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진 기증작품전 ‘자연의 소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4-06-03 15:21 조회1,492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박광진 <그린>, 2007, 캔버스에 유채, 85x85cm 박광진 기증작품전 ‘자연의 소리’ 2024.05.25-07.28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자연의 화음과 조형적 내재율의 공간 부침하는 시대문화 대신 견고한 사실 탐구 (생략) 박 화백의 수업기와 화단 입문기인 1950년대 중후반은 일제강점기 서양화 유입 이래 정형화되어 온 근대적 아카데미즘을 걷어내고 새롭게 동시대 미술로 전환하려는 대변혁의 현대미술운동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당대 화단의 주된 풍토나 신기류들과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박 화백의 화폭들은 작가의 회화적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이다. 당시 한국 현대미술로의 전환기에 뒤늦게 모더니즘으로 확산되던 주관적 상상력이나 조형성 위주의 추상 비구상 회화 쪽도 아니고, 시대 상황에 차오른 청년의 도전 의지를 격렬히 분출시키는 광폭한 행위적인 작화방식도 아닌, 자연소재나 정물 인물을 차분히 묘사하는 사실주의 화풍이 특징이기 때문이다.(중략) 이번 기증작품전에서 우선 누드화와 정물화들을 보면 박 화백의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나타난다. 고대 청동촛대를 그린 <옛날에>(1973)나 토기 항아리 그림 <역사의 유물>(1987)은 (중략) 자잘한 필촉의 흔적을 남기되 감정이입보다는 소재의 사실성을 우선하여 붓질의 자유로움을 자제한 묘법들이다. (중략) <휴식>은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낯익은 포즈의 누드화이면서 밝은 색감과 과도하지 않게 따북따북 눌러 덧쌓은 붓자욱들이 흰 침대천이나 그늘진 보랏빛 커튼과 어우러져 잔잔한 생기를 돋운다. (중략) 비교적 굵은 붓질의 흔적을 덜 다듬어 필촉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인체 비례나 색감처리에서 어떤 왜곡 과장 없이 윤곽선을 따라 정확한 묘사에 우선하고 있다. 절제된 사실 묘사로 찾는 자연풍경의 평온감 (중략) 자연 풍경화들은 1960~70년대 작품들에서 크게 차지하던 산의 비중이 점차 멀고 작게 원경으로 둘러지고 대신 들녘이 더 넓게 화폭을 채우는 흐름이다. 1975년의 <제주 윗새오름>은 화면의 삼 분할 정도로 오름 봉우리가 크고 가까이 묘사되고, <사기동 설경>(1972), <설악 단풍>(1976), <설악의 눈>(1976), <무등산 겨울>(1981)에서도 (중략) 주변을 압도하며 근경에서 묵직하게 솟아오르는 산의 기운보다 온갖 초목들이 잔잔히 공존하는 너른 평온감 쪽으로 마음이 더 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평온감의 지향은 해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략) 인간 세상사가 섞인 풍경보다는 사람의 기척이 빠진 자연 그대로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화를 보인다. 바삐 움직이는 사회활동과 달리 그림은 마음과 정신의 평정심을 되찾게 하고 자연풍경은 그런 화가의 동경에 화답하는 안식의 세계였나 보다. 그림을 그리는 태도가 감정 과잉이나 행위적 흔적을 자제하는 쪽이다 보니 화폭은 늘 차분하고 정제되어 상대적으로 생동감이 덜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중략) 일부에서는 인상주의식의 풍경조망과 감흥을 실은 붓의 움직임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감정을 절제한 상태에서 작은 붓터치로 세밀히 묘사하는 화법들을 취하고 있다. (중략) 순간적으로 요동하는 내적 감정이나 즉흥을 자제하고 치밀한 세필작업들로 정교하게 다듬어낸 사실주의 화법들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중략) 제주의 풍광에 매혹되면서도 꼼꼼한 세필들로 너른 억새 들녘 풍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들이다. 