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추모전 II - '맥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5-22 08:50 조회9,94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강하 추모전 ‘남도문화의 맥’ 나의 작품 속에 우리의 색채, 선, 형태를 나의 방법과 나 나름의 해석으로 재창출해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내 민족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거기에 흐르는 ‘맥’은 무엇인지 살펴외래문화와의 비판적 접맥은 우리의 성숙한 전통문화로 이어질 것이다.나는 우리의 것에 더 많은 애착과 끈기를 가지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려고 한다. 위 글은 남도문화의 맥을 현대회화로 되살려내는데 집념을 다해 천착했던 화가 이강하(1953∼2008)가 남긴 1989년 작업노트의 한 구절이다. 그가 타계한지 6주기를 맞아 추모전시회(2014, 4.8∼5.30, 무각사 로터스갤러리)가 마련되어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했던 ‘전통의 맥’에 대해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이강하의 작업은 이 땅 사람들의 오랜 삶 속에서 다듬어지고 숙성·전승되면서 역사의 큰 맥을 이루어 온 민족 전통문화의 소재들을 사실주의의 치밀함과 초현실주의의 상징성이나 신비감을 결합시켜 독자적인 회화세계로 구축해 낸 것들이었다. 주로 탈춤, 불상, 인왕상(금강역사), 단청 등을 견고한 구성으로 조합하여 세밀하게 묘사하고, 화폭 넓게 가늘게 엮인 발을 드리움으로써 가시적인 현상미와 그 이면에서 드러날 듯 말 듯 내비치는 은근미를 함께 담아내었다. 이번 추모전은 Ⅰ·Ⅱ부로 나누어 ‘지중해 연작’과 ‘맥’ 연작 일부를 다시 보여준다. 물론 일관되게 추구했던 화제로서 비중이나 작품의 제작 시기들로 보아도 ‘맥’ 연작이 우선이지만, 전시는 앞뒤를 바꾸어 진행되고 있다. 5월 1일부터 작품을 교체하여 계속된 2부 ‘맥’은 주로 80년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돈스러웠던 격변기에 전통 깊이 뿌리내려 있는 불교나 민속적인 소재들을 통해 민족문화의 대맥을 되살려내는데 집중했던 작업들이다. 70년대 말부터 ‘남도문화의 맥’ 탐구 사실, 미술을 통해 민족문화의 뿌리를 되짚어보려는 이강하의 ‘맥’ 연작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다. 그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부친의 단청작업이나 꽃상여 꾸미는 일 등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고, 더불어 우리 전통문화 복원 계발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던 70년대의 시대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즉, 1971년 서울대 ‘민속가면극연구회’나 1973년 이화여대·서강대 탈춤반 등장에 이어 이 지역에서도 78년 초 전남대 탈춤반이 결성되었고, 전통문화의 지킴이로서 정서적 공감대가 컸던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78년 활동을 시작하는가 하면, 이런 흐름이 80년대 들어 탈춤, 풍물, 판소리, 마당극, 연희극 등 이른바 문화적 자주성과 정체성을 재정립하자는 민족민중문화운동의 열기로 더해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문화 흐름 속에서 이강하는 20대 후반이던 1970년대 후반부터 민족 전통문화 복원과 남도문화 맥을 되살리는데 작업의 중심을 두게 되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도 1979년부터 ‘맥 脈’ 주제의 이른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월출산 구정봉 아래 마애여래좌상을 거친 화강암 질감 그대로 살려 묘사한 <념-월출의 얼>이나, 갓 빚어 말린 도기 표면에 문양을 새겨 넣고 있는 도공과 작업장을 묘사한 <맥> 등이 이 시기 작업들이다. 이는 자연주의에 바탕을 둔 인상과 감흥 위주의 정형화된 지역화풍 대신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독자적 회화세계를 탐구하던 이행기의 흔적들인 셈이다. 