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성찰의 아지트로서 미테우그로 레지던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3-07-02 20:54 조회11,426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자아성찰의 아지트로서 미테우그로 레지던시 광주 대인예술시장에 터를 잡고 있는 미테우그로의 ‘놀고먹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체류작가들에 대한 비평워크숍이 진행됐다. 지난 5월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광주의 배수민, 이인성, 서울에서 온 송수연, 황혜원 등 4명의 젊은 작가 작업들을 들여다보고, 미술현장 활동가들의 조언이나 비평을 들으며, 그들 작업에 대한 외부자의 객관적 눈을 보여 주는 것이다. 워크숍은 6월 27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진행됐다. 미테 우그로에 자리잡은 그들 4명 작가들의 전시나 작업공간을 돌아보고 각자의 작업에 대한 소개를 들은 뒤 자유롭게 조언과 질문 답변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비평가의 역할로는 전남대 장석원 교수, 광주비엔날레 조인호 정책연구실장,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가 자리를 함께 했다. 워낙에 시장의 낡고 헐어 비어 있던 공간들을 이용하는 레지던시 공간이라 좁은 방 한 칸씩 정도씩의 작업실이지만 개인에게 할당된 전용 아지트를 거점삼아 몇 달 시간의 흔적을 풀어내가는 과정에 슬쩍 한번 들춰 보여주는 자리다. 회화와 설치, 다큐사진 기록을 병행하는 송수연은 미테 전시장에서 우산작업과 그 현장실행 기록영상들을 보여주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잘 알려진 인물 또는 특별하지 않은 일반인의 얼굴을 그린 우산을 참여자에게 고르도록 하고, 그 타인의 얼굴로 자기 얼굴을 가린 모습들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몸뚱이나 옷은 그대로이지만 다른 이의 이미지로 대체된 얼굴 때문에 본래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제3의 인물로 조합되어진다. 일부러 익명으로 자신을 감추거나 숨고 싶은 충동, 우연히 또는 외부환경에 의해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상황 등등 얼굴 하나로 자기 존재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뀐 것을 관찰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역방향 관점의 심리를 경험해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익명성의 경험이나 관찰은 그 행위가 이루어진 장소나 공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이한 들판이나 거리보다는 5ㆍ18묘지나 시위현장, 특정한 이미지를 갖는 공간 등 사건이나 역사와 연관된 곳일수록 그 울림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송수연은 원시적인 움집형태로 ‘천막’ 연작을 병행하며 개인의 은밀한 사유공간을 만들어 왔다. 인공이나 문명의 개입을 최소화한 작은 천막은 막대를 세워 기둥을 만들고 거친 인조가죽을 씌워 외부세계와 분리된 별개의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은은한 촛불이나 램프 불빛과 함께 이 고요한 공간 속에서 호흡을 가라앉히고 세상사의 이러저런 생각들을 가다듬거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안에 놓여 있는 노트에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생각이나 심리상태를 글과 그림, 낙서 같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 송수연의 개개인 정체성이나 개별성, 은둔ㆍ격리의 경험제공과 대리표출은 현실 주변세계로부터 잠시 자신을 숨겨보는 내면의 심리작용을 다루고 있다. 그런 관점은 회화작업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디오니소스적인 것> 연작에서 탈아(脫我), 불협화음, 비극의 탄생, 황홀ㆍ망아ㆍ탈혼 등의 주제를 기이하면서도 복합적인 이미지들을 덧쌓아 혼란스런 내면세계를 드러내 보여준다. 허물 벗는 매미, 어둔 그림자를 드리운 매추리 그림도 같은 연장선에서 ‘자아’와 ‘정체성’에 관한 고심의 흔적들로 보여진다. 