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권력의 그늘에서 세상을 보다 - 김용철 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2-06-09 15:54 조회8,77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 그날. 2012. 260x194cm. 캔버스에 유화 ▲ 대치. 2012. 103x73cm. 캔버스에 유화 ▲ 침묵. 2012. 45x38cm. 캔버스에 유화 ▲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2012. 162x130cm. 캔버스에 유화 역사와 권력의 그늘에 묻힌 세상의 진실- 김용철 展 광주롯데갤러리의 올해 창작지원공모 신진작가 부문에 선정된 김용철의 초대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정의(定義)는 없다: There is no definition’라는 제목으로 6월 5일부터 14일(목)까지 10일 동안인데, 2010년 서울 전시에 이 두 번째 개인전이다. 20여점의 크고 작은 전시작품들은 대부분 근래에 실재했던 우리 시대 역사적 사건을 금새 연상시킬 만큼 익숙한 소재들이면서, 그 역사의 그늘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거나 망각되어가는 현장의 실체를 찾아 무채색 화면 위에 함축된 시각이미지를 연출해내었다. 그 만큼 전시장은 바깥 세상과는 단절된 짙은 회색빛 그늘 속 역사현장에 들어선 듯 써늘한 분위기로 침잠되어 있다. 세상 흐름에 따라 한 시대의 흔적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위로 계속해서 덧쌓여가는 세월의 두께로 덮혀지고 흐릿해지고 미궁의 역사가 되기도 하는데, 그 망각의 공간 속에 발을 딛게된 후대는 흩어져 있는 파편과 기록들을 따라 현재와 과거를 맥락지어보면서 회화적 서사로 다시 드러내 보이려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마련한 고영재 큐레이터의 아래 글을 통해 김용철의 이번 작품을 살펴 볼 수 있다. 실재성과 상징; 예술적 태도의 문제 사물의 경계가 아스라하다. 붉은 타일로 둘러 처진 회색공간에는 시멘트 욕조, 세면대, 거울이 자리한다. 접이식 철제 의재와 책상 곁으로 비스듬히 백열등 불빛이 쏟아진다. 상황극이 벌어질 듯한 어두운 공간, 그 구석 저편의 차가운 시선은 화면 안에서 극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는 왜 구태여 역사 속 ‘대공분실’을 재현했을까? 흔히 ‘체감하지 못한 세대’가 고민하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란 되려 또 다른 유형의 소재주의로 치부되기 일쑤이다. 김용철 작가는 예술이 추구해야 할 덕목으로 ‘인간 가치의 신장과 회복“을 단언하는데, 사회 안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역할개념의 ’예술적 영향력‘을 제고하려는 의도이다. 작가는 역사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특정의 현상들에 주목한다. 구도청의 복도 한 켠에서 홀연히 공간을 사수하는 시민군의 모습, 세간을 흔들어댔던 연평도의 포격사건과 천안함 사건 등, 그 실재 안에 내재된 관계망. 속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일종의 네러티브를 구축한다. 더불어 상징과 은유가 점철된 대치물을 등장시켜 실재와 허구의 간극을 교묘히 드나든다. 평면 위에 페인팅의 형식으로 구축되는 밀도 깊은 서시, 그 안에 숨어 있는 다양한 대치상황들이 동시대의 갈등 구조를 환기시킨다.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인 본 초대전의 주제는 ‘정의(定義)는 없다: There is no definition’이다. 2010년의 첫 개인전에서는 ‘이디오진크라시(Idiosynkrasie)’라는 타이틀로 현대문명사회가 함축하는 사고의 종속성,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인간 본연의 근원성에 관해 자연성에 관해 언급했다. 주정적인 어조로 표출되었던 인간소외와 이를 지양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구조 등, 다분히 구체성을 띤 화면구성이 오히려 주제전달의 깊이를 저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반해 금번전시에서는 자신이 확언했던 옮고 그름에 대한 단편적인 사고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사회와 미술의 관계망,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문제제기의 태도는 동일하지만 예술가가 지녀야 할 사고의 자유로움, 그리고 보다 유연한 대처방식에 골몰한 듯하다. 기존의 극명한 색채는 무채색 위주의 모노톤 화면으로 바뀌고, 경계가 불분명한 회화적인 표현방식을 구사한다. 여전히 사회질서에 내재된 전체주의적 속성, 주체성 상실 따위의 불가항력의 현재가 화면전반을 에워싼다. 그러나 그것이 표현방식에 있어 즉물적이거나 묘사력의 잉여를 뽐내는 수준의 감정 과잉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 즉 작가 자신의 사유의 깊이를 더하여 종국에는 개인의 현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드러내려 한다. 단, 함축적이거나 지나치게 상징적이거나 작가만의 서정에서 드러나는 해독하기 힘든 모호한 구조들이 때때로 시선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궁극의 목적은 문제제기의 공감이자 감성적 교류 아니겠는가! - 고영재 (롯데갤러리 광주점 큐레이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