특히 1979년 작품 가운데 <맥 脈>은 미술대학 입학 전부터 이미 이런 주제의 회화작업에 대한 자기 토대가 세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 아래 앞부분에 오방색으로 단장된 북 하나가 놓이고, 그 뒤 블라인드처럼 내려 쳐진 대발 사이로 각양각색의 한국 전통탈들을 배경으로 탈춤 추는 흰옷 인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무대 같은 화면 앞쪽에 주된 소재를 당겨 배치하고, 중간에 대발형태의 가림막을 치면서, 그 뒤 깊숙한 배경공간을 묘사하는 독특한 화면구성의 초기 예다. 같은 해 연작인 <맥Ⅱ>도 탈춤을 소재로 한 거의 같은 구성이다. 여기서는 원무형태로 덩더꿍 탈춤을 추는 세 인물을 화면 가득 묘사하고, 그 앞에 화면 가득 대발이 쳐져 있다. 화면 앞쪽에 아무런 소재 배치 없이 전체적인 형상들이 대발 뒤로 배치되는 구성이면서, 이후 작품들에 비하면 적·녹색은 덜하고 청회색조가 많은 차분한 분위기이다. 80년대 불교미술 소재로 민족문화와 ‘남맥’ 찾기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강하의 탐구는 20대 후반 늦은 나이로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1980년대에 들면서 본격화된다. 80년 대학 1학년 때 ‘남도 구상미술의 맥을 잇는다’는 취지로 ‘남맥회(南脈會)’(∼1998년)를 결성한 것도 지역문화 전통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모아내려는 의지의 실천이라 하겠다. 물론, 처절하고 혼돈스러웠던 민중항쟁과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그 역시 5·18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구속되어 곤혹을 치르고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시국현장에서 사회적 복무를 우선하는 민족민중미술 진영의 현실주의 참여미술보다는 남도인의 질박한 삶과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되살려내는 작업에 집중함으로써 시대의 고뇌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이 80년대에 삶의 주변 풍경이나 남도 아낙들을 다루기도 하지만 그의 회화세계는 역시 ‘맥’ 연작에 더 집중된다. 전통문화 소재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가느다란 대발로 화면 앞뒤를 나누고, 정교한 단청과 장식적인 문양 등이 집중적으로 탐구되면서 이강하만의 독특한 회화세계를 견고하게 다지는 시기다. 특히 이전의 민속적인 요소들보다는 불교미술 관련 소재들이 주가 되고, 근엄한 신상으로써 경직되고 단조로워 보이는 불상보다는 과장되어 보일 정도의 역동적인 자세와 굴곡이 큰 이목구비의 강한 표정, 원색적인 복식의 목조인왕상과 신중상, 시왕상 등을 즐겨 그렸다. 1980년 작품인 <출토>는 탈춤에서 불교미술 쪽으로 주된 소재가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법당이나 무속적인 분위기의 공간이 아닌 넓은 초원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위압적인 모양세를 취한 인왕상들을 거리를 두어가며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더불어 동종과 석등, 연등들을 군데군데 배치한 그림이다. 이 작품에는 특유의 대발이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주 소재인 인왕상은 물론 풀밭 한쪽에 드러난 낡은 마루판과 폐허를 뒤덮은 풀잎들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묘사하였다. 생활 속 옛 유물과 가상의 전통문화 이미지를 혼재시켜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작품이다. 전시 작품 중 1981년의 <맥> 2점은 같은 제목의 79년 작품과 거의 유사한 구성이다. 다만, 민속적인 탈춤 대신 불교의 수호신장인 인왕상을 화면 앞뒤로 배치하고 색채도 훨씬 오방색을 살려 선명하게 다룬 점이 다르다. 이들 인왕상은 통나무 받침 위에 새겨진 고정된 목조각상이지만 탈처럼 울퉁불퉁한 이목구비나 천의를 휘날리는 위압적인 큰 몸짓들이 탈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앞뒤 조각상 사이에 대발을 내려뜨려 마치 종교적인 신들의 영역과 인간세계를 실상과 가상으로, 드러나고 감추어진 중층적 이미지로 연출한 점은 ‘맥’ 작업과 일관된 방식이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힘을 담아내는 인왕상 소재의 ‘맥’ 연작은 1984년에는 아예 두 인왕상의 상반신을 대발 뒤로 가득 채워 넣기도 하고, 화면 앞부분에 작은 크기의 시왕상이나 동자상, 코끼리 등에 올라탄 보현보살상 등을 함께 배치하거나, 붉은 가사를 걸친 노스님을 앉히기도 한다. 