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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경의 자아 허물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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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4-11-03 14:10 조회9,3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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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경은 자신의 신체를 덧 싸고 있는 속옷이나 신발, 가방, 주변 일상을 함께 채우고 있는 가구와 기물들을 조형적 변주를 통해 새롭게 지어낸다. 색채를 가미하지 않은 깨끗한 한지를 주재료로 즐겨 이용하는데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기품 있는 한지의 특성과 여성성이 서로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천연 닥지나 장지, 한지들을 재단하고 오려붙이거나 물에 불려 사물에 입혀 떠내어 다시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깁고 떠가며 치장을 붙여 형체를 이루어 내는 간단치 않은 과정을 통해 가족사 중심의 옛 여인들의 삶을 느끼고 싶고 그 자체가 인생의 수련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재도 재료도 자신과 관련되고 자신의 손 일로만 이루어지는 작업들을 주로 한다. 다른 소재들에 비해 재료를 준비하고 형체를 다듬어 마무리지어 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작가의 손으로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는 한지작업이 매력적이라는 그녀 작업은 그야말로 수동과 수공의 노역을 일부러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창작이라는 게 감각적이든 체질적으로 우러나는 것이든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예술적 영감과 발상, 신선한 아이디어에 의해 예술이라는 특별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작가의 정성스럽고도 손에 익은 솜씨의 흔적들에서 또 다른 감동과 울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녀의 작업은 자아와 주변 것들의 껍데기를 허물처럼 벗겨내는 일이라 한다. 벗겨내고 털어내고 채워지고 또 비우기를 반복하면서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는 이러 저런 자기 내부로부터 또는 주변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꿈꾸는 것이다. 작품 제목부터가 <비우거나 버리거나... 혹은>이기도 하다. 이번 다섯 번째 개인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침대나 장식장·의자·화장대 같은 덩치 큰 가구작업들은 이전의 여리고도 은밀한 속옷 연작들처럼 작가 육신과 정신의 일상을 꾸며주거나 둘러싸고 있는 삶의 소품들이라는 같은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물성의 무게와 덩어리의 차이만큼 그녀 삶의 공간을 다른 눈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허물처럼 껍데기를 벗겨낸, 그러나 벗어버리려는 그 허물마저도 자아의 외화된 형체로 가벼워진 또 다른 존재가 되어 그녀 주위에 둘러서 있다.

    조은경의 이번 전시에는 그녀 작업의 과거와 현존, 미래가 함께 보여지고 있다. 즉 이른 시기의 드레스나 팬티 같은 속옷 작업부터 이번에 새로 꾸며낸 침실 가구들, 그리고 다음 작업의 방향이 될 것 같다는 평면작업들이 같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평면작업은 한지의 뒤쪽에서 앞으로 바늘구멍을 뚫어가면서 의자와 팬티 모양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파스텔 색조로 물들인 한지를 배경으로 가늘게 구불거리는 선들의 하트모양 무늬나 팔걸이 의자, 목걸이와 우산 같은 소품들을 그린 반투명지를 겹쳐놓기도 했다.

    그녀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달리는 작업보다 작가이자 일상 속 한 여자인 자신에게 충실하고 그것을 자아와 주변의 모습으로 비춰내는 작업 그 자체를 즐긴다고 한다. 실체가 아닌 벗겨진 허상으로서 그녀의 은밀한 내적 자아를, 어차피 그녀 작업에서 객체일 수밖에 없는 관자가 되어 가상세계의 이방인처럼 은밀히 들여다보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그녀 작업을 대하는 은근한 매력인지도 모른다.

    광주 롯데갤러리의 2004년도 창작지원프로젝트로 마련된 조은경의 이번 다섯 번째 전시는 2004년 10월 28일부터 11월 10일까지열리고 있다.

    -- 조인호(운영자)

    [200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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