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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도는 행성들로 상징된 욕망덩이들; 신창운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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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11-03 13:47 조회9,5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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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도는 행성들로 상징된 욕망덩이들; 신창운展 


    한국의 건강한 민속ㆍ민중문화에 뿌리를 두고 전통 문양이나 부적, 종교 또는 물신주의의 상징도상들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에 관한 연작을 계속해 온 신창운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광주 롯데갤러리에서 '욕망의 행성 The planet of desire'이라는 제목으로 마련되었다. 그의 일련의 작업들처럼 정교한 문양들이 엮이고 꼬이면서 만들어진 일그러진 하트모양과 어두운 허공을 부유하는 행성들로 화면을 구성한 작품들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그 하트 모양으로 상징된 욕망과 집착의 행성들에 관해 2011년도에 집중 제작한 작품들을 위주로 꾸며져 주제의식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롯데갤러리의 고영재 큐레이터의 아래 글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다.
            




    과잉시대의 피안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생각의 파편들,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관념의 줄기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잠 못 이루지 못하고 지속되는 사념(思念)의 시간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이다. 되기 위해, 이루기 위해, 그것이 비록 일상의 현전(現前)에 관한 문제일지라도 끊임없이 바라고 간구하게 된다. 목적 지향적인 삶, 혹은 욕망의 추구는 으레 인간 활동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성과주의 사회 안에서의 인간의 의식세계란 보다 즉물적이거나 그것을 위한 다양한 ‘바람’으로 치닫게 된다.

    신창운 작가는 인간의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The planet of desire’, 즉 욕망의 행성으로 직역되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심상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있는 욕망의 현존에 실재성과 현실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둥그런 원형의 형상에 실타래가 뒤엉켜져 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수한 구불거림이 적색, 청색, 녹색의 색감으로 요동치거나 흘러내린다. 의식이나 심중을 상징하는 심장 형상의 하트 패턴은 선명한 기운으로 그 덩어리감을 과시하는데, 날카로운 뿔이 패턴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망의 극한이 초래할 아픔과 상처”를 상징한다고 서술한다. 사념과 관념의 뒤엉킴을 암시하듯 ‘욕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현재’를 얽히고설킨 형태로 표현한 작가는, 재현과 상징을 오가며 인류 보편의 감정을 보다 넓은 범주에서 들여다본다.

    비판적인 역사의식과 더불어 동시대성을 담아내고자 했던 초기작업과 인도의 종교적 도상과 서정을 통해 기복(祈福)과 믿음, 그 이면에 자리한 현세적 욕망에 관해 제고했던 이전 작업에 비하면, 보다 정제되고 성찰적이다. 관찰자의 시선에서 나아가 반성적인 태도를 견지함을 엿볼 수 있다.

    관람자는 무한의 공간에 부유하는 욕망의 덩어리들을 보게 된다. 세필로 쌓아 올린 실타래의 형상은 내러티브를 생략한 구성 아래에서도 시선을 더욱 끌어당긴다. 그로테스크한 기운으로 꿈틀거리는 신창운의 화폭은 관람자 스스로 그 내면을 응시하라는 듯, 꽤 힘든 정화의 시간을 요구한다. 욕망에 비례하는 인간의 생에 대한 강박, 불안 등이 화면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신의 지침을 거부하고 자유의지의 명분으로 선악과의 열매를 취했던 첫 인간들의 행위 그것처럼, 인간에게 욕망은 본능의 영역일 수도 있다. 결정론의 입장에서 양립하지 못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염두에 두더라도, 끝없이 염원하는 욕망의 행위가 주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는지, 혹은 영원성의 간구에서 비롯되는지는 판단하기 힘든 문제이다. 작가는 “결코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이러한 욕망은 마치 우리가 죽지 않은 다음에야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신들이 살법한 초현실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역설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긍정성의 과잉’을 언급한다. 금지나 강제에 의해 권력이 인간을 착취했던 과거가 규율사회였다면, 자본주의를 동력으로 삼은 성과사회에서는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21세기의 신경성 질환들은 언급한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다는 것인데,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라며 현 시대의 병리학적 상태를 진단한다. 인간의 능력치를 벗어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기강요의 긍정에 의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야하는 성과사회는 다른 형태의 ‘생존’을 파생하고 있는 것이다. 신창운 작가가 언급한 무한대의 욕망의 추구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더욱 첨예해지는 형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창운은 종종 시장경제에 예속당한 문화예술의 가치, 그리고 왜곡된 형태로 점철된 현대사회 안에서의 종교 혹은 신앙의 태도까지 제고하는데, ‘인간을 위한’, 인간의 가치탐구를 위한 인문학에 몰두한 작가 개인의 성향도, 예술이 인간사의 심부에서 생의 의의와 그것의 정신적인 가치추구를 위해 존립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단순히 그리는 행위나 장식성, 유미주의적 성향의 예술을 지양한다. 미술대학을 졸업 후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수학했고, 철학, 미학, 종교학, 동양사상 등의 인문학 연구에 탐닉했던 그는 철저히 사회 문화적인 쟁점에 의식의 기반을 두고 있다. 예술의 방법론을 통해 현 시대에 깊은 반성적 성찰을 권유하는 작가적 의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소 불편한 시선을 머물게 한다. 왜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왜 이러한 주제를 표명하는지, 곧 ‘왜’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천착하는 창작자의 성향은 날 선 문제의식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내용의 풍부함 그 이면에 존재하는 화풍의 정형성은 여전히 극복해야할 난점이기도 하지만, ‘보편성’이라 일컫는 현대미술의 획일화된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게 그 중심을 지켜가는 모습은 도리어 농익은 창작의 태도로 다가온다.

     우리가 예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과 사회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 더불어 가느다란 세필과 물감으로 쌓아올린 작가의 고된 작업과정을 보며, 예술이 삶과 어떻게 밀착되어야 하는지, 창작자는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새삼 고민하게 된다.

    자아의 온전한 정결함은 외적인 과잉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끝없이 희구하기보다 더욱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봄이 어떠할지, 신창운의 예술세계에 빗대어 권유해본다.

    고영재 (광주 롯데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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