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된 질서’ ; 수묵으로 함축된 생멸 순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3-09-19 11:13 조회1,62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동환 <칼로 새긴 독립전쟁> <검은 숲> 연작 ‘변이된 질서’; 수묵으로 함축된 생멸 순환 2023.09.14-11.26 / 담빛예술창고 수묵에는 생멸(生滅)이 있다. 생명의 시원으로서 물과 소멸의 흔적인 재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미고 번지며 섞이는 물의 속성은 뭇 생명활동과 닮아있고, 이런 은밀한 작용을 가시적 현상으로 드러내어 주는 것은 타고 남은 재-숯가루의 질료 흔적인 것이다. 더욱이 먹색은 세상 온갖 색채의 총체이니 거기에는 생성도 소멸도 모두 담겨있다. 2023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시군 기념전의 하나로 담양 담빛예술창고가 마련한 ‘변이된 질서’ 전시에서 탐구하는 ‘생성’과 ‘소멸’의 이치도 “자연과 인간사회에 빗대어진 섭리, 순환 과정을 되돌아보는 사유의 자리”로서 기획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수묵(水墨)’의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臟)’에 기반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인과관계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담은 전시”라는 것이다. 이 전시에는 수묵의 속성대로 “태어남과 죽음, 생성과 소멸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현대 시각예술 작품으로 풀어내어 줄 우종택, 이동환, 임현락, 윤일권, 서정빈, 여상희 등 6인의 작가가초대되었다. 우종택은 원초적 몸짓 그대로 자유의지의 발산행위를 화폭에 옮겨내는 작업과, 모든 것이 소멸한 상태로서 타고 남은 것의 흔적을 숯이 되거나 먹을 입힌 고사목의 천연 질료상태로 모아놓는 상반된 작업을 병행한다. ‘물아일체의 자연관계성(物我一體 自然關係性)’을 화두로 삼은 작업들인데,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시원과 소멸의 양극단 사이에서 그는 ‘무행’(無行)을 통한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다. 그러면서 수묵을 풀어내던 화폭의 평면성으로부터 탈피를 위해 작업의 공간연출을 이른 바 ‘반사수묵’ 형태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원래의 제 형체를 잃지 않은 상태로 숯이 된 검은 고사목을 바닥 거울 위에 올려놓아 산화된 육신의 잔영을 반추시켜내고, 거기에 옆의 평면 화폭들까지 비치게 해서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폭을 명상의 세계로 넓혀보는 작업이다. 정신과 질료, 평면과 입체형상과 3차원을 넘어선 공간투영의 잔영까지 하나로 통하도록 길을 내는 작업이라 하겠다. 임현락은 생멸 또는 시종(始終)을 한 화폭에 함께 담으면서도 그 극단 사이의 기나긴 생의 과정을 길게 이어지는 필묵선으로 비춰내는 작업을 병행한다. 차오르는 원초적 기운과 일순간의 호흡을 단박에 터트려내는 ‘삶은 선 하나’ 연작은 파열하는 비정형의 묵점으로 형상화된다. 응축된 힘이 화지에 부딪히는 순간의 예측 통제할 수 없는 필묵의 파열과 주위로 튀는 먹의 반향들이 순수에너지의 형상이 되어 행위의 시원과 종말을 한 필치로 모아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긴 두루마리 화선지에 굵은 묵선을 그어가는 행위의 과정과 그 흔적을 작품화하는 <白으로 날아오르다>는 순간의 기운보다는 도도한 맥의 흐름을 담아낸다. 물결이 일렁이는 방조제 둑길이나 매립지 평원을 따라 생명의 맥을 풀어내듯 붓길을 잇기도 하고, 바람결처럼 전시공간의 너른 바닥을 한 줄기 묵선으로 가로지르다가 파동 너머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정된 사각 화폭을 벗어나 무한대로 어디론가 향하는 묵선은 육체적 행위성과 함께 정신적인 명상을 동시에 풀어가는 작업이다. 이동환도 현세 세상사를 비춰낸 두 갈래의 연작을 내보인다. 한국 한국 근‧현대사를 목판화로 펼쳐내는 작업과, 뭇 생명이 다 타 없어진 상태와도 같은 ‘검은 숲’ 연작이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사를 200여 점 목판화로 펼쳐낸 ‘칼로 새긴 독립전쟁’은 흰 광목천에 줄지어 찍힌 목판화들로 그림으로 읽는 민족사가 된다. <세상에 맞서다> <심사참배 거부> <굴욕> <철조망 너머> <필담-우리는 한국청년들이오> 등 항일투사들의 항쟁 의지와 고난의 대장정의 길, 독립군의 항일투쟁 활동 등 긴 서사를 한 점 한 점 목판화들로 압축해서 격동의 근대사를 펼쳐낸 것이다. 