배수민은 고흐, 프리다 칼로, 제임스 딘 같은 익히 알려진 작가나 대중스타의 초상을 빌어 ‘아름다운 패배자’ 연작을 계속해 왔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 행복과 자아실현이라는 가치추구에 가려진 내적인 갈등상황을 대체형식의 유사이미지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평면회화와 입체적 조형작업을 결합시켜 부조로 빚어 떠낸 얼굴에 조각조각 파편같은 시트지를 붙여가며 주인공의 초상을 덮어가고 그 조각들의 틈사이가 미세한 선 드로잉처럼 남도록 하여 내적 갈등과 번민 고뇌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고독한 예술가의 상징적 초상이라 할 고흐의 자화상을 주로 차용하고 있는데, 현실과는 괴리된 고독한 예술적 고뇌의 상징적 인물로써 자신의 오마주이자 페르소나로 삼고 있다. 이러한 차용된 이미지들은 내적 번민에 휩싸여 자기세계에 천착되어 있는 그들을 동병상련인 입장에서 ‘도촬’하듯 표현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의 현재 상태가 그들처럼 현실이나 실존세계와 분리 단절되어 있는 심적 상태를 대체해서 표현해내는 것이다. 노동의 수고와 집중력을 요하는 일련의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에 긴 시간을 몰입하면서 그 빌어 온 초상을 거울삼아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련의 청춘의 고뇌기를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황혜원은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고 색칠하며 삶의 순간순간 기록들을 테트리스처럼 쌓아 나간다. 그 같은 행위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읽고나서부터 시작한 자기기록과 일과에 관한 통계 방법이다. 근본적으로 주어진 시간과 젊음을 예술행위의 가장 본질적인 재료라 여기고, 수면정복, 식습관 교정, 요가능통, 서적 탐독, 영어정복 같은 일련의 과제들을 해결해내면서 그러한 모든 삶의 과정 순간순간을 자기방식으로 기록하고 이를 작품으로 삼는 것이다. ‘살아보기’라는 개념으로 모눈종이처럼 배분한 하루의 면적에 매 시간별 삶의 행위와 흔적과 느낌, 기분들을 그때 그때의 떠오르는 형상과 색채로 채워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자기방식의 표현이라 일련의 공통적 표현양식이 만들어지겠지만 타인은 그만큼 그의 암호를 해독해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타인의 관점과 상관없이 자기방식의 삶과 활동을 이어가는 철저히 주관화된 세계를 탐닉하는 것이다. “습관은 관성이 되고 놀이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런 일상의 기록을 계속해 나가면서 벽에 확대해 옮기거나 블로그를 통해 작품으로 공유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일상여행의 시공간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고, 매일의 깨달음을 글과 사진으로 모아 ‘TIME DRAWING TABLE’을 만들고, 책으로도 출간한다는 생각이다.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서 ‘아지트’를 주된 테마로 삼아 거친 회화적 필법으로 풀어내는 이인성은 현실 또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와 벽을 둔 채 바깥을 내다보고 또한 내밀한 공간 속에 웅크린 자신을 들여다본다. 유년시절 방치된 천막공간 안에 몰래 숨어 자신을 은폐한 채 바깥 세상을 내다보는 묘한 쾌감을 즐겼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컴퓨터 모니터 바깥에서 역시 익명의 은폐된 관찰자의 눈으로 각양각색 펼쳐지는 세상의 온갖 모습과 인물상들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고 있다. 화려함과 난폭함과 선정성, 기만이 횡횡하는 세상으로부터 자신만의 사적 공간인 아지트를 찾아 몸을 숨긴채 도무지 휩싸일 수 없는 그런 세상에 대해 절규하고 고뇌하며 독백과 무언의 발언들을 회화라는 시각적 형식으로 옮겨내는 것이다. 편치 않은 현실대응이나 외로움을 작업의 주된 소재들로 엮어내면서 자꾸만 내부로 향하는 심리상태나 그 내면의 세계들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다. 현란한 도시문명 속의 고독한 인물상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음울한 고독의 세계를 거친 붓질과 회백색조로 표현성 있게 표출하는 연작들이다. 동세대이면서 청춘의 고뇌와 자아찾기가 공통으로 깔려 있는 이들 4인 작가의 작업들이 미테우그로의 다듬어지지 않은 공간의 상대적 자유로움, 퇴락한 시장의 향수어린 정서와 은둔, 자기성찰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세상 속 별난 공간 속에서 스스로 내면을 다잡고 재충전하는 레지던시 시간들이 되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