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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장에서 캐낸 삶의 진실; 황재형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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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11-20 11:31 조회11,8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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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형, <Sulfuric>, 2008, 162.2x112.1cm, 캔버스에 유화

     

    막장에서 캐낸 삶과 예술의 진실


    치열하게 파고든 예술의 근원가치
    인생 묻은 탄광촌의 숭고한 삶
    검은 땅에 비치는 욕망의 신기루


      심한 근시를 콘택트렌즈로 위장하고까지 제 발로 막장을 찾아들어갔다. 일부러 광차도 없이 질통지고 탄을 캐는 정선 구절리 광산 같은 최악의 원시적인 갱들을 찾았다. 탄가루로 생긴 결막염 때문에 몇 달 못가 쫒겨나면 다른 탄광들을 전전하며 3년여 간을 막장에서 몸을 빼지 않았다. 실명위기까지 몰릴 정도로 심해진 결막염 때문에 결국은 더 이상 갱 속에 들어갈 수 없게 됐지만, 서울이나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척박한 탄광촌에 눌러 앉아 “짐승처럼 버려진” 가엽은 장애아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막장 동료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삶을 그림으로 그려왔다.

      그 곳이 무덤일지도 모르는 땅 속 깊이 구덩이를 파 들어가며 화가 황재형이 치열하게 캐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세상 음지의 끝이라 할 막장에 몸을 던져 무엇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진실!’ 급속한 산업사회로 휘황하게 변해가는 세상 뒷그늘에 가려진 삶의 본질과 실체. 몸이 삭아 닳도록 지독하고도 절실하게 움켜쥐고 싶었던 것은 바로 진실캐기였던 것 같다.

      "예술은 인간의 진실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산업화 과정의 가장 고달프고 어려운 현장인 막장을 찾아 나섰다“

      30여년 전, 피의 희생을 제물로 삼아 정권을 찬탈한 독재군부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하고, 헝크러진 세상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맞서 젊은 청년들이 사회현장으로, 산업ㆍ노동현장으로 뛰어들 때 황재형은 의식화된 이념이 아닌 예술의 궁극적인 사명과 가치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탄광촌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이후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노동현장의 모순과 건강성을 일깨우기 위한 잠시잠깐의 ‘위장취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생 전부를 그 곳에 묻는 예술적 순교를 자청하는 일이었다.

      인생막장 갱도 안에서 동료들과 부대끼며 황재형의 몸에 저며든 것은 삶에 대한 비감을 넘어 생의 숭고함이었다. 밥! 끝없이 소모시킬 육신을 버티기 위한 비장한 의식, <외눈박이의 식사>(1984~1996), <식사Ⅱ>(1985~2007)에는 그런 ‘먹는다’는 삶의 행위에 대한 경건함이 짙게 깔려 있다. 오직 노동을 위한 육신만이 존재할 뿐인 그들은 얼굴없는 <산업전사>(1982)로 자신의 실체마저 잃어버렸다. 낙인처럼 몸에 찌든 검은 땀과 탄가루만이 <목욕(씻을 수 없는)>(1983) 천역의 낙인이 되어 몸에 절여 있다.   

      더 이상 탄을 캘 수 없게 된 이후 황재형의 작업은 갱 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탄광촌의 회흑색 풍경들을 화폭에 옮겨내는데 집중되었다. 광부들의 몸뚱이 하나하나가 어떤 이의 욕망을 떠받쳐주는 하루살이라 할지라도 몸 뉘일 집과 가족만이 형극의 세상에 버텨 사는 이유가 되는 그들 풍경을 갱 바깥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실존현장으로 담아낸 것이다. 폐허 같은 탄광촌 시커먼 산자락에 내려 깔리는 원혼들의 <검은 울음>(1996~2008), 고랑처럼 패여 질퍽이는 읍내거리를 눈보라 광풍이 덮쳐오는 <염고(厭苦)>(2001), 얼어붙어 황량한 거리에 회오리가 일어나 앞을 가리는 <바람 그 너머>(2005~2007), 삶의 고통이 거친 파도처럼 겹겹으로 밀려드는 <검은 길>(2008~2009) 등이 그런 생생한 기록들이다.

      황재형의 그림에 낭만이나 꿈은 없다. 오직 질긴 하루 시간을 무사히 넘겨야 하는 절박한 삶의 호흡만이 탄가루를 씹으며 확인될 뿐이다. 있다면, 자식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 그것이 탄가루 가득한 칠흑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환영처럼 가물거리는 희망의 불빛이었을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기 조국의 산업화를 이끈 전사들이라는 수사들은 입바른 언사들일뿐이고, 불빛 찬란한 바깥 세상에 자식들 반듯하게 살 수 있도록 내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들, 화려한 세상 뒤 소외와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이 따뜻한 온기를 지필 탄을 캐내던 그들은 이제 탄광촌 산야처럼 몸은 노쇠해지고 주름은 더 깊어져 간다. 골골이 주름 패인 <아버지의 자리>(2011~2013)와 <존엄의 자리>(2010)는 그런 탄광촌 부모들의 초상인 셈이다.

      이제 탄광촌에는 곳곳의 땅구덩이에 매몰된 광부들의 주검 위로 흐르는 검은 강에 화려한 네온들이 번뜩이고, 여전히 세상 끝까지 밀려 온 이들은 이제 몸과 땀이 아닌 빚과 인생을 털어 넣으며 신기루를 거머쥐려 한다. “탄광만이 막장이 아니다”는 황재형은 “그 카지노가 광부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 짓는 건물이나 가로수 하나까지도 태백다운 멋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육신과 영혼의 고향 못지않게 삶의 진실을 일구며 생업과 화업을 함께 해 온 탄광촌에 푸른 생명의 희망들이 봄꽃처럼 피워나기를 바래본다.



    ▲ 황재형, <바람 그 너머>, 2005~2007, 72.7x53cm, 캔버스에 유화


    ▲ 황재형, <검은 길>, 2008~2009, 259.1x162.1cm, 캔버스에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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