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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원을 담은 낯선 세계로의 여행- 강일진 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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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9-05-30 16:31 조회9,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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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원을 담은 낯선 세계로의 여행


      제도권 미술이나 지역양식에 안주하기보다 반추상에 가까운 회화세계를 자유롭게 펼쳐온 중견 작가 강일진 화백의 개인전이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염원을 담은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광주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2000년 이후 거의 10여년 만에 갖는 이번 다섯번째 개인전에는 크게 ‘염원을 담아서’ㆍ‘붉은 포도주’ㆍ‘낯선 곳에서’ㆍ‘축제’ 등의 주제 연작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 가운데 ‘염원’ 연작은 우리 전통 부적의 재해석이다. 이를테면 상형문자와도 같은 부적의 조형성과 그 암시적 부호 속에 담긴 기원의 의미들을 현대회화의 형태로 단순 변형시킨 것인데, 주로 흰 바탕에 검정 선이 주를 이룬다. 산과 들과 강과 바람, 인물과 모자와 자동차와 연륙교와 계단 등등 자연소재와 더불어 현대인의 삶을 암시하는 상징적 부호들, 유려한 S라인 같은 마음 속 이미지들이 흰 바탕에 서너 겹씩의 검정 선들로 반복되면서 화면공간에 배치된다. 물론 일부 작품은 몇 가지 색선들로 화면공간을 분할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세상과 일상의 평안ㆍ건강ㆍ좋은 일들을 바라는 작가의 마음 속 발원들이 추상화된 부호처럼 다듬어져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염원’ 연작은 독자적인 현대 회화언어를 모색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원시와 현대, 일상과 예술의 근본들이 일정한 낯선 부호체계로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의도하는 기원의 메시지나 도상 형식들이 고대 암각화나 토기문양에서 볼 수 있는 동심원과 반복되는 마름모꼴, 격자무늬들처럼 지금 우리에겐 쉽게 읽혀지지 않지만 당대의 삶과 직결된 기원이 담긴 도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암시들만을 내포한 이 조형언어들은 이전의 주관적 예술세계에 바탕을 둔 일련의 미적 해석이나 회화적 감흥의 표현들 대신 가족과 동시대인들의 평화ㆍ행복ㆍ사랑ㆍ안녕을 바라는 보편적 소망과 염원을 절제된 조형형식으로 집약시켜낸 것들이다. 

      이처럼 패턴화된 선 위주의 부적 모티브 작업들은 ‘축제’ 연작에서는 마치 가볍게 흘려 쓴 초서나 원초적 심상화와도 같이 훨씬 자유로운 선묘들로 달리 나타난다. 도시의 삶이라는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 산과 들을 찾았을 때 만나게 된 흐드러진 꽃무릇이나, 정신을 맑게 일깨우는 서늘한 산죽 숲, 그 사이사이로 비춰드는 햇살의 어른거림 등과 함께 크고 작은 축제현장에서 느끼는 활력과 생동감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이로움과 충만한 생명력들을 한껏 담아내고자 한 것들이다. 이 작업들의 대부분은 붉은 색이나 분홍, 녹색의 짧은 나선, S자, 구름다리 모양, 수직ㆍ수평선의 결합들로 무리 지으면서 동어반복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작가 자신을 비롯한 주변 모두의 삶 자체가 늘 축제처럼 빛나고 즐겁고 흥겨운 것이기를 바라는 염원을 ‘부적’ 연작과 같은 맥락으로 풀어낸 셈이다.      

      ‘염원’이나 ‘축제’가 가느다란 선 위주의 작업이라면 ‘낯선 곳에서’는 여백을 많이 둔 화면에 유기체처럼 구불거리는 선들이 굵기나 모양, 색채, 분위기를 달리하며 유연하고 간결하게 배치된 작품들이다. 즉, 낯선 여행지에서의 기대감과 설레임, 생동감, 새로운 충전의 기분들이 추상적 언어들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여행지의 풍물이나 기억을 구체적인 풍경스케치로 기록하기보다는 현지의 인상과 기억을 함축하여 추상화된 이미지로만 담아내기 때문에 여행담의 실마리보다는 작가가 공유하고자 하는 느낌을 함께 교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워낙에 등산과 여행을 즐겨하기도 했지만 낯익고 익숙해진 것들로부터 늘 자신을 떨쳐내고 싶어 하는, 낯선 곳(것)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어 간결하게 응축된 추상형식으로 풀어내어진 작업들이라 여겨진다.

      선이 위주가 된 다른 주제 연작들과 달리 ‘붉은 포도주’ 작품들은 색면이 주가 되어 화면을 구성하는 형식들이다. 와인 빛 정취가 감도는 붉은 색을 채도와 톤을 약간씩 달리하거나 푸른 잎색들을 곁들이면서 넓직 넓직 불규칙한 색면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이 역시 ‘부적’ 연작과 마찬가지의 일정한 회화적 패턴을 가진 색면 추상화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확실히 이전처럼 꽃과 인물과 풍경 등의 소재 하나하나를 감흥으로 대하는 근접시점보다는 인생과 삶과 자연에 대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심리적 원경으로 관조하고 조망하며 재해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상징도상과도 같은 부호나 화면요소들에 암시적인 의미들을 부여하고 있지만 메시지를 억지로 드러내기보다 선ㆍ면ㆍ색과 같은 회화의 근본요소들로 시각적 형식을 우선하고 있다.

      최근 강화백은 산행이나 바깥활동이 줄어들고 이젤 앞에 앉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다. 작업 스타일도 대범한 필선이나 즉흥적 감흥, 형상의 구체성보다는 작품에 담고 싶은 심중의 얘기들을 오랫동안 숙고하고 조형적으로 각색해서 표현하는 쪽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머무를 수 없는 창작의 방황은 이전에도 늘 있어왔던 것이지만, 독자적 회화세계의 이미지를 굳혀 갈만한 시기에 지금까지의 작업을 뒤집고 마치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듯 또 다른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 조인호 (미술사, 운영자)

    광주신세계갤러리  / 062-360-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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