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서정추상과 고향 남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3-13 10:27 조회11,70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8. 41x58cm. 종이에 유채 ◀ 김환기.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1956. 60.5x41cm. 캔버스에 유채 김환기의 서정추상과 고향 남도 내 고향은 전남 기좌도 (현재 안좌도). 고향 우리 집 문간에서 나서면 바다 건너 동쪽으로 목포 유달산이 보인다. 목포항에서 백마력 똑딱선을 타고 호수 같은 바다를 건너서 두 시간이면 닿는 섬이다. 그저 꿈 같은 섬이요, 꿈 속 같은 내 고향이다. (중략) 순하디 순한 마을 안산(案山)에는 아름드리 청송이 숨막히도록 총총히 들어차 있고 (중략) 낙락장송이 울창하게 들어찬 산을 바라보며, 또 그 산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고향생각이란 곧 안산생각뿐…. 이 봄에도 섬 아가씨들은 양지바른 산기슭을 찾아 검밤불이랑 냉이랑 캐겠지… 수화 김환기 화백이 지천명에 이른 1962년 3월, 고향의 봄을 그리며 남긴 글이다. 그야말로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다. 신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부터 서울과 일본, 파리 등지로 객지타향을 떠돌다 다시 이듬해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잠시 서울에 머물던 때다. 낯선 땅, 바깥세상에서 더 절실해진 뿌리의식이 민족과 전통,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응축되고, 달항아리 백자, 산수화나 문인화, 민속소재 그림들로 이런 갈증을 풀어내던 시기다. 물론, 수화의 고향에 대한 향수는 그의 ‘처녀 출품’이었던 1935년의 일본 재야단체 [이과회전](二科會展) 입선작 <종달새 노래할 때>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동경 일본대학 미술부에 재학 중이던 당시, 일제가 식민문화로 조장한 ‘향토적 서정주의’와 수화의 낭만주의 기질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은 누이동생의 사진을 참고하여 고향의 봄을 그린 것이다. 당시로서는 신미술이라 할 입체파형식을 빌어 새알이 담긴 물동이와 한복입은 봄처녀, 바닷가 바위와 구름까지도 형체를 단순처리하여 견고한 볼륨감 위주로 묘사한 작품이다. 수화의 고향생각은 1950년대에서 ’60년대 초까지 현실소재나 전통문화를 단순형상으로 재구성시킨 작품들에서 더 두드러진다. 일생 추상화가라고 불리우지만, 이 시기 만큼은 백자와 달, 구름, 매화, 학 등 구체적 소재를 취하여 형체나 색채를 평면으로 화면분할하고 중첩시키거나, 엷고 투명한 바탕색면이 화강암이나 흙벽처럼 두툼하고 거친 질감으로 다져지기도 하는 등의 민족적 뿌리를 향한 귀소경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구상적인 화면구성을 계속하던 이 ’50년대 수화의 작품들에는 홍매, 백매가 자주 곁들여진다. 고향 남도의 봄을 매화로 상징화시켜 백자와 달과 새들과 더불어 그림의 벗으로 삼았던 것 같다. 전체 화업에서 보면 이 ‘50년대는 일본 유학시절 ‘아카데미 아방가르드’를 조직하여 신미술운동에 동참하고, 귀국 후에는 서구의 기하학적 추상에 서정성을 가미한 추상회화들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면서 ‘신사실파’를 이끌던 50년대 초까지의 작품세계와 주제의식부터가 다르다. 또한, 만년의 투명한 우주공간을 연상시키는 푸른 색조 점묘 그림들로 구체적 소재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계를 걸림 없이 노니는 초월적인 세계와도 크게 비교된다. 그러나 달리 보면 50세 이후 뉴욕시절의 작품들이 재료는 서양화지만 정서적으로나 기법에서는 상당히 동양적인 특성에 뿌리를 둔 사의적(似意的) 회화들이라는 점에서 이 ‘50년대 작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수화의 그림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구상적 소재들은 대부분 실재 대상의 묘사가 아닌 기억과 상상 속에서 떠올려진 개념적 도상들이다. 구체적 형상들은 사라지고 먹의 번짐과도 같은 단색조의 반점들이 연이어져 일정한 색면과 여백이 조화를 이루는 내적 사유가 깃든 추상회화 연작들이기 때문이다. 수화는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선구적인 추상화가다. 하지만 그 명성과 무게에 비해 고향에서는 특별한 관심이나 예우를 받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신안군에서 안좌도 생가주변에 공원을 조성하고 미술관 건립같은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라남도나 국가차원에서, 또는 민간차원에서도 이 거장의 예술적 정신적 뿌리인 고향의 흔적을 발굴 조사하고 연구 재조명하는 작업이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1913년 2월 27일생으로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조차도 그렇다. 비록 그가 어린시절부터 타지로 떠돌아 지역 화단과 깊은 고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고향에 뿌리를 둔 그 예술세계와 문화자산을 공적인 차원에서 보전 계발하는 작업은 정책당국이든 민간부문에서든 적극적인 관심과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은암미술관에서는 수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김환기, 고향의 봄’ 전시를 2월 22일부터 3월 16일까지 열리고 있다. 원작을 빌려오지는 못하고 사후 판화와 기록영상, 수화의 뉴욕 묘소사진, 수화에 대한 소개자료 등으로 꾸며졌다. 지난 3월 7일에는 채종기 관장의 발제로 ‘수화 김환기의 가치와 의미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