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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합그룹 비빔밥의 '언어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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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12-28 15:13 조회11,9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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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빔밥, <언어풍경-무등도원경>, 2013, 인터렉티브 영상설치


    ▲ 비빔밥, <공기와 꿈>, 2012, 인터렉티브 영상ㆍ사운드 설치

     

    융합그룹 비빔밥의 ‘언어풍경’

    2013. 12.17 - 12.31
    빛고을문화회관 미디어큐브338


      요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통섭과 융복합이 시대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 단일 장르나 고유영역 안에서 독자적 활동과 성과를 내는데 열중이던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다. 서로 다른 분야와 영역간의 교집합과 혼성교배를 통해 또 다른 통섭의 가능성들을 찾고, 그 과정과 효과를 공유하는 게 대세다. 일상 생활문화를 비롯해 전문분야 활동이나 관련 정보까지 접촉할 수 있는 통로나 사용 가능한 매체들이 워낙에 다양하게 분화되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다보니 다중 간의 상시교통과 교집합들이 무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예술계도 기존의 분야별 활동을 벗어나 다른 장르와 협업이나 접속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창작자와 향유자의 영역 또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융합그룹 비빔밥’은 현대미술의 영상미디어 시각문화를 주요 기반으로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인문학, 공학, 경영 등을 버무려 통합예술의 독특한 맛을 만들어내는 광주의 혼성문화 모임이다. 2011년 8월에 모임을 결성해서 이듬해 제9회 광주비엔날레 ‘라운드 테이블’ 주제전을 통해 처음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비엔날레 전시관 외부에 별도로 설치된 이들의 부스는 공동제작한 <숲ㆍ숨ㆍ쉼 그리고 집>을 선보이면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소재로 영상이미지와 소리를 결합시켜 명상적인 사유와 휴식의 공간을 연출하였다. 특히, 회원 외에 작품구현에 필요한 게스트 회원을 영입하여 영상미디어 설치작품을 만들었는데, 회화ㆍ설치ㆍ영상미디어ㆍ문학 전공자들로 구성된 모임의 성격과 활동방식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세계 현대미술의 선도처인 광주비엔날레 주 무대를 통한 빛나는 데뷔 이후 서울 포스코미술관과 안양ㆍ대전ㆍ광주 롯데갤러리, 광주 리채갤러리, 제1회 평창비엔날레, 광주 로터스갤러리 등에서 주로 <공기와 꿈>,  <숲ㆍ숨ㆍ쉼 그리고 집>을 전시공간에 따라 재연출해가며 시각문화와 인문학의 융합작업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리고 이번 빛고을시민문화관의 미디어큐브338에서 12월 17일부터 31일까지 전시회를 통해 지난 2년 반 동안의 활동과 작업 성과물에 관한 종합정리 겸 반추의 장을 펼쳐 놓았다. 이 전시는 2013년도 광주문화재단의 미디어아트 공모전 시리즈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전시명인 ‘언어풍경’은 말 그대로 개념의 응집과 기호화 또는 담론의 텍스트로서 ‘언어’와, 외적 세계의 시각 대상인 ‘풍경’을 결합시키면서, 특히 인식 이전의 순수자연에 대한 사유적 교감을 연결시켜내려는 작업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단지 한글 타이포들의 분해 조합이나 영상미디어 효과를 시각 이미지로 연출해낸 영상매체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 이상으로 인문학적이고 지적인 ‘무등도원경’ 탐구와 그 이미지 작업을 추구해온 모임의 성격과 차별성을 내걸고 있다 하겠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대부분 회원들의 공동작업 결과물이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때 전시관 밖 대숲 옆의 별도 부스 안에서 여러 겹으로 내려뜨린 투명 천들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공기와 바람결처럼 흐르게 하면서 자연의 소리와 함께 명상적 쉼의 공간을 연출했던 <숲ㆍ숨ㆍ쉼 그리고 집>은 이번 전시에서는 입구 모니터영상으로 전환되었다. 관객들의 참여는 언어의 숲을 거니는 원래방식 대신 태블릿PC 터치에 의해 화면에 움직임을 일으키는 인터렉티브 아트로 변경되었다.

