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과 몽상의 조형적 결합 ; 위재환 개인전 - '뫼빌리우스의 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2-12-09 13:54 조회1,59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설치작품 현상과 몽상의 조형적 결합; 위재환 개인전-'뫼빌리우스의 띠' 2022.12.01-12.14 /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위재환의 조형작업은 순수 동심의 세계와 혼돈스러운 현실, 불안정한 내면 사이를 오간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회상으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꿈을 이 시대 보편적 희망사항들과 연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회상도 염원도 현실이 아닌 지금의 상황에서 이상일 수밖에 없는 상상세계를 몽상유희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현실인으로서 “이상적인 삶을 위해 짊어져야 할 고난과 역경, 삶의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일상 이면의 정신적 출구를 찾아 조형작업에 몰입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현대사회와 동시대인의 반추이면서 작가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번 ‘뫼비우스 띠’ 전시는 오랫동안 이어 온 ‘몽상가’ 연작들이면서도 그동안의 혼재된 조형적 모색 가운데 동심의 인물상들이 주를 이룬다. 방독면이나 산소마스크에 거친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두툼한 몸뚱이의 불안한 모습들은 섞지 않았다. 작가 특유의 왜곡된 신체형상들이긴 하되, 암중모색 불안한 상황의 연출보다는 맑고 정감 있는 세상으로 펼쳐 놓았다. 쉴새 없이 전시회가 이어지다 보니 전에 선보인 인물상들이 일부 다시 불려 나오기도 했지만,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현실 너머 풍경으로 꾸며보기 위해 관련 캐릭터들을 재소환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몽상가’ 연작은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공해와 기후위기와 코로나19와 집단참사와 전쟁의 참상과 정치사회적 혼돈이 계속되는 현실의 반추이자 풍자다. 그러면서도 그런 안개 속 같은 불안정한 삶에서 잠시 몽상으로나마 심신의 해방구와 정신적 위안처를 찾고 싶은 작가 자신과 이 시대 다중의 심리를 담아내려 하였다. 작가노트에서 그가 “모두가 행복한 세상, 건강한 자연과 지구, 더불어 사는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작업의 궁극적 목표라고 밝혔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렇게 읽혀진다. 순응하거나 편안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도피안처를 찾기 마련이고, 그런 갈망에 어떤 답도 보이지 않고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면 대신 자족할 수 있는 방편을 만들거나 자기만의 이상세계를 꾸며내게 된다. 위트와 정겨움이 담긴 위재환의 이번 ‘몽상가’ 인물상들은 그래서 천연덕스러운 해맑음만큼이나 그 이면에 어른거리는 불안한 현실의 그림자 또한 짙게 느껴진다. 애써 행복감을 지어 보지만 그것이 실재가 아님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외려 애처로워 보일 수도 있다. 작가의 그동안 작업에서 줄곧 오갔던 현실과 몽상 사이의 간극이 큰 만큼 그런 표정과 몸짓들이 한낱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사실을 세상사에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과 꿈은 같은 바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합치될 수 없는 그 간격이 크면 클수록 욕망도, 소망하는 꿈도 여전히 비현실이라는 자각에 허허로워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인들의 초상으로 빚어진 위재환의 인물상들은 저마다 알록달록 무지개빛을 품고 있다. 단독상이 대부분인 이번 인물상들의 컬러링에서 몽상하는 내면을 비춰내듯 몸뚱이들을 입체화폭 삼아 굵고 거친 회화적 필촉들로 단장시켜 놓았다. 어디론가 향하거나 무언가를 찾고 있는 표정들에 맞춰 여러 색의 호기심들이 요동치거나 일렁이는 붓질들로 내면심리를 표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전시된 꿈꾸는 고래나 애마도 서투른 여행자이긴 마찬가지지만 몸단장 채색은 같은 방식이다. 본래 회화에서 출발했던 그의 전공을 올들어 입체조형작업에 결합하기 시작한 건데, 중첩시키고 번지고 스치는 붓질의 회화적 표현을 곁들이다 보면 몽환적 상상은 훨씬 더 자유로워진다고 말한다. 위재환은 전시마다 전체를 통괄하는 깃대 같은 작품을 설정하곤 한다. 최근 보여준 허공을 유영하는 고래, 로시난테 같은 애마를 탄 몽상가, 성채나 망루 위의 조망자, 조각천들로 치장한 긴 목의 기린 등이 그런 예들이다. 특히 평화로운 무한공간을 한가로이 유영하는 고래나 불확실한 미지의 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는 애마는 그의 ‘몽상가’ 연작에서 꿈을 싣는 주요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런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제법 풍채가 큰 새 한 마리가 전시장에 자리한다. 억세고 큰 발에 강철덩이 머리를 가진 이 새는 현실과 꿈 사이를 방황하는 몽상가의 또 다른 초상이다. 고단한 현실로부터 꿈꾸는 욕망들은 수많은 별무리가 되어 몸체를 부풀리고 있지만, 규칙적인 반복기호들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은 뫼비우스 띠가 되어 이를 얽어매고 있다. 알록달록 비대해진 몸집으로 이상향을 꿈꾸고는 있으나 소망대로 날 수 없는 처지에 위로와 연민을 보내는 것이다. 위재환의 조형작업은 현실상황과 현상을 에두르는 위트 풍자와 함께 시대와 삶을 반추하는 묵언의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인간의 본질적 욕망도, 불확실성 속의 내면 불안도, 정치사회 세상사의 혼돈도, 지구환경과 기후위기의 문제도 모두 그의 촉수를 자극하는 삶의 환경들이지만 이를 그 특유의 상상과 은유로 비틀어 비춰내는 것이다. 사실 그가 꿈꾸는 세계는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 먼 것이라는 자의식 때문에 자신과 동시대인들을 ‘몽상가’라 지칭한다. 하지만, 비록 도달할 수 없는 몽환세계라 할지라도 현실과 상상을 결합시켜 보고 가끔은 현실 속 해찰을 즐기면서 삶의 위안을 전하기도 한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이나 몽환은 무한자유다. 그만큼 작업의 확장 폭 또한 무궁무진이다. 다만, 재치 있으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로 작업의 독특함을 뚜렷이 잡아 온 오랫동안의 방호외피를 벗고, 부대조형을 활용한 상황연출도 털어버린 맨몸뚱이 같은 몽상가들이라면 자칫 조형적 재미와 형상의 왜곡만이 앞선 무심한 인물상들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입체조형에 회화성을 결합시키더라도 그것이 화폭의 붓질 채색방식 그대로여야 하는지도 재고해 봤으면 한다. 매사 진력을 다하는 현실의 기반 위에서 상상도 소재활용도 이를 실상으로 드러내는 표현역량에서도 내실을 단단히 다져온 만큼, 독자적인 조형세계의 현재와 너른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자기객관화 시각도 잃지 않았으면 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전시장 입구 작품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몽상가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몽상가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몽상가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전시 일부 위재환 개인전 '뫼빌리우스의 띠' 전시 일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