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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숲에서-선비의 정원에 들다' 정광희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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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7-16 19:55 조회9,5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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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숲에서-선비의 정원에 들다

    정광희 초대전 



    2014. 7. 17(목) - 7. 29 (화)
    광주 롯데갤러리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


    예술에 있어 정신성에 관한 문제를 염두에 둘 때
    ,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려 했던 현대 서구미술의 변화를 고려하게 된다.

    일례로 선사상을 위시한 현대추상미술의 서체주의는 무아(無我), ()의 세계를 표방하며 특유의 몽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냈다. 이는 즉물적이고 시각적인 것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과 유관하며, 서예가 지니는 조형성에 천착한 결과이기도 하다. 더불어 서구의 사고 흐름에서 동양의 사유방식을 연구하고 차용함은 형식 이면의 내용의 당위성을 확보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현대서구문명의 영향 아래 총체적인 사회 문화의 급변을 경험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동양적인 사유의 가치는 새삼 재고되고 있다.

    정광희의 금번 전시는 이러한 흐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대숲에서 - 선비의 정원에 들다>라는 전시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현대인이 상실해버린 본연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서예와 한국화를 전공한 정광희는 문자와 서체에 함축된 사상적 특질과 조형미를 추상적인 패턴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는 단순히 종이 위에 가하는 서체적 추상이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형식을 띤다. 장지를 일정한 두께로 접어서 얇고 긴 합판 조각을 감싼 뒤 이를 네모진 형태로 만든다. 그 위에 고서에서 떼어낸 종이를 붙이는데, 1cm 내외의 조각들을 붙여서 하나의 큰 화폭을 구성한다. 그 화폭에서 일필휘지의 거대한 필선을 보여주기도, 미묘한 먹의 농담의 실현하기도 한다. 누르스름한 고서의 파편이 상징하는 시간의 축적, 혹은 다양한 삶의 서사는 동양문화에서의 여백이 비어있는 공간 이상의 이야기를 담아냄을 피력하는 것이며, 또한 관념적 유희의 산물이 아님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형식의 연장이자 새롭게 확대된 형식을 보여주는데, 얇은 합판 조각이 아닌 150여 개의 거대한 대나무 위에 먹물로 배채한 순지를 입히거나, 그 위에 고서를 붙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개개의 대나무는 전시 공간 안에서 숲을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진한 먹물이 상단부로 올라가면서 점점 옅어지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이 설치물을 화폭으로 간주할 때, 대숲은 수묵의 농담으로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정광희는 "짙은 땅의 기운을 바탕으로 쭉 뻗은 대숲은 올곧게 위를 향하며 그 생명력을 하늘과 바람에, 즉 다시 '자연'으로 산화시킨다"고 설명하는데, 작가가 주목하는 수묵의 상징성이 배가되어 독특한 사색의 공간이 창출된다. '수묵'을 단순히 물과 먹의 농담을 이용한 매체적 특질로 한정 짓지 않고, 그 안에서 자연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것은 옛 선현들의 정신성을 본 받기 위함이다. 모든 삼라만상의 색을 대변하는 검은색의 ''과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의 생명력, 혹은 그것에 순응하는 삶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 정광희가 서예를 다뤘고 여전히 먹을 다루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외형의 묘사보다는 내재적인 이상을 반영하고자 한 사의(寫意)의 경지가 이미 물상의 이치와 섭리를 터득해야 가능했던 것처럼, 작가는 전통적인 가치에서 우리가 간과해버린 이상성을 추구하려 한다.

    또한 작가는 대나무가 상징하는 선비정신에 집중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속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곧은 성정을 지켜내는 선비의 결의, 그리고 비움으로써 더욱 푸르르고 단단해지는 대나무의 속성을 견주어 작업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덕성, 대의를 중시했던 선인들의 정신성은 경쟁과 자본, 물질만능으로 설명되는 현대사회의 민낯을 바로 보게 한다. 이와 관련해 정광희는 본인의 작업 과정을 두고 "물질의 풍요 속 정신성의 상실에서 벗어나,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일컫는다.

    그가 만든 대숲 사이에는 길 하나가 놓여진다. 삶의 번뇌에 지친 이들에게 사색의 순간을 부여하는 의미지만, 근원적 삶터인 자연 안에서 나를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반추함은 안식의 행위와 더불어 반성적 성찰까지 포함하는 것일 테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는 정신문화의 부재를 화두에 둔다. 그만큼 지금의 모습은 '가득하나 텅 비어있는 풍요'와도 같을 것이다.

    보다 풍성하게 존재하는 삶을 재고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작가의 새로운 시도에 많은 분들의 격려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 고영재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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