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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구체성과 조우하는 추상적인 미감- 최쌍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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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6-04-14 14:28 조회11,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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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신세계가 2005년 말 지병으로 타계한 서양화가 최쌍중 화백의 유작전을 4월 12일부터 23일까지 열고 있다. 선명한 원색과 무채색의 조화, 거친 붓질들에 의한 야수파적인 화면들로 구상화단에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하였던 작가의 유작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다.

    고 최쌍중(崔雙仲, 1944~2005) 화백은 1944년 담양군 대덕면 출생으로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라벌예술대학을 거쳐 홍익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한국수채화협회 및 한국신미술회 창립에 참여했고, [국전] [목우회전] 특선 등 1975년부터 2005년 작고 전까지 10회의 개인전을 비롯 여러 전시를 통해 독자적인 구상회화세계를 선보였으며, 추계예대와 홍익대에 출강했었다. 2005년 12월에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황호경 큐레이터의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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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구체성과 조우하는 추상적인 미감

    순수 관념의 영역에 선 일군의 모더니스트들에게 더 이상 예술은 인간의 살 냄새를 담은 낭만일 수 없었으며, 세계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사라져버린 후 이들에게 더 이상 자연은 신화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던 것은 아니다. 특히 많은 예술가들에게 자연과 인간은 여전히 불가해한 것이며 몸으로 체험해야 그 실낱을 잡을 수 있는 절실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 최쌍중은 신과 그가 낳은 세계에 대한 투박하고 순수한 경배의 입장에 서 있으며 그 면에서 그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사람이다.

    최쌍중에게 자연은 한결 같은 스승으로 예술세계의 출발점이자 최종 귀착점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최쌍중의 방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림을 그리기까지 미학을 따지기 이전에 감각으로서의 충동의 표현이 컸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인물이나 자연 앞에 선 내가 본 그 대상들이 주는 인상을 나의 감각으로 해석하여 표현해야 한다.”는 최쌍중의 진술이나 “바람을 맞으며 현장에서 스케치 할 때와 횟집 유리창으로 내다본 풍경이 틀리듯이, 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며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다.”는 소설가 한명등의 분석은 최쌍중의 작품세계가 관념의 순수성만을 출발점으로 삼았다거나 그 곳으로 모두 수렴될 수 없는 다양한 지점들을 포괄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작품은 작가가 경험한 삶과 이해한 세계, 그리고 나아가 그 세계와 작가의 내면에 대한 성찰의 깊이를 설명한다. 최쌍중의 작품은 거칠면서도 따뜻하다. 작가의 육신과 정신을 출산하고 키운 가난한 고향 땅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댄 익숙한 동네와 언제나 허리 숙여 절하듯이 일구어야 하는 땅, 비린내 풍기는 포구, 그리고 그 속에 팍팍한 삶을 순응도 거부도 하지 않고 살아가며 생의 억척스러움을 체득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사물들이다.

    최쌍중의 작품 속 사물들은 실제 세계의 모습과는 다르게 너무나 충동적인 감수성으로 다가오며 시감각의 범위를 넘어서 마치 현장에 머무는 것과 같이 오감에 와 닿는다. 화면에는 작렬하는 붉은 빛의 남도 땅과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4월의 배나무, 자기 생명력의 충동으로 미친 듯이 흩날리는 붉은 모란, 먼 바다의 축축함을 머금고 수상한 바람으로 흔들리는 바닷가 마을의 거친 하늘이 있다. 눈으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가슴과 혼으로 느껴봤던 것들이 총합되어 펄떡이며 드러난다. 유난히 야외스케치와 실사에 집착하였고 게다가 그 현장에서 가져온 것은 내면화 된 생동감 외에 어떠한 것도 화면으로 옮기지 않으려 했던 결과이다. 그런 연유로 화면의 나무는 거기의 나무가 아니고, 거기의 사람은 더 이상 화면 속의 꿈틀거리는 색 면과 다르다.


