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의 소생 - 김주연의 '이숙'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5-08 08:33 조회11,43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김주연. MetamorphosisVII (부분). 2013. 옷,나무파레트,씨앗 ⓒ광주미연 사라진 것들의 소생 - 김주연의 ‘이숙’ (異熟 metamorphosis) 뿌리 내릴 흙 한 줌 깔려있지 않고, 물기 한 방울 스며들 것 같지도 않은, 살아 있는 것이라곤 도저히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을 것 같은 바위산 절벽에 홀로 버텨 선 소나무, 그 경이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면 자연의 숭고한 생명력에 새삼 전율을 느끼게 된다. 높직이 막아선 철판 방음벽을 가느다란 팔들을 붙잡고 더듬어 올라, 이내 푸른 이파리들로 생명의 벽을 펼쳐내는 담쟁이들 또한 핑계거리 많은 세상살이의 허튼 마음을 다잡아주기도 한다. 그런 경이로운 생명활동이 인공의 사각공간인 전시장 안 예술작품으로 탄생되기도 한다. 아직 잉크냄새가 남아있는 신문더미나, 빼곡하게 채워진 서가의 책들 위로 여린 새싹들이 돋아나 푸른 솜털을 만들며 번져가는 기적 같은 생명작용, 바로 설치미술가 김주연이 보여주는 ‘이숙 (異熟 metamorphosis) 연작이다. 그동안 광주에서도 광주시립미술관이나 무등현대미술관, 롯데갤러리 등 몇몇 전시관에서 이 새싹배양을 미술작품으로 치환시켜 환경생태와 자연 생명질서에 관한 메시지들을 전한 바 있다. 그런 종이소재 설치물에 싹을 틔워 오던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헌옷가지들을 부양토로 삼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숲 가득한 죽녹원과 영산강 냇물을 옆에 낀 담양 대담갤러리에서 자연으로 통하는 길을 내고 있는 김주연의 ‘이숙’ 연작 ‘Metamorphosis Vll’ 전시(2013. 5.1~5.31)이다. 버려졌던 포장용 나무판재들을 엮어 네모진 구조물의 뼈대를 만들고, 이를 버팀목 삼아 헌 옷가지 수백 벌을 차곡차곡 개어 층을 다졌다. 탑의 몸체와도 같은 옷가지더미 겉에는 새싹채소 씨앗들이 발붙일 틈을 찾아 서로 여린 뿌리를 내리며 연푸른 싹들을 돋우어 나간다. 작품에서 소재는 얘기를 함축하고 풀어내는 끄나풀이다. 김주연이 작업소재로 주로 활용해 온 신문지는 매일같이 벌어지는 세상의 사회ㆍ정치ㆍ문화 얘기들을 빼곡이 기록하고 있지만, 하루 지나면 그저 폐지일 뿐이다. 그 헌 신문지들을 시간의 집적물이자 시대의 대변자로 불러들여 사라진 역사에 소생의 기운을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헌 옷가지 작업도 다종다양한 세상살이 흔적과 체취가 배어 있지만 낡고 쇠하여 세월 뒤로 밀쳐진 지난한 생들을 불러내 삶의 온기를 다시 지피는 작업이다. 물론, 씨앗들이 품은 생명의 기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배양을 위해 이따금 적셔지는 물기와, 태양빛을 대체한 인공불빛과, 희미한 바람결을 빨아들여 기운이 다할 때까지 생명의 싹을 돋우어낸다. 천연 면이든 인조 합성섬유든, 땀내 찌든 속 것이든 두터운 스웨터든, 발붙일 곳을 파고들며 드러날 듯 말 듯 생명의 순환을 계속 이어간다. 배추ㆍ순무ㆍ겨자ㆍ클로버 같은 여린 싹들이 제 본래의 생명본성을 뻗어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기운이 다한 짧은 생이 스러지고, 인연의 순환을 따라 다시 싹이 돋아나면서 생멸을 거듭한다. 전시장 가운데 쌓아진 구조물에서 소리 없이 이어지는 경이로운 생명 순환은 세상의 모습이기에 앞서 작가 자신의 삶의 족적이기도 하다. 세상을 향한 창작의지를 싹 틔울만한 곳을 찾아 계속해서 이곳 저곳을 유목하고, 인연을 만나 짧은 기간 발아했다가 흔적을 거두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10년도 그렇고, 서울, 경기, 아오모리, 광주의 대인시장 등등 환경과 여건이 각기 다른 레지던시 공간을 찾아 작업을 벌이고 짐을 거두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그런 존재의 싹을 틔우는 유랑은 전혀 낯선 남극 극지까지 이어져 이번 전시에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는 ‘지구온난화’ 사진작품 2점이 함께 걸려 있다.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한 ‘노마딕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지구 반대편 극한의 생태환경과 초극의 생명활동을 체험하고 성찰의 깊이를 더해 온 흔적들이다. 김주연은 생태미술가라 불리운다. 대부분의 작업이 전시장에 설치한 재활용 구조물과 인공의 싹틔우기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반추해 내거나, 그런 생명작용의 현상들을 사진작업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유목과 발아를 거듭하는 씨앗과도 같은 인생사, 그것은 이주와 정주를 반복하며 지천명에 이른 작가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도저히 뿌리내릴 수 없을 듯한 삶의 폐기물들을 감싸며 연푸른 싹들을 틔워가는 씨앗들의 소리 없는 ‘이숙’에서 생명본성을 성찰해 보게 하는 전시이다.▶김주연. MetamorphosisVII. 2013. 옷,나무파레트,씨앗 ⓒ김주연 ▶김주연. MetamorphosisVII. 2013. 옷,나무파레트,씨앗 ⓒ김주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