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축원의 ‘영원‧낭만‧꽃’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3-09-15 13:55 조회1,707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손봉채 <꽃들의 전쟁>, 2022, 폴리카보네이트에 유채, 120x90cm 환희와 축원의 ‘영원‧낭만‧꽃’ 2023.06.20-11.05. / 전남도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영원, 낭만, 꽃’ 전시에는 여러 비유가 깔려 있다. “삶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에 매몰되지 않고자 하는” 통찰의 시각을 다양한 꽃 소재 작품들로 살펴보는 전시다. 오감의 대상으로서보다는 상징과 감성의 또 다른 차원으로 꽃 작품들을 펼쳐놓았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여러 유형의 작품들은 인생만큼이나 폭도 층위도 복합적이다. 다섯 섹션으로 나눈 전시구성 중 첫 번째 ‘연화화생(蓮華化生), 재생의 염원’에서는 해남 대흥사 소장 <준제관음보살도> <천수천안관음보살도> 한 쌍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의선사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19세기의 것이면서 연화대좌 위 입상과 좌상의 관음보살도 광배에 화염문 대신 장식해 넣은 꽃그림 구성이 일반적인 불화와는 다른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서로 마주 배치한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도 전통 문양에서 기품 있는 꽃도상 장식의 예를 잘 보여준다. 참외모양 청자 주전자와 받침접시에 음각으로 꽃무늬를 새겨넣은 음영효과가 은은하고, 날렵한 백자주병(白磁酒甁) 몸통 사방에 연화당초문과 박쥐문을 그려 넣은 청화그림 또한 화려하면서도 정갈하다. <백자 청화연화당초문 수명병>(조선, 19세기) / <자수 꽃무늬보자기>(19세기말~20세기 전반) 두 번째 섹션 ‘자유와 역동, 구체적 삶의 복귀’는 주로 한국의 민속 자수공예품과 서양 태피스트리들로 구성되었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꽃무늬를 수놓은 어린이용 분홍 가죽신발이나, 연꽃무늬 화조 자수와 축원의 금박글자를 넣은 자주빛 복주머니는 장식과 실용을 넘어선 영원한 강복(康福)의 염원이 담겨있다. 또한 꽃과 나비 자수로 한가득 장식한 보자기나, 서양자수의 영향이 보이는 6폭 병풍의 화조 자수에도 안녕과 만복을 바라는 민속공예의 장인 솜씨와 신심이 깃들어져 있다. 아울러 이들과 함께 전시된 유럽 태피스트리들도 프랑스 돔 로베르(Dom Robert)의 <수천 개의 들꽃>처럼 성직자임에도 종교적 도상보다는 화면 가득 꽃과 조류들을 채워 넣거나, 가스통 두앵(Gaston Douin)의 원작을 태피스트리로 옮긴 <앵무새들>처럼 동양 화조도의 형식을 띤 화면 양식에서 동서양 다를 것 없는 장식효과 이상의 부귀영화 기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세 번째 섹션 ‘시대를 넘어’에서 17세기 바로크 시대 프랑스 궁정화가였던 샤를 르 브룅(Charels Le Brun)의 <사계>는 베르사이유궁 권좌의 주인이었던 루이 14세의 위엄을 치장하기 위해 제작된 금실직조 태피스트리다. 전쟁의 신이자 농업의 수호신인 마르스(Mars)와 꽃과 봄의 여신 플로라(Flora)를 중앙에 마주하게 배치하고 농기구와 방어용 무기를 하단에 두면서 온갖 꽃과 화병들로 장식해 넣어 왕권의 신성과 평화로운 치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와 달리 20세기 초에 제작된 클로드 모네(Claud Monet)의 <수련> 태피스트리는 화사한 햇살 아래 만발한 연꽃들의 감각적 아름다운 풍경을 직물로 옮겨 놓았다. 르동(Odilon Redon)의 의자 등받이용 직조도 배경이 생략된 채 허공에 흩뿌려진 듯한 꽃잎들로 작가 특유의 환상적 분위기를 풍긴다. 한편으로 이 섹션에 함께 한 한국 작품들도 몽환적 세계를 보여준다. 천경자의 <화혼>은 화려한 꽃무리지만 은연중에 우수와 초월적 심상이 배어나고, 오승우의 <요정과 연꽃>은 ‘불상’과 ‘동양의 원형’ 연작 사이 잠시 심취했던 설화적 환상경을 모호한 형상으로 풀어놓았다. 김홍주의 <무제> 연작은 채색화와도 같은 정교한 연꽃잎들의 묘사이면서도 그 관점을 여러 각도로 달리하면서 종교적 경건함을 담아낸다. 김홍주 <무제>, 1996, 캔버스에 아크릴릭, 184.3x184.3cm / 오딜롱 르동 <손잡이가 있는 의자등받이를 위한 그림>, 1911, 캔버스에 유채, 91x72cm. 