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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역사의 표상으로서 옷의 형상성-박상권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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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6-04-13 14:27 조회10,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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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가 박상권의 첫 개인전이 4월 12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예술의거리 무등갤러리에서 열린다. 속을 비워낸 한복을 석조로 주로 다루는 박상권의 개인전은 광주전에 이어 서울 큐브갤러리에서 7월 5일부터 11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 카달로그에 붙여진 서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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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역사의 표상으로서 옷의 형상성


    옷은 사람의 사회적 외피이다. 기본적으로는 자연상태의 알몸을 가리거나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수단이지만 그 필요성 자체가 사회적 의미와 문화를 이루게 된다. 개인에게 옷은 날개가 되기도 하고,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한다. 서로간의 관계와 체제로 사회적 삶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다중의 집단 속에서 옷은 여러 문화유형으로 다양해지면서 단지 피복이라는 일차적 기능 외에 개인과 사회의 표정으로 읽혀지게 된다.

    또한, 옷은 사회적 삶의 흔적이다. 누구에게 또는 어떤 무리들에게, 어느 시대에, 어떤 신분의 표식으로 입혀졌는가에 따라 옷 한 벌은 꽤 많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한 벌의 옷은 그 옷을 대하는 관계와 이유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의 체취와 존재를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그가 살고 있거나 살았던 시대와 역사를 풀어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사실 도시의 일상에서도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의 인생살이와 현재 삶을 짐작케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박상권이 벌써 수 년째 다루고 있는 연작 소재가 ‘옷’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정통 조각작품으로서 ‘구체적 형상성’보다는 옷에 담긴 사회적 의미들을 ‘관념적 형상성’으로 풀어내는데 있다. 표현방법 또한 “사물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방법적 요건으로서 미완결된 형식을 취하며, 극도의 단순화된 형태 속에 최대한의 의미를 담고자 한다”. ‘장구한 시간의 퇴적이자 응고물인 바위’를 깎고 털어내 옷의 형태를 새겨 내지만 그 둔탁한 옷의 형체들에는 특별히 조형적 꾸밈이나 설명적인 요소가 올려져 있지는 않다.

    옷의 주체들은 사라진 채 텅 빈 껍데기로 서 있거나, 웅크리거나,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린 형상들인 박상권의 돌로 빚어진 옷들은 그 자체가 어떤 개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옷들은 그가 담아내고자 하는 절제되고 함축된 ‘관념적 조형성’으로서 소통언어들이다. 물론, 기본 형태는 한복 저고리나 두루마기 모습들이고, 그 속에 내재된 정신이나 혼을 드러내고 싶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박상권이 전통적 조각이나 한국적인 것을 조형화시켜내는데 지나치게 얽매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의 둔중한 옷의 형상들은 하나같이 무수한 파편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유년시절 기억이나 문화적 체험, 고단한 어머니의 삶, 아니면 굴곡진 한국 역사에 대한 잠재의식들이 크고 작은 파편들로 조각나고 다시 일정한 한복의 형상으로 공들여 접합되기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옷이라는 소재는 인간의 삶과 역사를 대변하는 사회적 표상이고, 그 무수히 갈라진 틈새들은 그 삶과 역사를 이루는 무수히 얽힌 결들이며, 동시에 외부 환경과 내면 사이에 끊임없이 연결되는 영향관계의 통로들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실루엣처럼 단순화된 그의 ‘옷’들은 세월의 앙금과 풍상들로 응결된 거친 겉면들과 달리 오히려 안쪽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 수없이 외적인 것들과 부딪히고 부대껴야만 하는 인간 삶이 고달프고 그 고통이 클수록 더 내적으로 삭혀질 수밖에 없는 삶의 실체에 대한 작가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어쩌면 옷이라는 형태를 가진 물리적 덩어리를 새겨내면서도 그 속은 비우고, 더구나 거친 외형과 달리 안쪽은 곱게 다듬어내는 작업 방식은 그가 말하는 물질과 정신, 채움과 비움, 밖과 안을 달리 보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박상권은 전통문화의 토양이 유독 인간 생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진도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화가를 꿈꾸었던 그는 조각을 전공하던 수업기에 여러 차례 퍼포머로서 굿판을 벌리기도 했는데, 그 퍼포먼스 대부분 역시 인간 삶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와 환경 문제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작가의 내면을 군중 속에 외화된 몸짓으로 펼쳐내던 그 퍼포먼스들과, 이후 공공성이 우선되는 조형물들을 작업하면서도 정작 그의 예술적 창작세계는 최대한 절제된 ‘관념적 형상성’을 추구하고 있다. 언어의 군더더기가 많을수록 오히려 본질의 소통에 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역사-한국인’을 주제로 한 박상권의 이번 첫 발표전은 “한복의 선을 빌어 한국인의 정신성과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던” 몇 년간의 작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는 자리이다. 소통수단으로서 조형언어의 보편성은 갖추되 모색기의 숙고와 천착 과정들에 한 매듭을 지어 조형적 독자성을 세워나가고자 하는 의지의 실행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문화적 뿌리로서 자기 정체성과 ‘국제적 현대감각으로 통하는 미의 원칙’ 사이의 모색과 혼돈에서 창작세계의 갈피를 잡고, 그가 펼쳐내고자 하는 조형언어로서 형상화 작업에 새 장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조 인 호 (미술사가)
    [200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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