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너머 남촌 '봄이 오는 소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4-03-05 08:46 조회10,16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김현구의 시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럿슴니다’와 교감을 이룬 윤세영의 <닿을 듯한 그리움>(2014, 종이에 채색) 산너머 남촌 ‘봄이 오는 소리’ 강진아트홀 봄맞이 시화전소생하는 세상의 생명존재시와 미술의 내밀한 교감 이제 경칩이다. 겨울외투 벗어내듯 희뿌연 미세먼지 장막을 걷어 내고 촉촉이 대지를 적셔준 봄비 머금어 이내 새 생명의 기운들이 움을 틔운다. 강진처사 윤정현의 말대로 “이즈음 이곳 사람들은 물옷을 입고 채 얼음이 녹지 않은 차가운 개펄에 나가 ‘개불’을 잡아 올리고, 논꼬랑에 솟아나는 미나리, 낙지, 초무침에 막걸리를 마시며 봄을 기다린다.” 남쪽 바닷가에서 ‘봄이 오는 소리’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강진아트홀이 기획한 시화전이다. 강진과 연을 맺고 있거나 외지에서 초대된 미술인 15명이 강진과 관련된 시를 소재삼은 회화, 영상, 조각 작품들로 3월 23일까지 봄맞이를 하고 있다. 물론 작품 가운데 더러는 봄날과 상관없이 혼미한 세상 속 우리의 정신이나 정서의 뿌리에 생명을 적시고 그 개화를 북돋우는 작품들도 섞여 있다. 햇것의 싱그러운 봄바람은 하성흡의 <주작포란>에서 남쪽 해풍을 타고 올라온다. 주작이 알을 품듯 신전면 들녘을 감싸 안고 멀리 강진만과 해남 앞바다를 내다보는 주작산 자락 일대를 그린 수묵담채 실경산수화다. 드문드문 푸른빛들이 돋아나는 들판, 그 가운데 둥글게 무리지어 앉은 거뭇거뭇한 야산과 주변 해변마을을 한눈에 조망하듯 세세하게 그려내었다. 그가 취한 시는 황지우의 ‘겨울산’이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라는 시처럼 숱한 질곡의 역사가 담긴 삶의 터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화폭이다. 봄은 서미라의 <영천 저수지>에도 물들어 온다. 보성 봇재 아래 웅치 저수지 가의 나즈막한 산자락을 따라 연두빛 물기가 스미어 오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새잎이 돋아나는 초봄의 정취를 잔잔한 필치로 묘사한 그림이다. 그가 짝을 삼은 시는 황지우의 ‘시에게’이다. “한 때 시에 피가 돌고 피가 끓던 시절이 있었지. 그 땐 내가 시에 촌충처럼 빌붙고 피를 빨고 앙상해질 때까지 시를 학대하면서… 나는 아직까지 못 찾고 있어. 상하지 않고도 피가 도는 그 온전한 시를……” 그렇게 절절이 고파하는 시인과 동병상련으로 자신의 화업에도 그 온전한 생명의 기운이 돋아나길 바라는 것 같다. 올해 강진 땅 새 식구가 된 김진송은 청자박물관에서 캐온 죽은 녹나무 밑둥치를 깎아 <뿌리의자>를 만들었다. 늙은 고사목의 굳은 표피를 벗겨내고 속살을 다듬어 곧추 자라나는 새순 모양의 등받이 의자로 환생시켰다. 사라지지 않는 생명존재를 봄의 기운으로 다시 회생시켜낸 셈이다. 이 작품은 정호승의 시 ‘뿌리의 길’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할 길이 되어 눕는다.” 강진댁 윤세영은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일렁이는 <닿을 듯한 그리움>과 <파랑-까막섬>, <흰 길> 등 채색화 세 점을 보여준다. <닿을 듯한 그리움>은 1930년대 시문학파 동인이었던 김현구의 시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럿슴니다’와 교감을 이룬 작품이다. “헤여진 성ㅅ돌에 떨든 해ㅅ살도 사라지고 밤비치 어슴어슴 들 우에 깔리여 갑니다. 홋홋달른 이 얼골 식여줄 바람도 없는 것을 님이여 가이업는 나의 마음을 아르십니까”라는 시다. 시에서 묻어나는 짙은 영탄조 그리움을 회색빛 엷은 먹 바탕에 눈물 흐르듯 교교히 빛나는 푸른 물결과 잔털처럼 소복한 작은 숲을 아련한 꿈결처럼 묘사하였다. 이밖에도 강진 아낙들의 뻘밭 삶을 묘사한 이대흠의 시 ‘바닥’을 버려진 널판자에 묘사한 김충호, 고조선시대 여옥이 지은 슬픈 악곡 ’공후인‘을 담백한 청자빛 바다로 그려낸 정정엽, 북으로 간 계관시인 오영재의 ’아, 나의 어머니-늙지 마시라‘를 백골 같은 나무뿌리 아래 애끓는 노모의 눈물로 묘사한 김경주, 고재종의 ’백련사 동백숲길‘을 연필소묘로 묘사한 황홍배의 그림이 있다. 더불어 다산이 시 짓는 친구들과 약조한 ‘죽란시사첩 머리말’을 다시 풀어낸 나해철의 시를 영상으로 엮은 민경,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비디오영상 <모란 바니타스>로 흐드러지게 피워낸 이이남, 최하림의 시 ‘세상에서 멀리 가려던‘을 소재삼아 강진을 무대로 짧은 영화를 만든 정기현, 만대산에 묻힌 종가댁 상머슴의 한을 시로 읊은 이형권의 ’머슴새‘를 석조상으로 연출한 김명제, 황지우가 ’저 텅빈 원만‘으로 찬탄한 고려청자를 옛 기법대로 재현한 정호진, 이규보의 청자 시를 정윤식이 한글서체로 쓰고 이영탄이 청자다완을 만들어 설치한 작품까지 문학과 미술의 교감이 봄의 새순처럼 새롭게 돋아나고 있다.- 조인호의 미술이야기 (전남일보. 2014. 3. 5)▲ 황지우 시 ‘겨울산’을 취한 하성흡의 <주작포란朱雀抱卵>(2014. 122x244cm. 한지에 먹,담채) ▲ 황지우의 ‘시에게’와 짝을 이룬 서미라의 <영천 저수지>(2011. 50x200cm. 캔버스에 유화) ▲ 정호승의 시 ‘뿌리의 길’에서 영감을 얻은 김진송의 <뿌리의 길>(2014. 145x124x176cm. 녹나무) ▲ 이형권의 ‘머슴새’를 석조로 옮긴 김명조의 <머슴새>(2014. 석조) ▲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를’을 소재로 한 이이남의 <모란 바니타스>(2014. 7분 비디오동영상) ▲ 이규보 청자시를 소재삼은 정윤식의 글씨와 이영탄의 <청자연꽃무늬사발>(20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