촘촘한 붓자욱들이 모여 풍경의 군집들을 만들고, 다른 경물들을 함께 억새를 주제로 삼음으로써 바람결과 바람소리까지 청음효과를 중첩시켜내고 있다. (중략) 생명활동의 무대로서 자연을 사실로 대하되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비형상적 현상까지 화폭에 담으려는 박광진 화백의 관심은 자연의 한 점과도 같은 풀포기 확대 그림들에서 더 잘 드러난다. 자연의 너른 평온감에 이끌리면서도 그런 들녘 풍경의 한 부분에 몰입하곤 하는 거다. (중략) 군무를 이룬 억새들 가운데 몇 포기 살랑이는 억새의 흔들림에 집중하면서 이들의 쉼 없는 율동감과 함께 이를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화폭에 담고자 한 그림들이다. 작위적 변형이나 왜곡, 과도한 감정이입이나 주관적 해석을 자제한 사실주의이면서 가감할 것 없는 자연의 조화로운 풍광이 내포하고 있는 사실 이면의 추상적 요소를 드러내어 주는 것도 박광진 화백 그림의 또 다른 묘미다. (중략) 구상적 자연풍광과 비구상적 내재율의 추상화면 결합 자연풍경을 이루는 여러 요소를 한 덩이 넓은 색면공간으로 묶는 박광진 화백의 화면 구성상의 대상 해석은 1990년대 말부터 전혀 새로운 회화세계로 전환하게 된다. 그동안 즐겨 다뤄오던 밝게 빛나는 풍경이며, 생기 넘치는 색채의 유채밭이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무리 등을 화폭의 일부 단으로 압축하고 나머지 면을 가느다란 밀집선들로 채운 넓은 추상공간으로 처리하는 획기적 변화를 보인다. 수많은 생명존재들이 펼치는 조화로운 세계로부터 교감해 온 자연의 색채와 소리, 보이지 않는 조화와 공생의 질서를 독자적인 조형적 변주로 풀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제주의 너른 억새 들녘과 오름의 조화로운 풍경을 간결하게 정제시켜 구상과 비구상의 화면공간으로 변주시킨 것인데, 그동안 천착해 오던 사실주의 화풍을 스스로 뒤집는 자기혁신이 아닐 수 없다. 대상을 임의로 왜곡 변형시키지 않는 사실화법과는 전혀 다른 이 같은 파격적인 조형변주는 <오름 가는 길>(2008)에서 그 변화의 단초를 짐작해볼 수 있다. (중략) 수시로 마주하는 제주 억새들에서 가늘고 기다란 줄기의 밀집선들을 엄연한 내적 질서를 지닌 자연 생명의 이미지로 추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실재하는 대상이라 해도 그로부터 추출한 이미지는 압축할수록 군더더기를 털어버린 간결한 추상적 조형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화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구성되는 밀집선들은 더 나아가면 아예 자연의 암시적 이미지조차 배제한 상태로 비구상적 공간을 이루어 자연풍경 부분과 대비되면서 또한 색채효과를 통해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중략) 선묘 작업의 초기에는 화면의 7~8할을 차지하는 굵은 수직선들을 뚜렷이 드러내다가 (중략) 점차 가늘어지면서 선보다는 색면효과 위주로 보이게 잔잔해지고 있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자연의 소리>(2013), <자연의 소리 23-D>(2023)처럼 선이 아예 용해되어 사라진 넓은 색면으로만 넓은 면을 채우면서 비가시적 요소를 조형화시키기도 한다. (중략) 특히 2000년대 이후 수평의 띠처럼 압축시킨 풍경과 그 위아래로 교차하는 치밀한 수직 밀집선들은 화면에 견고한 시각적 질서와 함께 음이 소거된 적요의 공간이면서도 오히려 미묘한 생명의 화음으로서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이하 생략)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박광진 <억새산>, 1999, 캔버스에 유채, 130x140cm 박광진 <억새소리 20>, 2007, 캔버스에 유채, 110x120cm 박광진 <제주의 유채들>, 1995,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박광진 <무등산 겨울>, 1981, 캔버스에 유채, 60x50cm 박광진 <제주 윗새오름>, 1975, 캔버스에 유채, 55x46cm 박광진 <한강변 풍경(팔당)>, 1978, 캔버스에 유채, 45x38cm 박광진 <휴식>, 1975, 캔버스에 유채, 60.6x45.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