    규격화 되지 않는 형과 색, 거침없는 리듬으로 만든 수수께끼

    4월 농가의 <봄>(1990년)에서는 촉촉한 대지, 살바람 잦아드는 계절감과 유채꽃 향기를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느껴지며, 헐벗은 야산의 <雪景>(1980년대 초반 추정)에서는 고요하고 궁벽한 시골의 심심함을 흔들고 지나가는 한겨울의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한 해의 노고를 갈무리 한 시골집의 <晩秋>(1986년)는 달콤한 홍시의 간지러운 맛과 부뚜막에서 끓고 있는 큼큼한 된장냄새가 난다. 여인의 누드를 다룬 작품을 보면, 낮잠에 취한 <이브의 午睡>(1985년)는 혼돈스럽고 질긴 욕망을 담고 있는 육체에 대한 끊을 수 없는 근원적인 의문이 감지되지만, <기다림>(1987~8년)에서는 건강한 젊음의 풋풋한 향기가 느껴진다. 이러한 감각의 구체성은 최쌍중이 유난스럽게 스케치여행을 좋아하였고 실내작업보다는 현장 작업을 중요시한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갈 수 밖에 없는 사물의 특성을 그 상황 속에서 잡아나가는 작업의 속성 때문이며, 하나 하나의 작품 속에 그의 생애의 흔적을 담으려 하였고 대상을 자신의 “감각으로 해석하여 표현해야 한다.”는 결벽스러운 의지의 결과이다.

    보통 작가들의 작품이 연대기적으로 뚜렷한 조형적 특성이 드러나는데 반해 최쌍중의 작품들이 비교적 동일연대 내에서도 작품마다 많이 다른 경향을 보인다. 뚜렷한 형식의 틀을 만들지 않고 그때 그때의 감성과 충동에 충실하려 하였던 흔적이다. 같은 1980년대 초반의 작품이면서도 <가을풍경>(1983년)이 색조의 변화를 크게 하면서 강한 색대비를 통해 화면의 생기와 리듬감을 만들고 있는데 반하여, 예외적인 작품으로 보이는 <파도>(1980)는 중간색과 혼색을 보다 많이 사용하면서 감성을 절제하고 다소 설명적으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면에서는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후의 작품들이 보다 선명한 보색의 대비를 꾀하면서 색채화가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지고, 거칠고 강한 붓 터치도 많아지면서 직관적 감성의 표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앞서 <이브의 午睡>(1985년)은 같은 제목과 연대의 작품이 두 점 있는데 모델의 포즈나 구성과 포치는 동일하게 가면서도 화면의 질서를 보다 정련함으로써 내면의 혼돈을 정리해간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캔버스 앞에 임하는 순간에 충실한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다른 예로 <歸路1>(1989년)과 <제주풍경>(1991년), <歸路2>(1992년)는 주변의 풍경이나 등장인물로 보아 같은 상황과 장소를 1, 2년의 간격으로 담은 작품인데 <歸路1>이 상황의 구체성에 관심을 두고 색조의 다양함과 구성의 안정감에 관심을 둔 반면, <제주풍경>은 <歸路1>에 등장하는 각 요소들을 화면 안에 보다 꽉 차게 배치하고 원근감을 압축한 경향이 강하며 붓질이나 색감도 억세게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 제작된 <歸路2>는 언뜻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작품과 같이 느껴지는데 앞 두 작품의 상세하게 표현된 요소들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작게 등장하던 인물을 확대하고 구체성은 사라지게 하였다. 등장인물이나 주변상황에 담겨 있는 내면적 측면에 중점을 둠으로써 추상성과 관념성을 확대시키고 구성의 파격을 추구해 나간 사례이다. 이처럼 최쌍중은 한 장소나 소재를 반복해서 다룬 작품이 많은데 이는 그 대상물이 작가의 예술적 충동을 더 잘 유발하였기 때문 이겠으나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도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한 작가의 순수한 조형적 충동 때문으로 보인다.