또한, 대발 뒤에 어렴풋이 불상을 모신 불단과 함께 옆에 인왕상이 서거나, 열린 법당문 너머로 멀리 경내 풍경이 살짝 내다보이게 해 바깥공간까지 확장감을 더한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 이 시기 작품인 <망忘>은 또 다른 분위기다. 소재부터가 종교적인 것들이 아닌, 상체가 거의 드러날 정도의 엷은 흰색 속옷을 걸친 여인의 옆모습이면서 주변에 백자 항아리들을 배치하고, 화면 가운데 태극무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화폭을 가로지르며 가느다란 끈을 마치 대발처럼 촘촘히 쳐서 실제 발이 쳐져있는 듯 은근한 효과를 시도한 것이다. 엷은 갈색조의 어두운 공간에 가녀린 여인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그윽한데, 실제 오브제인 끈을 써서 대발의 효과를 달리 시도한 특별한 경우이다. 천·지·인의 조화롭고 신비로운 이상세계 이강하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건축적인 화면공간과, 장식적인 전통문양들, 사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 신비감을 자아내는 치밀한 묘사는 80년대 중반 무렵 누드가 결합되면서 훨씬 극적인 효과를 더하게 된다. 특히 고전적인 여체 누드와 화려한 무늬의 비단천을 함께 도입함으로써 현실을 초극한 이상미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번 추모전에서 다시 선보여진 <상>, <천지인-역사>, <염원>은 그런 예들이다. 1984년 작으로 소개된 <상>은 볼록거울에 비친 것처럼 곡면을 이루며 크게 휘어진 법당의 지붕 끝 와당무늬를 비롯, 처마·들보·기둥포작의 오색단청이 화려하고, 대발로 내부가 가려진 법당 문을 향해 뒤태 고운 누드여인이 비단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역사의 시차와 동·서 문화의 간극을 넘나드는 소재의 조합이 꼼꼼한 단청묘사와 견고한 구성미로 신비감을 더해주는 작품이다. ‘천·지·인’은 80년대 후반에 새롭게 접근해 들어간 주제다. 전통문화의 맥을 살려내면서 질곡 많은 이 땅의 삶에 위안과 가피를 발원하고, 이내 우주합일의 피안으로 이끌어가는 흐름이다. 88년 작품인 <천지인-역사>는 마른풀로 묘사된 척박한 이 땅 대지에 위무와 해원의 비단길이 깔리고, 장엄하기까지 한 그 비단길에 애환과 욕망과 치장을 벗어버린 누드여인이 가로누워 있다. 그 화면 깊숙이에는 굵은 연꽃송이들이 가득하고 섬세한 대발 뒤로 기골 장대한 인왕상이 호위신장처럼 지켜서 있다. 1990년의 <염원>은 등장하는 소재나 장식요소들이 훨씬 정제되면서 추상적인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두 갈래 생명의 물길이 아스라한 잿빛 뻘밭에 꽃무늬 비단천을 깔고 앉은 뒷모습의 여인누드가 결가부좌로 아미타불의 구품인 손모양을 하고, 마름모꼴로 두른 화면 네 귀퉁이에는 각각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도가 운무와 더불어 날고 있는가 하면, 화면 깊숙한 곳에 탈춤의 춤사위가 음영처럼 어른거린다. 방사형으로 구획된 기하학적 화면분할과, 화려하지만 간결하게 집약된 장식적 패턴들, 좌우 대칭형 자세로 안정된 중심을 이루는 누드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극적 긴장감과 신비감을 만들어낸다. 2008년 세상을 떠난지 6주기인 올해 부인과 자녀에 의해 기획된 이강하 화백의 추모전은 남도문화의 맥을 독창적 회화세계로 되살리는데 집념을 쏟았던 그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보는 기회다. 물론 영산강과 남도사람들, 이상세계로 승화된 무등산 연작 등 광대한 작업들 가운데 정신의 근본을 이루는 문화전통과 그 맥을 다룬 작품들 일부를 다시 살펴보는 소박한 전시다. 전통의 맥이나 공동체 문화보다는 급변하는 시대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활동력과 가치를 우선하는 요즘 세상에서 이강하의 회화세계가 격세지감을 넘어 고유문화로부터 새로운 창작의 원천을 재발견하는 자극원이 되길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