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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생태와 농(農)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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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2-10-03 13:44 조회9,1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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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생태와 농(農)의 미학


    산자락과 들녘이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계절을 따라 나타나는 자연의 변화현상은 도식화된 일상에 묻혀 있던 우리에게 문득 생명존재와 우주자연의 순환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하는 시각적 경험을 가져다 준다. 자연이 베풀어 준 화폭에 이용할 수 있는 만큼의 땅을 다듬어 연초록 싹들을 틔우고, 햇살과 비와 바람과 더불어 푸른 빛으로 곡식과 과채들을 길러 오만 색으로 열매를 맺는 그 옹골진 결실들을 거두고 나면, 잠시 터를 비워 생명의 휴식과 충전을 기다려주는 한 주기들이 이어지면서 세상은 돌아간다.     

    도시와 농촌이 맞물리는 일곡동 일신중학교 뒤편의 한새봉 아래골은 초생달처럼 굽어진 서마지기 논배미와 밭뙈기들이 자연을 찾는 도시사람들의 손길로 요즘 꽤나 알록달록 화려하다. 일곡동주민자치위원회가 관리 운영하는 주민농원 ‘한세봉두레 개구리논’ 풍경이자,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한 회원들이 서로 힘을 합해 일궈가는 생태현장이다. 아파트와 단독가옥들이 빼곡한 일곡동 주택가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 뒷길에 있는데, 아스팔트 길가에 세워진 안내표지판을 따라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가면 뜻밖에도 비밀의 농원같은 시골전답 풍경이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낮은 뒷산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으로 둘러쌓인 분지같은 곳에 벼논과 텃밭들이 실하게 가꾸어져 있고, 논둑길에는 비단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새신랑ㆍ새댁 부부, 날개 달린 어린천사와 빨간 모자가 앙증맞은 소녀 허수아비들이 텃밭에서 깔깔대며 일하는 두레 가족들과 더불어 이 개구리논의 주인이 되어 있다. “자연지형이 만드는 선과 면의 미를 살리면서, 익어가는 벼의 색깔 변화에 잘 어울리도록 현장 설치작업을 진행하였다”는데, 논둑길에는 마치 색점들을 연결하듯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다른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바람따라 돈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개구리논 현장감이 잘 살아나도록 허수아비와 바람개비, 사진과 그림 전시대를 만들어 설치하는 작업에 두레에서 운영하는 올챙이논학교ㆍ개구리교실 어린이들과, 일신중학교ㆍ엠마우스 청소년들, 일곡동 주민들까지 고루 참여해서 9월에 두 차례 날을 잡아 공동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바람개비 만들기는 ‘빛과 물과 바람’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이 이곳 자연 속 놀터에서 현장의 느낌과 생각들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고 접어 직접 설치한 것들이다.  

    그야말로 생활 속 미술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이곳은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시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꾸며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공모한 시민참여프로그램 ‘나도 비엔날레 작가-마실’의 25개 중 하나로 선정되어 ‘농(農)의 미학’을 펼쳐놓은 현장이다. ‘공동체 정신이 살이 있는 생태마을’을 꿈꾸는 한새봉두레 회원들이 ‘일상으로서 농(農)이 품은 철학과 예술’을 농사일과 더불어 시각적인 조형물들을 설치하여 비엔날레 장외공간으로 특별한 현장설치를 꾸며놓은 것이다. 또한 이곳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유산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실시한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에서 ‘2010년 잘 가꾼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바 있고, 도시에서 옛 농촌두레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귀한 곳이기도 하다.

    이들의 ‘농(農)이 품은 철학’은 텃밭 한쪽에 나무판자들로 얼기설기 짜놓은 칫간(변소)에서도 나타난다. 생리적 현상뿐 아니라 금기시된 욕망의 배출처로서 칫간에 용변과 낚서를 맘대로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당신의 오줌은 비싸다’라는 낚서처럼 사람의 배설물이 오폐물이 아닌 땅을 살리는 거름이 된다는 자연생태 이치와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공간이다. 오는 11월 3일에는 모아진 오줌으로 거름만들기 체험행사도 열 계획이다.  

    자연의 순리와 생태는 서로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농부가 땅과 물과 햇살ㆍ바람의 기운을 모아 공동체의 먹거리를 길러 조달하듯이, 예술가는 삶의 환경, 자연생태와 관련한 공공의 사회적 역할에 한 축을 맡기도 한다. 미술의 형식을 빌린 그 공적인 역할과 활동은 때로는 미술의 영역과는 무관한 시민사회 속에서 방법을 익혀 삶의 미학으로 확장시켜내기도 한다.

    “농부는 우주를 경영했고, 정치꾼은 한 나라를 경영했다. 정치꾼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농부의 광대한 철학은 홀대를 받고 있다.” 한새봉두레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제갈량과 조조의 예를 들어 비유해 놓은 경구같은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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