어두운 암실에 대형 미디어아트 스크린 영상이 투사되는 네 번째 섹션 ‘미래로부터’는 미국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mkamp)의 <미래로부터>를 위한 공간이다. 검은 바탕에 잔잔히 흔들리는 꽃들의 구성과 색채가 자개장식 꽃그림을 연상시키는 3D 애니메이션이다. 고요한 흔들림만이 계속되다 보니 외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는데, 꽃들 외에 다른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간결하면서 화려한 화면이 자연생태 초원 이상의 처연한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Jennifer Steincamp의 미디어아트 영상 <미래로부터> 마지막 다섯 번째 섹션은 ‘삶의 확장, 가능성을 향해’다. 손봉채의 <꽃들의 전쟁> 연작은 투명 폴리카보네이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꽃그림을 몇 겹씩 중첩시키고 LED 조명을 넣어 홀로그램 같은 깊이감을 냈다. 언뜻 화려해 보이는 화병들이지만 실재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각각의 국화(國花)들은 치열한 무역전쟁과 군사대립과 이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국제 관계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구성연의 ‘사탕’ 연작도 기묘한 실재감과 공허감이 공존한다. 색도 모양도 화려하고 달콤하지만 어느 순간 덧없이 녹아 사라지는 사탕처럼 매혹적인 것들의 허망한 이면을 비유하여 바로크시대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의 상징성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송수민의 <Blooming Pattern_White Shadow>는 동색 계열로 채도를 낮춘 꽃그림 조각들을 퍼즐처럼 잇대면서 경계의 모호함과 단절감을 메우고 있다. 얼핏 잡풀더미처럼 엉크러져 보이면서도 각기 한정된 공간 안에서 종마다 고유특성을 유지하느라 평온하지는 않아 보인다. 김상돈의 <카트>는 쇼핑카트를 치장한 상여꽃들을 통해 현실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고, 나무판에 단청색으로 정성들여 그려낸 상여장식 모양의 꽃들로 무속 분위기의 비현세적 <숲>의 단편을 꾸미는가 하면, <불광동 토템-적‧청‧흑> 연작처럼 플라스틱 의자에 조화(造花)들을 둘러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화환들을 만들었다. 김상돈 <숲>, 2022, 목재에 단청, 100x60x78cm 전시의 끝부분 출구를 나서기 전 마주치는 박기원의 <대화>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관람객이 전시장 바닥 널찍이 깔린 동전 무더기 위를 거닐며 신묘한 꽃들의 세계로부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대신했다는 금속성 쇠붙이들의 미끌리는 감촉과 소리를 통해 현세 삶을 지탱하는 금전이자 미지의 신께 축원 올리는 신주(神鑄)의 정성을 떠올리며 다시금 현실과 초월계의 경계로부터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영원, 낭만, 꽃’ 전시는 실재와 상상과 상징의 세계들이 혼재되어 있다. 단지 형형색색 꽃들의 아름다움을 담아놓기보다 그 화려함에 가려 자칫 혼돈스러울 수 있는 현상과 어렴풋한 그림자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전시기획의 변에서 “현재만이 영원하다. 오지 않은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고 흘러가는 순간을 어떻게 의미화할 수 있을까. 낭만은 안정과 견고함의 지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견디는 불안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운을 띄운다. 옆 도시에서 한창인 순천만정원박람회의 왁자한 생태환경 축제 현장과는 다른, 예술세계가 자아내는 차분한 유혹 이면에서 엿보이는 생의 환희와 간구(懇求)에 눈맞춤 해볼만한 전시회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 [퍼블릭아트] 2023.9월호 글 축약 전남도립미술관 기획전 '영원, 낭만, 꽃’ 전시의 일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