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수공적 재현의 리얼리티- 김일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8-04-01 20:55 조회9,920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재현은 단순 모방이나 모조 이상의 구체적 리얼리티를 가질 수 있다.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나 모습, 모양이면서도 그것이 사실을 되비쳐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소재가 지니고 있는 실체적 진실성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재현의 기법이나 노동의 흔적이 너무나 정교할 때 대상은 또 다른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낯익은 것에 대한 공감대를 의미심장한 것으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김일근이 최근 몇 년 동안 연작으로 계속하고 있는 종이 재현작업들은 일상 사물 또는 생활 주변의 소품들을 소재로 하면서 못 만들어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그 수공의 정교함 때문에도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데, 이번 신세계 초대전에서는 지금까지 재현 위주에서 시의성을 살린 풍자적 리얼리티가 훨씬 부각되어져 있었다.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광주 신세계갤러리에서 신세계미술제 수상작가 초대전 성격으로 개최된 김일근 개인전은 ‘재현된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전시제목과 ‘Shopping'이라는 연작 제목들처럼 고급 호사취미의 상징일 수 있는 유명 쇼핑공간에 딸린 전시장의 장소성과 맞아떨어지면서 작가의 의도가 훨씬 확장되어질 수 있었다. 주로 여성 핸드백들이 주된 소재가 되면서, 마치 백화점의 쇼-윈도우나 쇼-케이스에 진열된 명품들처럼 전시되고, 이전과 달리 일부 색지와 광택지를 곁들이기도 해 짝퉁문화를 훨씬 실감나게 재현해 내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단일 작품들과 달리 일정 공간에 가방들을 줄지어 늘어세우면서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대기업 총수의 두상을 정면 중앙 높은 부의 권좌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시사적 리얼리티를 연출해내었다. 풍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줄을 서시오>라는 이 작품을 비롯해 또 다른 세계로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는 김일근의 최근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 전시에 붙여 김민경 큐레이터는 아래와 같은 비평을 카탈로그 서문에 게재하였다. ///////////////////////////////////////////////////////////////////////////////////////////////////// 재현된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 일상의 사물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펼쳐져있다. 먼저 작가의 섬세한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뛰어난 손놀림으로 정교한 재현을 이루어낸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선 대상 하나하나의 조형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독자적인 형태로 인식하게 된다. 사실적인 묘사와 재현된 현실만으로도 관객은 예사롭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받는다. 보통, 예술의 본질은 모방론과 표현론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모방론에 의하면, 예술이란 대상의 미적 형상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인데 거기서 모방은 아름다운 대상의 외형을 단순히 예술작품 안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즉 대상의 재현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미적형상을 구체화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 표현론에 의하면, 예술가는 창조자로서 외적인 대상이 지니고 있는 미를 단순히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진리나 미적체험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 사상, 진리 등을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일근의 종이 작품들은 예술의 표현론으로 얘기할 수 있다. 단순한 외형적 모방으로서의 재현이 아닌 창조적 재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관객은 재현된 형태에서 나아가 물리적 실재와 형상이라는 허구의 대립적 의미와 마주친다. 그렇지만 한발 더 나아가면 재현된 사물들은 현실 자체보다도 그 사실로부터 생성되는 의미에 더 주목하게 된다. 즉, 재현은 사실이나 구체의 대체가 아니라, 또 다른 의미로 바뀌는 것이다. 작가는 대상을 충실히 옮겨 놓는 것에서 나아가 그 구체성의 인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작가 김일근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방들, 특히 작품 <상납문화>에서는 정교한 재현에서 한 발짝 나아가 대중화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미술의 하나의 특징을 드러낸 것이며,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을 통해 우리 세상사에 대한 통찰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의 사회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관념적, 시대적인 통념을 감지하고 건전한 사회상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단순한 묘사나 정교한 재현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사회성을 드러냄으로써 한 젊은이로서의 작가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업과정에 있어서의 성실함과 인내, 건전한 의식과의 고전분투가 그의 작품에서 읽혀진다. 예술은 구체적, 감성적 형상을 매개로 하여 우리에게 감동을 줄 것을 목표로 행해지는 사회적 활동이다. 즉 우리의 단순한 물질적 삶의 필요를 넘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명품을 쫒고 물질적인 편안함과 안위를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의 삶, 예술가의 역할을 충분히 감지하는 그의 작가정신을 높게 사고 싶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의 삶에 질서와 조화를 부여하며, 고매한 인간성을 함양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고찰로 보다 큰 작업적 성과를 기대하며 그의 예술혼이 보다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김민경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