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과 허상의 본질 - 김재성ㆍ신호윤 두 개인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11-11-26 17:20 조회10,39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실상과 허상의 본질 - 김재성ㆍ신호윤 두 개인전 김재성 제7회 개인전 ‘질서에 관한 어법’ 2011. 11.24~28,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신호윤 제5회 개인전 ‘본질은 없다’ 2011. 11.25~12.10, 광주롯데갤러리 미술은 기본적으로 물리적 재료나 매체, 매개물을 이용해 시각적 현상물을 표현해내는 과정이나 작업, 그 성과물일 것이다. 문명이나 소통의 수단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에서 미술의 재료나 표현수단, 담아내고자 하는 의식세계나 조형적 요소들 또한 거듭해서 변화하며 확장되고 있다. 우연찮게도 같은 시기에 기존의 표현형식이나 재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두 작가의 전시회가 서로 비교 연관되며 흥미를 끈다. 회화를 전공하였으나 그 평면 위에 독특한 표현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김재성, 조소를 전공하였으나 그 입체조형이라는 덩어리를 해체해서 그만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호윤, 두 작가의 작업에서 형식과 주제의식은 다르지만 여러 공통점과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두 작가 모두 이전의 미술재료와는 전혀 다른 소재를 이용하고 있고, 작업 자체가 엄격히 절제되고 치밀하면서 집요한 노동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같다. 또한 평면과 입체라는 각기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정면보다 양 측면에서 볼 때 더 또렷한 형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여준다. 물론, 평면이 확장되어 마치 입체적인 홀로그램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상의 구체성이 달라지고(김재성), 마찬가지로 입체이면서도 정면에서 보면 텅 비어있는 허상처럼 보이다가 옆으로 시각을 옮길수록 형상이 채워지는 변화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신호윤) 서로 유사한 방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로를 연결시키는 가장 큰 맥락은 ‘질서에 관한 어법’(김재성)과 ‘본질은 없다’(신호윤)라는 연작 주제이다. 현상적으로 보여지는 지독한 노동의 흔적과 정교하게 다루어진 이미지들 속에 내재시키고 있는 세상의 근본에 관한 정신적 탐구작업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물론 설정한 소재를 완전하게 자기화 시켜내어 전혀 다른 방식이면서 본래의 상을 이루어내는 특별한 솜씨와 금새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집중력, 노동의 강도에 감복하여 정작 작가가 전하려는 주제의식과 메시지는 놓쳐버릴 수도 있다. ▲ 김재성 <질서에 관한 어법> 연작 김재성은 “‘질서’는 내 작업의 근원이며, 그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이자 ‘진정한 정신적 미’이다”고 말하는데, 우주만물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분명한 내적 질서 속에서 생멸 순환되고 그로부터 진정한 미가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방법으로 자작나무 합판에 사방 0.5mm간격의 미세한 구멍들을 뚫고 거기에 가늘고 길다란 침핀에 물감을 묻혀 꽂아가며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화판 위에 회화적 터치와 손의 움직임을 실은 붓작업 대신 가느다란 침핀에 각기 다른 색채와 농도의 물감을 묻혀 특정한 인물이나 꽃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색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정면에서는 이미지가 불분명하여 허상으로 채워진 화면공간 같아 보이지만, 관점을 바꾸어 화면을 바라다보면 비로소 은근하게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주핀에 물감을 묻혀 화면 위에 설정한 도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주력한 쪽은 침핀작업 쪽이다. 이처럼 근원적 질서를 탐구하는 김재성의 작업은 형식상으로는 금욕적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두고 내적 감정이나 조형의식을 절제시켜내고 있다. 그러나 화판 위의 형상들은 낯익은 종교 이미지, 꽃. 민화호랑이 같은 일상 소재들이어서 주제와 표현 사이의 상충된 미의식이 불가피하게 드러나고 있다. 말하자면 개념적으로는 ‘질서’라는 정신적 이상미를 추구하고 있으면서 그 실상을 시각적 현상물로 드러내는 작업에서는 통상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차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상반된 가치의 충돌과 부자연스러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 신호윤 <본질은 없다> 연작 신호윤의 작업도 김재성과 마찬가지로 정면과 측면에서 바라보는 상의 구체성이 크게 달리 나타난다. 신호윤은 인간의 상상과 관념이 만들어낸 대표적 도상들- 비너스, 부처, 보살상 등을 차용하여 그 이미지를 컴퓨터에서 3D로 조합하고 이를 다시 등고선처럼 층을 나누어 종이로 출력한 뒤 정교하게 오려내고 거의 0.5mm간격으로 붙여가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정면에서는 허상처럼 텅 비어보이고 옆으로 시각을 옮길수록 볼륨감과 원래 형상이 드러나게 된다. 유려하고 고상한 절대적 이미지일지라도 가까이 정면에서 똑바로 마주하게 되면 텅빈 공허만이 어렴풋이 떠있는, 종이 정도 가벼움으로 윤곽을 지탱하고 있는 형상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본질은 없다’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진眞과 허虛를 생각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도의 표현일 것이다. 사람의 욕망과 집착, 갈망이 허상을 향한 것일 수 있고, 자칫 관념적으로 함몰될 수 있는 종교와 문화와 집단이 설정한 이상적 가치도 실상은 정형화될 수 없는 임의의 설정일 뿐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담겨있다. 이 같은 인간의 착각, 허상과 실상의 혼돈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욱더 정교하게 다듬어 정말로 혹할만큼 아름답게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다. 김재성과 신호윤, 두 작가 모두 기계적인 치밀함과 독자적으로 개발해낸 표현재료와 방법들을 정교하게 다듬어내는 작업들이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물질적 풍요의 시대, 감각과 테크놀러지의 시대에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근본적 가치에 대해 절제된 어법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관지어 생각해 볼만한 전시회들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