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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뜰' - 이정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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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대숲바람 작성일06-10-28 09:48 조회10,8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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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대학교 예술학부에 재직중인 중진 서양화가 이정주 교수의 열한번째 개인전이 11월 2일부터 8일까지 광주 신세계갤러리, 11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단성갤러리에서 열린다. '세월의 뜰'이라는 이름의 이번 전시에는 주로 압화기법과 자유로운 붓질이 어우러진 꽃 주제 그림들이 선보여진다. 이번 전시의 리플렛에 실린 서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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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표정으로서 꽃


    조  인  호 (미술사,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꽃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다. 꽃과 같이 밝고 화사하며 풍성한 삶이고 싶고, 화려하거나 고상하고 순수한 그 모습을 닮고 싶어 하며, 독특하고 그윽한 색채와 향기처럼 자신만의 분위기를 지니고 싶어 한다. 꽃은 시각 후각을 통해 마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자극제이며, 꽃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와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꽃은 예나 지금이나 화가들이 즐겨 다루는 소재이다. 시대양식과 문화환경, 개성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수도 있지만 화가의 독특한 미감과 감성으로 새로운 표정과 색채를 부여받으면서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런 꽃은 본래보다 훨씬 강렬하거나 화려하기도 하고, 상징적 알레고리를 갖거나 비유를 내포하기도 한다.

    이정주 교수의 꽃 그림들은 작가 자신의 생활 속 자화상처럼 보인다. 작업실에서, 자연 속에서, 교단과 인간사에서 무수히 마주치고 스치는 일상적인 감정과 분위기들을 꽃을 빌어 화폭에 펼쳐내곤 한다. 꽃의 형태와 색채를 묘사하기보다 그 때 그 때의 마음 속 이야기와 감정 흐름에 충실하고자 한다.

    이정주 교수가 꽃을 다루는 방식은 다소 특이하다. 대개는 자연 본래의 화려하고 순수한 이미지나 색채에 매료되어 꽃 그대로를 사진이나 그림으로 간직하고 싶어 한다. 이 교수 역시 흐드러지게 풍성한 꽃무리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물감이나 오브제처럼 그림의 재료로 꽃을 이용하는 경우들이 많다. 실제로 틈틈이 꽃을 채집하고 적당히 말리고 보관하여 그림그릴 재료들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꽃들은 들녘과 산자락, 돌담 아래, 또는 사시사철 풍경이 되어 넘쳐날 듯한 붓질들과 함께 화폭에 자리 잡는다. 거침없이 큰 획들을 휘둘러 겹치거나, 물감을 뿌리고, 두터운 마티에르로 화면을 채워가면서 구상하는 분위기에 따라 크기나 모양이나 색채가 어울리는 꽃 재료들을 캔버스에 곁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꽃들은 대부분 얇은 한지로 덮이고, 부분적으로 채색되거나 거친 붓질들에 묻히기도 한다.

    일종의 ‘압화’기법인데, 그렇다고 꽃의 형태와 색채를 온전히 살려 장식소재로 이용하는 일반적 꽃누름(압화)과는 다른 방식이다. 꽃을 이용하되 그 세부적인 모양이나 본래의 색 그대로를 유지하는데 얽매이기보다는 꽃마다의 고유한 형태를 살리되 화면구성에 따라 배치나 드러내는 정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본래 한지에 가려져 은근히 드러나는 꽃의 형태는 전통 한지 창에 국화꽃이나 대잎을 넣어 장식하던 옛 생활문화에서 발상을 얻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전통문화와의 연결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교수의 작품에서는 메시지나 주제의식의 내포 같은 개념적 작위성보다는 화면을 이루는 조형적 요소와 질료적 특성에 더 강한 비중을 둔다. 꽃이라는 질료적 성격 그 자체에 한지나 돌가루, 물감, 바니쉬와 같은 재료로서의 의미를 두는 셈이다. 설령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꽃잎의 형태가 다소 뭉그러지고 본래의 색이 퇴색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것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이지 그 자체로서 작품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징이나 이미지 이전에 ‘살결 같은 캔버스 표면’을 이루는 각각의 소재들, 중첩과 덧씌우기 등을 통해 형성되는 거칠고 두툼한 마티에르, 즉흥성과 속도감을 보여주는 회화적 행위의 흔적들을 자유롭게 펼쳐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겠다. 한때 풍경이나 꽃을 묘사하는 작업들을 계속하기도 했고, 그와는 전혀 달리 한지만으로 추상적인 화면작업을 시도하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지나 말린 꽃을 사용치 않고 기존의 회화적 표현형식과 재료로 흐드러지듯 넘쳐날 듯 그려낸 꽃그림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작업의 대부분은 묘사보다는 자연 본래의 생명력과 작가의 주관적 감정상태에 따른 분위기의 설정, 질료적 풍성함을 드러내는데 훨씬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분히 추상표현주의 요소가 강한 이 같은 작업의 근간은 “물질에 행위를 가함으로써 정신성을 나타내는 현상학적 미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다. 말하자면 “물질과 정신이 만난 회화공간”을 창출해가는 것이다.

    작업에 대한 열정은 연륜이 쌓여갈수록 더해가지만 삶과 예술 사이의 균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꽃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그랬듯이 평소 생활 속에서 구하기 쉬운 소재를 찾고, “목숨 걸고 그림그리기보다는 삶 속에서 완전학습을 꾀하며, 넓은 작업실보다는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는 공간에서 언제든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꽃이라는 게 워낙에 흔한 소재이고, 그렇게 일반적인 화재인 만큼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세계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스스로의 과제이다.    

    수없이 마주하는 꽃이고 꽃그림이지만 각각의 작업마다 꽃의 표정을 읽어내면서 현장 분위기와 내적 감흥을 충실히 드러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실 삶 속에서 걸림 없이, 작업에 대한 욕구를 최대한 펼쳐내고 싶고, 그런 흔적들을 2년 주기의 개인전을 통해 발표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벌써 열한번째 개인전을 맞게 되었다. 일관되게 이어가는 꽃그림 연작이지만 이번 발표작들을 통해 삶 속에서 채워낸 중진화가의 화력과 삶의 표정들을 깊이 있게 만나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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