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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달용의 시대풍경화 - '세한송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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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8-21 20:50 조회9,7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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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달용의 시대풍경화- ‘세한송백’


    중견 수묵화가 허달용의 열두번째 개인전이 ‘세한송백 歲寒松柏’이라는 이름으로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본래가 80년대부터 현실주의 참여미술가로 활동해 온 그가 사회문화현장에서 공공의 역할을 맡아 훨씬 더 치열하게 부대끼던 그 틈에도 해를 거르지 않고 개인전을 개최해온 지가 2009년부터이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은 새로운 시도를 내보이고 있다. 소나무 단일소재로 높이 185cm에 전체길이가 약 37m에 이르는 수묵화를 전시장 세 면에 마치 벽화처럼 가득 채워놓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개막식 사회자 말대로 피서 못 간 이는 전시장에 오면 언제든 솔밭이 둘러서 있으니 도심에서 잠시 캠핑기분을 즐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런 구성을 처음 맘 먹기는 지난 해 대선 전 승리를 예감하면서부터라 한다. 그러나 간발의 차로 아쉬운 패배를 당한 후 낙담과 실망 속에 우울한 마음을 추스르며 올해 연초부터 이 작업을 시작해 6개월여 만에 마쳤다. 비록 승리 뒤의 환희심이 아닌 또 다른 날을 기약해야 하는 심사를 담아낸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한송백’의 위안과 희미한 희망의 끈을 다시 챙겨 잡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구상을 살리기 위해 미리 전시장을 정하고, 그 벽면에 맞게 122x185cm화판 32개를 이어 붙여 소나무들의 군상을 만들었다. 좁은 화실 형편상 화판 두 세 개씩을 나란히 세워놓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한다. 그 화폭을 개막전 전시장에 설치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 본인도 전체 그림을 처음 볼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부분부분 작업을 해 나갈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젊을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객기를 부려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라 한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정면과 양 쪽 세 면이 온통 먹색의 소나무들이다. ‘연리지’ 연작 때부터 보여줬던 소나무들이지만, 군집을 이뤄 전시장을 가득 채워놓으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혹독한 세파 속에서도 묵묵히 푸르름을 잃지 않고 세월을 견뎌가는 건강한 이 땅 주체들의 묵언 행렬을 보는 듯하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소재나 색조가 단순하면서도 비장미가 돌기도 한다.

    앙상하게 드러난 뿌리들은 서로 부추키며 단단한 대지의 터를 더욱 더 강하게 움켜쥐고, 거칠게 갈라진 등걸들은 잔챙이를 털어버리고 높직이 가지들을 뻗어 푸른 내공의 솔잎들을 가시처럼 펴고 있다. 그 말없는 군상 가운데는 등걸이 다 벗어져 맨살을 드러낸 이도 있고, 새로 돋아나는 어린 솔들을 새끼처럼 붙여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솔뿌리가 자라 바위 틈새를 벌리고 마침내 거대한 바위를 두 쪽 낼 수도 있다”는 신념을 다시 다짐하는 것이리라. 미술사가인 배종민의 표현대로 ‘허달용의 그림에서 숙주는 세상의 부조리이고, 나무는 겨우살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작품의 크기에 비해 이들 소나무들은 압도적이거나 장중하지는 않다. 어느 부분이 억지스럽게 거세거나 짙은 농묵, 강한 필선으로 앞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응어리는 있으되 겉으로는 차라리 잔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모두가 비등비등한 형상들이다. 지금의 시절이 그렇고, 다중이 둘러서 있는 세상의 모습이 그런가 보다. 시류가 우려스러운 이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세한송백의 의기와 희망을 재다짐하기 위해 작심하고 내놓은 대작이다. 전시장 한쪽 벽에는 그의 부단한 작업의 흔적과 세상을 보는 마음이 수묵소품 몇 점으로 함께 걸려 세상을 향한 이러저런 얘기를 독백처럼 흘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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