이인성 <경계의 사람들> 2013, 162x260cm, Acrylic on canvas


    이인성 <agit-w> 2008, 90x72cm,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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