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지발굴 50주년기념 '무등산분청사기 특별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8-07 11:12 조회11,28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소박하고 초탈한 멋을 보여주는 조화문분청사기. 조선초기. 15세기 ▲ 다양한 방식의 인화, 귀얄, 조화, 박지기법 분청사기들. 조선초기. 15세기 ▲ 은암미술관의 분청사기특별전 ‘분장의 향과 멋’- 이은석, 김영설, 김치준, 박주옥 작품 ▲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충효동 무등산분청사기 도요지 발굴 50주년 기념전시 일부 무심 초탈한 멋 ; 무등산 분청사기 선비문화의 초연한 멋 초탈한 파격미 현대까지 전승 지역문화자산으로 특화 필요 무등산 분청사기는 광주의 귀한 문화자산 중 하나다. 도자기의 특징을 가늠하는 유약이나 그릇의 표면장식, 형태 등에서 강진청자와는 다른 시대의 미감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광주문화의 산실인 무등산 자락을 모태로 빚어져 한 시대를 풍미했기 때문이다. 사실, 광주는 특정 공간에 가시적인 조형물로 남아 역사를 오르내리는 징검다리가 되어줄만한 옛 사적이나 유형문화재가 그리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지역의 역사 자체가 근대기 이후에야 형성된 신생 도시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외지 손님을 어디로 안내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이 땅의 역사를 실감할만한 굵직굵직한 현장이 적기도 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은 관광상품으로써 흡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창동 고대유적은 도로변 밋밋한 녹지라 현장감을 느끼기 어렵고, 무등산 자락의 조선중기 시가문화권 원림이나 양림동 개신교 관련 근대건축물, 춘설헌 주변처럼 군집을 이룬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고대 고분이나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석등과 석탑, 철불ㆍ석불ㆍ마애불상, 부도, 민속자료 등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보니 방문대상지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다만, 일제 때 철거된 구 도심의 광주읍성 성곽의 주요 위치에 2년 전 10개의 광주폴리를 세운 것이 최근 다른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현장견학과 광주방문꺼리가 되고 있어 역사와 문화를 접목한 관광자원 개발의 긍정적인 예이다. 무등산 분청사기는 장소성이나 규모, 제작기법과 형식면에서 광주가 내놓을만한 소중한 문화자산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그 특징적인 작업이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드문 예이기도 하다. 분청사기는 귀족적이고 화려하면서도 치밀한 고려 상감청자의 퇴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부 상감기법을 따르거나, 꽃도장을 고루 밀집시켜 표면을 장식하는 인화분청은 그렇다치더라도, 그릇 표면에 흰 분장토를 씌우고 그림 이외 부분을 긁어내거나, 가벼운 선으로 주요 형체만 그리거나, 솔비로 분장토를 훑어 칠하거나, 아예 통 속에 거꾸로 담궜다 꺼내 흘러내리는 자국을 그대로 남겨 두는 등 고려청자와는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준다. 이런 인위적 흔적을 줄여가는 소박하고도 무심한 분청의 멋은 조선시대에 일관되게 흐르는 소박하면서도 초탈한 호연지기 정신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고려청자도 후기 들어 함축적인 도상들만 남긴 채 허허로운 무한공간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분청의 소박한 표면처리와는 다른 차원의 비움의 멋이다. 어찌 보면, 불교의 장엄문화가 배경이 된 화려한 절제미와, 유교의 호연지기 선비문화가 지향했던 초연함의 차이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잡스러울 수도 있는 거칠고 투박한 분청 그릇들이 조정왕실에까지 납품되었다하니 그런 파격이 수용될 수 있었던 조선 초기 새 왕조의 시대문화가 달리 보이기도 한다. 남도 민초들의 소박한 미감이나 민예적인 기법이 왕공사대부들에까지 통하였다는 것인데, 이 같은 민예미가 이후 오래토록 조선시대 미술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 15세기 전후 분청사기의 여러 유형과 흐름, 제작과정이나 흔적, 역사ㆍ문화적 의미와 가치까지 고루 보여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국립광주박물관의 무등산 분청사기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7.23~10.13)이다. 이와 함께 은암미술관에서도 분청사기 도요지 발굴 50주년에 맞춰 현대 도예가 16인의 분청사기 특별전 ‘분장의 멋과 향기’(7.18~8. 1) 전시를 마련했다. 분청사기의 소박한 멋과 대범한 파격미를 전승해내는 현대 도예가들을 초대한 전시였다. 분청사기는 6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분명 지역문화사의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걸림 없는 분장 방식은 서구 현대미술의 비정형추상에서 나타나는 인간 내면의 자유의지, 전위적 형식의 일탈욕구와는 다른 차원의 초탈한 멋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분청사기 도요지가 자취를 드러낸지 50주년이라는 시점에, 세상의 관심과 조명이 모아질 때 이 분청사기를 지역 문화관광 자산으로 특화 계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가령, 현재 무등산 분청사기 도요지에 대한 발굴과 관리, 운영이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시립민속박물관으로 이원화되어 있긴 하지만, 충효동 도요지 현장의 전시관 시설을 보완하여 전시내용물도 더 모으고, 방문 편의와 홍보ㆍ학습 꺼리들을 늘리며, 현대 분청사기 작업들도 함께 전시ㆍ판매하면서, 인근에 도예가들의 작업장이나 가마를 가까이 유치하여 역사를 넘나드는 분청사기 도예촌을 조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인근 시가문화권을 비롯하여 충장사, 원효사, 개선사지, 왕버들, 광주호 생태원 등 주변의 산발적인 문화재ㆍ사적ㆍ자연유산들을 묶어 무등산 북쪽지구의 광주 문화관광 자원을 활성화시켜보는 것이다. - 전남일보 ‘조인호의 미술이야기’(2013.8.7) 원문 일부 수정▲ 무등산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 보존각과 전시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