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숙 조은솔 초대전 ‘연약한 것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4-08-22 10:45 조회1,07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연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아름다움_숨바람>, 2024, 혼합재, 500x500x120cm 이연숙 조은솔 초대전 ‘연약한 것들’ 2024. 08. 06 – 10. 20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우주를 움직이는 ‘연약한 것들’ 요즘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가 충적세나 홍적세처럼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용어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세라는 것은 지구의 모든 곳에 과도하게 군림한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에 의해 지구의 멸망이 곧 도래하고 말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를 미리서 앞당겨 과거의 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예측되는 용어에 해당한다. 이렇게 분류되는 것에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세가 다른 지질시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중략) ‘필멸의 숙명’을 지닌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인간들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절체절명의 위기와 절망 속에서 놀랍게도 ‘타자적 윤리’라는 구원의 희망을 집필했던 레비나스처럼 그래도 한편에서는 지구를 구하려고 노력 중이다. 몇몇 예술가들은 기술적 ・과학적으로 진화하는 인류의 문명으로부터가 아니라 분리되어 스러지는 타자나 비인간인 자연과 같은 소위 ‘연약한 것들’으로부터 인류세의 어두운 미래를 구원하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려 하고 있다. ‘연약한 것들’은 그러므로 결코 연약한 것들이 아니며 치유와 회복을 위해 연대해야 하는 주체에 해당한다. 현대예술에서는 사회적 타자인 뿐만 아니라 식물군과 동물과 같은 지구에 존재하는 비인간처럼 그동안 문명이 분리해 소멸시켰던 것들이 새로운 윤리를 세우기 위해 다시 탐험되고 있다. (중략) 오랜 전설과 야만족들의 신화, 마녀와 마법, 유령과 수많은 정령들, 질병과 상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들과 무의식, 죽음과 죽음 너머의 세계, 여성과 성적소수자, 노예, 노동자와 이민자들의 무언가 모호하고 뭉클하고 부드럽지만 기괴하고 섬뜩한 이야기 속에는 아직도 인간이 꿈꾸고 있는 이상 그 처참한 상처와 고름을 걷어내면 낯선 아름다움과 새로운 윤리가 존재한다. ‘연약한 것들’, 타자의 미학 ‘연약한 것들’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소위 ‘입담이 좋은 이야기꾼’으로 널리 알려진 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의 한 대목에서 연유되었다. ‘약한 것들’이 결국은 이기게 되어 있다는 주장은 이제 여든이 훌쩍 넘은 노작가의 진흙탕 같은 현실과 마법과 같은 꿈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오랜 창조적 직조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일 것이다. 이 진실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작가가 주인공 이진오의 입을 빌어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이다. 3대에 걸쳐 백여 년 동안의 금속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612쪽의 장편소설을 집필하도록 황석영을 이끌었던 것, 다시 말해 연약한 것들이 지닌 진실을 지난하게 추적해왔던 에너지의 정체, 바로 그의 미학적 관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다면 예술가는 어떻게 타자의 형상을 구체화시키고 실재를 드러내는가? 우리는 이번 전시에 초대된 이연숙, 조은솔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주류에서 밀려난 이 연약한 타자들의 형상을 드러내고 낯선 자를 환영과 기쁨으로 맞이하는 깃털 춤으로 오래 전에 사라진 자연의 전설을 불러오거나 나약한 인간의 몸에 자연을 공유하는 생태프로젝트를 통해 죽음과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의 길을 보기로 한다. 이연숙 / 까마귀, 깃털, 붉은 바다 이연숙은 과거의 기억을 비닐봉지, 숟가락, 깃털, 종이 등의 연약한 모티프를 매개로 죽음과 상실, 트라우마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을 ‘지금, 여기’의 특정적 장소로 옮겨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잠재태를 일깨워내는 연금술을 통해 마침내 보편적인 진실과 윤리적 연대의 서사를 형성해내는 작가이다. 그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깃털 군무 작업은 2013년 호주 레시던시에 참여하던 중에 경험한 원주민 여성의 독특한 춤과 노래 그리고 신성시하던 깃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호주의 원주민이나 캐나다 킨카이족, 인디언,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모두 현대문명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타자들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 움직이는 깃털의 무리 앞에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여동생의 죽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까마귀 형상을 놓았으며 오래된 삶의 흔적을 기록한 비문인 듯한 추상화를 매달았다. 가볍고 연약한 수많은 깃털들의 움직임은 작가가 호주 원주민들로부터 체험한 드리밍(Dreaming)의 세계, 신성하고 영적인 자연과 동물에 관한 숭배, 그리고 죽음 너머의 초월적 세계에 대한 원주민들의 믿음 체계를 표현하는 춤과 노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깃털’과 ‘까마귀’, ‘비문’은 한편으로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제례로 시작되어 그녀가 그보다 앞서 겪었던 과거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고 그래서 더 과거로의 여행길에 들어선 그녀가 호주 레지던시에서 경험했던 신성하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기억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선형적 기억 사이의 잠재태를 뒤섞고 중첩시켜 ‘지금, 여기’의 공간으로 불러옴으로써 고대 인류로부터 전래되고 있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 오래된 에너지와 연계시키면서 죽음이라는 타자가 무한의 세계와 소통하는 꿈에 관한 강력한 서사를 귀환시키고 있다. 조은솔 / 나무뿌리, 입과 목구멍, 식물, 약초 인간은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은 기운으로 병을 얻을 때면 우리의 몸이 아닌 다른 성분, 즉 타자의 몸을 섭취하여 영양을 보충하고 병을 이긴다. 이처럼 타자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여러 가지 약초를 다린 물, 동물을 고은 액체 등 우리의 몸이 아닌 것들을 우리의 입과 목구멍을 통해 마시고 호흡하며 비인간과의 타자적 관계를 통해 고통과 상처를 회복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조은솔은 이처럼 외부와 내부환경, 그리고 자아와 타자가 관계를 이어가는 틈을 통해 유지되는 공유된 생명의 존재를 탐색한다. ‘나의 것이기도 나의 것이 아니기도’ 한, ‘식물도 동물도 아닌,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것들’의 공유 생태계에서 ‘틈’으로 갈라져 나온 조은솔의 생명체는 연약한 것들이 태어나서 죽기를 반복하고 죽은 몸들은 다시 재생되어 무성하게 자라나 계통을 형성하는 강인한 존재로 진화 중이다. 공유 생태계-조화의 묘약-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을 거쳐 생명과 죽음의 조화를 유지하는 무성한 계통을 지니게 된 그녀의 생명체는 공시성과 통시성을 가진 언어처럼 스스로 강인한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태윤리학(Ecoethica)을 제시하는 새로운 ‘생태사회’처럼 보인다. - 박현화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장)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기획 초대전 '연약한 것들' 중 조은솔의 작품 일부 이연숙 <붉은 바다>, 2024, 단채널 영상 / <오른땅-시간여행>, 2024, 캔버스에 아크릴릭 이연숙 <내려 앉은 하얀땅>, 2024, 혼합재, 300x300x30.5cm 조은솔 <숨구멍_호흡>(2024), <숨구멍_허밍>(2024), <덩어리>(2023), 혼합재 설치 조은솔 <묘약방>, 2024, 혼합매체 (11개의 약용식물, 유리저그, 유리컵, 저울, 집게, 스푼, 스포이드, 나무테이블, 벤치, 실험노트 등) 조은솔 <근계>, 2023, 방수포에 자수, 혼합매체, 3mx3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