      초기부터 공동의 화두로 삼고 있는 <언어풍경-무등도원경>은 첫 발표작 ‘숲ㆍ숨ㆍ쉼 그리고 집’처럼 전시장 한쪽을 할애한 적막한 공간에 투명 천을 일정간격으로 내려뜨리고, 한글 자음 모음들이 눈발처럼 가볍게 천천히 흩날려 내리도록 하였다. 그 투명한 언어와 사유의 공간 사이로 관객이 가까이 접근하거나 거닐면 문득 화면에는 자음 모음의 낱글들이 무수히 흘러내리면서 무등산과 관련된 옛 시조나 현대시들을 담아 무등산 형상을 이루고 이내 흩어져 사라지는 영상이미지다. “소리 문자인 한글을 시로 읽어내고, 그림으로 시각화시키고, 과학으로 융합함으로써 관람객과의 소통적 기능을 중시했고, 그 속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풀어내고자 했다”고 한다.

      <공기와 꿈>은 같은 방식의 투명천 스크린 영상이미지의 설치이면서 훨씬 정제되고 무한히 트여진 푸른 하늘의 이미지를 연출해내고 있다. 특히 강운의 ‘바람 놀다’ 평면작품 연작에서 작은 한지 조각들을 집요하게 오려붙여가며 천변만화하는 구름을 만들던 작업을 컴퓨터 파티클로 대신하여 재현하고 그 어렴풋한 흰 무리들이 푸른 허공에 바람결을 따라 흐르며 변하도록 하였다. “속도가 강조되는 이 시대에 ‘디지로드’의 담론을 제시하고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그 속에서 인간과 기술과 예술의 의미를 풀어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작업에서는 게스트로 참여한 변호사 김혜민이 작품의 이미지에 맞춰 피아노곡을 작곡하고 연주하여 명상음악을 가미시켜 더 특별한 교감의 공간을 꾸며주었다.    

      <영상의 숲- Forest and City Illusion>은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로 내려뜨린 투명천 스크린에 계절의 변화를 따라 꽃잎과 낙엽이 휘날리기도 하고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 대숲 속을 거니는 인물의 실루엣을 통해 가상공간 속 대리체험을 유도하기도 한다. ‘무등도원경’처럼 관객의 참여와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영상설치 의도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자연과 인간의 흡습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켜 드러낸 작품이다.

      이번 공모 전시에는 초기부터 주축멤버로서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철학적 성찰과 회화적 이미지의 구상을 주도해 온 강운, 디지털미디어 작가로서 영상이미지의 실현에서 주된 역할을 맡은 박상화, 담론의 심화과정과 SNS 등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에 밝은 경영학도 김한열, 법조인이면서 예술적 감성으로 직접 작곡한 피아노곡으로 음악의 향기를 입혀준 변호사 김혜민 등 구성원도 다채롭다. 거기에 이전에 함께 했던 컴퓨터공학도 장한별, 회화와 설치작업의 이매리 등까지 모두가 독자적인 활동으로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멤버들이다.

      사실 비빔밥은 서로 다른 성질의 여러 재료들이 섞이어 복합적인 맛을 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섞이는 것들의 제각기 다른 존재감과 맛을 손상되지 않게 고루 살려낼 수 있어야 만이 개별음식과는 또 다른 맛과 멋을 낼 수 있다. ‘융합그룹 비빔밥’도 미술뿐 아니라 인문학, 공학, 경영, 법학 등 구성원들의 고유한 활동영역과 특성들을 함께 빚은 그릇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맛깔나게 담고 비벼내어 시각적인 효과와 문화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느냐가 가장 우선적인 과제다. 거기에 더 짧아지는 변동주기를 따라 거듭 변화하는 시대문화와, 생각을 담아내는 매개체로서 재료ㆍ매체ㆍ응용기술공학들을 어떻게 잘 조합시켜 의도하는 효과를 작품으로 연출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비빔밥’은 아직 계획한 것들의 초기 모색단계인 만큼 앞으로도 광주에 기반을 둔 각 분야별 전문 활동가들로서 지역의 문화적 뿌리와 특성을 ‘무등도원경(無等圖園景)’으로 담아내고, 이를 통해 문화적 융합의 본질을 탐구하고 드러내어 공유하는데 주력하겠다고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광주’나 ‘쉼의 미학’에 관한 보다 심화된 담론의 수렴과 확장, 분화된 활동들 간의 연결과 조합, 순수 자연과 현실 삶의 공간 사이 호흡, 각기 다른 존재와 문화 사이의 교통을 넓히기 위해 더 많은 인문학적인 학습과 성찰, 공학적 정교함과 시각적 정제과정들이 필요한 것 같다. 결국, 생각은 언어와 시각이미지, 소리가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융합예술 작품으로 드러내어지고, 그 조합된 효과로 전달력이나 교감 정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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