목판에 새겨넣은 굵고 거친 칼맛들, 극명한 흑백대비 그림들로 도도한 대서사의 의지와 긴장감을 간명하게 요약시켜 놓았다. ‘검은 숲’ 연작은 마치 화마가 훑고 간 직후의 산불 현장 폐허와도 같은 허무지대를 흑백 먹색으로만 묘사해 놓았다. 세상 현실사회의 단편들이면서 무모한 욕망의 마지막 귀결처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의 말대로 “부조리한 현실을 날려버리고 싶은 저항감과 내적 충동”이 지옥불처럼 타오르다 이내 사그라진 잿더미의 절망적인 공허이면서,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싹트는 새로운 소생의 기운을 기대하는 연작들이기도 하다. 윤일권은 수묵화 형식의 ‘개미’ 연작을 보여주는데, 하얀 화폭에 먹의 농담 차이를 두어가며 수없이 그려 넣은 작은 생명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서로 밟고 밟히며 허공을 향해 맹목적으로 기어오르거나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몰려가기도 하고, 방향감 없이 오로지 동물적 본능으로 주변과 물고 물리며 치열한 전장터를 벌이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개미지옥 같은 소시민들의 생존경쟁 일상 삶의 단상들을 애잔하게 혹은 안타까운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서정빈은 세상에 떠도는 우아한 거짓말들을 형상화해낸다. ‘delicate lies’ 주제 연작을 계속해 온 그는 화지 평면으로부터 3차원 공간으로 확장된 먹의 변용 작업을 통해 세상 풍경을 비유 풍자한다. 화지 위의 필획으로부터 분리되어 겹겹이 먹이 중첩된 종이띠로 탈바꿈한 선들과, 일상의 파편들이 담긴 종이상자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엷은 천의 노방으로 감싼 이중의 상자들을 허공에 점점이 매달은 작품 구성이다. ‘허상으로 치장된 삶의 공간’은 직선의 띠들로 늘어서거나 허공을 가로지르고, 부유하듯 떠도는 상자들은 세상에 난무하는 가식적이면서도 허망한 말들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여상희는 이름 없이 사라진 삶의 흔적들을 발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이번 <사라진 집> 작업은 재개발지구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폐가구와 생활용품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누군가의 삶들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도시재개발에 밀려 이주해 간 사람들의 온기 사라진 지 오래인 주거공간이나 먼지 쌓인 다락방일 수도 있을 그의 공간은 묵은 수집물들이 마치 환영처럼 자리를 잡고 둘러서 있다. 이 공간의 방문객들은 인연 없는 이들의 삶의 퇴적과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그에 비친 나의 생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 ‘변이된 질서’에는 ‘수묵 기념전’이라는 성격에 직접 화답하는 작업들도 있고, 그보다는 세상 존재들의 ‘생멸’ 쪽에 비중을 두어 각자의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낸 경우들도 있다. 창작하는 작가들로서도 대상의 본성과 생명작용을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주력하는가 하면, 이를 주관적인 관점과 변용으로 변이시켜내는데 더 중점을 두기도 한다. 수묵의 확장으로서 ‘변이된 질서’가 여섯 작가들의 각기 다른 변주로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임현락 <호흡-1초> 연작 임현락 <펠레스트리나를 긋다>, 2015, 퍼포먼스 영상 여상희 <버려지다-폐기물 보관소>, 2023 여상희 <버려지다-폐기물 보관소>, 2023 우종택 <반사수묵>, 2023 / <Origin>, 2023 등 .이동환 <검은 숲-1>, 2021, 장지에 혼합재, 74x71cm 윤일권 <개미 3, 4>, 2023, 한지에 수묵, 색연필, 140x200cm 서정빈 <Drlicate Lies>, 2023, 종이에 먹, 안료, 노방,실 서정빈<Drlicate Lies>, 2023, 종이에 먹, 안료, 노방,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