    최쌍중의 색을 다루는 방식은 물감튜브의 색보다는 파렛트 위의 조색을 우선한다. 그러나 파렛트 위의 색보다는 채 마르기 전에 캔버스 안에서 빠르고 강하게 지나가는 붓질로 색채들을 꿈틀거리게 하고 물감 덩어리들이 현란한 살 섞음을 하면서 격렬한 충돌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마지막 붓끝이 떨어지기 이전에 결코 누구도 그림의 최종을 상상할 수 없도록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기법이 후기인상주의의 여명을 틔운 작가들의 천재성과 함께 충동적 조형법을 통해 작가 내면과 캔버스의 격렬한 만남을 추구해 온 많은 표현주의 작가들의 기법을 동시게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최쌍중의 조형세계가 초기 인상주의자들이 자연과 바깥 풍경의 시각적 순수성을 교과서와 같이 받아들이다가 후기에 이르러 그 형식의 견고함을 구축해 가면서 예술의 본질을 표현의 순수성으로 확장해간 것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최쌍중의 작품은 대상물의 재현에 대해 무심한 듯한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재현에 대한 작가들의 관점이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조형상 저마다 극적인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데 최쌍중의 경우는 자연으로부터 추출해 낸 재현의 요소들을 재료로 하여 내면적 조형세계 안에서 선명한 결과를 얻기 위한 수 많은 정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작품이 종종 입체감이나 원근감 등 실제 세계의 객관적 모습을 담는 전통적인 기법을 무시하고 진행되기도 한다.


    바래거나 멈추지 않은 땅과 사람에 대한 사랑

    사물의 생명력을 꿰뚫어 보여주는 최쌍중의 작품은 작가 자신이 몸으로 경험한 우리의 역사와 자연을 설명한다. 정물이나 단독의 사물 외에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풍경화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거의 모두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많은 풍경화가들이 풍경의 순수성을 위해 작품에 인물을 넣기를 꺼려 하는데 비하면 이례적인 점이다. 그런데 이 점 때문에 최쌍중의 작품에 관람자가 자신을 투사하고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다. 보통 풍경화 작품 속의 장소는 실제 세계의 투영이지만 관념 속의 이상향에 가까운데 최쌍중의 세계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자 밭이고 실제 삶의 터전에 가깝다. 이렇게 최쌍중의 작품이 실제의 삶에 가까운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끊임없이 남도의 향토성에 대해 집착하였고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숙명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현에서 벗어나 자연과 사람들로부터 길어 올려진 요소들을 재료삼아 내면의 추상적인 미감쪽으로 나아갔음에도 구상의 경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것은 이러한 감수성을 몸처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도시는 이러한 감성의 사람을 닳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 내면의 자연과 과거에 대한 향수는 바래는 과정을 거치고도 아련하게나마 남게 마련. 아마도 우리가 최쌍중의 작품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향수를 끝까지 지켜내려한 사람에 대한 존경과 동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쌍중은 2005년 12월 9일 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감수성을 그 땅에다 벗어 놓고 떠났다. 손발 움직이기도 버거운 와중에도 그림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욕구에 시달렸다는, 10년을 넘어선 오랜 투병의 끝이라 더욱 안타깝지만 작가 자신이 언제나 그렸던 그 그림 속의 자연과 인간의 숙명이 그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어쩔 것인가. 2002년에 10호 크기의 작은 작품 <장미>를 그렸다. 거침없는 힘의 붓질과 펄펄 끓는 감성의 색감으로 요동치는 화면을 만들어내던 젊음은 사위어지고 없지만 피를 토한 듯한 붉은 색과 주춤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으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붓의 흐름은 여전하여 생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욕망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황호경(광주신세계 갤러리 큐레이터)
    [200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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