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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토양에 일궈가는 그림농사- 박동신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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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광주미연 작성일05-04-15 14:14 조회10,6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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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5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20여년 화업에 전념해 온 박동신의 여덟번째 개인전이 2005년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경인미술관 전관에서, 4월 21일부터 27일까지는 광주 남도예술회관 1층에서 이어진다. 작가 스스로 거듭나는 계기를 필요로 하면서 90년대 이후 그동안의 작업들을 정리해 보는 기회로 삼고 화집발간과 함께 규모있게 마련한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 붙여진 평문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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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토양 위에 일궈가는 그림농사

    조인호(미술사)


    번뜩이는 재치와 색다른 감각, 풍부한 감성, 엉뚱한 상상력과 대담성, 거기에다 기이한 행동까지… 이른 바 천재형 예술가의 전형이라 일컬어지는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일탈(逸脫)의 충동과 욕구를 삭혀가며 흔들림 없는 집념과 끈기, 순발력보다는 오랜 고심과 노작으로 자기세계를 차곡차곡 그리고 진득하게 쌓아 가는 작가들도 많다. 비록 그림 그리기가 세상 속에서는 생업일지라도 예술은 참된 미적 가치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라 여기며 그것이 돈오(頓悟)이든 점수(漸修)이든 천성을 따라 자기방식의 구법정진을 계속하는 것이다.

    박동신은 타고난 감각적인 재치나 거창한 예술철학 따위는 없지만 그저 묵묵히 그림 그리는 일에 전념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25년여 세월동안 그는 별다른 진폭 없이 정물과 풍경을 주된 소재 삼아 그림 그리기는 업에 열중해 왔다. 물론 그 역시도 작가로서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찾기 위해 캔버스에 한지를 배접하거나 젯소로 바닥처리를 한 뒤 유화나 수채화작업 같은 재료와 기법의 시도도 해보고, 인물의 배경을 넓은 여백으로 단순 처리하거나 큰 붓질의 기하학적 도형들로 채워 화면구성의 묘를 달리해 보기도 하였다.

    그의 작업은 보여지는 대상 소재들을 특별한 주관적 해석이나 조형적 변형 없이 회화적 묘사에 충실하는 낯익은 구상회화들이다. 그가 즐겨 다루는 소재들은 풍경, 정물, 꽃, 인물로 크게 나뉘는데, 특히 정물작업은 초기부터 그가 그만의 회화세계를 열어 가는 방편으로 삼아왔던 소재이다. 대개는 마른 화초나 기물, 생활소품과 인형들이 사분할 또는 삼분할한 여백 많은 화면의 수평 테이블 위에 놓여지는 구도인데 초기에는 주 정물은 물론 천의 무늬와 배경까지 얇게 파들어 가던 것이 근래에는 정물 이외 부분은 활달한 붓질들로 두툼하게 덧쌓으며 넓게 열어주는 묘사로 바뀌어져 있다.

    이들 생명 없는 묵은 정물들과 안정감 위주의 화면구도 작업과 달리 꽃 그림들은또 다른 화재가 되고 있다. 맨드라미, 호박꽃, 나팔꽃, 초롱꽃 같은 시골마을에서 친근하게 만나는 삶의 주변 꽃들인데 이 가운데 특히 맨드라미는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소재다. 꽃말처럼 그 '불타는 사랑'을 좋아한다는 그는 현실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가슴속 뜨거운 열정을 맨드라미를 통해 피워내는 셈이다. 몇 년 동안 그의 화실을 드나들었던 한 지인은 '박동신의 회화에서 풍경은 그 단단함과 초록의 싱싱함으로 화가로서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꽃의 붉음은 작가의 내적 욕망의 표출로 보여진다'고 평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맨드라미 그림들은 다른 꽃 그림과 달리 한 여름에 붉게 피어오르는 그 굵고 화려한 꽃을 위주로 배경을 생략하면서 힘있는 터치로 생명의 약동을 강조하곤 한다. 물론 그의 바램과 현실의 불일치에 따른 간절함이 묻어나는 게 꽃 그림들이기도 한데, 그 맨드라미의 지존과 열정과 달리 다른 꽃 그림들은 자기존재를 애써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꽃들과 넝쿨과 잎새들과 함께 얼키설키 한 세상 어우러지게 구성되곤 한다.

    또 하나, 그의 작업에서 큰 축을 이루는 것이 풍경화이고 이 가운데 고향의 월출산의 장엄한 사시사철 풍광이 연작으로 제작된다. 오지랖을 널찍이 뻗은 기암준봉의 산자락 아래로 부드러운 토산들이 받쳐지고 그 품에 안기듯 마을과 전답들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화 구성이다. 계절과 각도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월출산을 벌써 한 5년여 째 그려오고 있지만 초기작에 비하면 불꽃처럼 뻗어 오르는 준봉들과 두툼하게 삶의 터전을 보듬는 토산들의 장중함과 평온감, 색채와 필치들 속에 화면의 생기가 훨씬 더 해지고 있다.

    박동신은 유럽여행길에 접한 에곤 쉴레(Egon Schiele) 작품에서 작가 내면의 표현과 사람살이 이야기가 짙게 배어나는 회화세계와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기품 있는 장식적 화면처리를 인상깊어 한다. 물론 그의 인물화들은 쉴레의 표현주의나 클림트의 몽환적 분위기에 비하면 너무나도 정직한 전통화법이긴 하지만 그런 진한 감동과 조형적 재해석을 그 또한 바라고 있음일 것이다. 사실 풍경이나 정물에 비하면 인물을 맘껏 그려보기는 쉽지 않은 탓도 있지만 인물화에서 특별히 그만의 독자적 회화세계를 모색하기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는 '가진 거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동안 그려온 그림들이 있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고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힘든 농사일을 계속하는 노부와 주변 도움을 주는 지인들에게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보답하는 도리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뿌리내리고 삶을 키워 온 땅에서 자연순리대로 해갈이 묵은 농사를 짓던 많은 이들이 그 땅을 새로 다듬어 새 농법을 개발하거나 특수작목으로 옮겨가듯, 그도 이제 그림농사의 판을 바꾸는 새로운 의지를 다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겉을 반듯이 하는 일시적 묘법이 아닌 벌써 중견이 된 그의 회화세계를 오래도록 튼실하게 양분을 채워내는 토양으로서 바탕을 새롭게 다지는 일이다.

    그는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그림도 바뀔 것'이라며 자기갱신의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물론 한 작가의 수십년 묵은 미의식이나 천성이 의지나 의식의 개조로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면 그의 자산이라 할 그림에 대한 집념이 그 동안의 것에 대한 집착의 굴레로 굳어지지 않도록 그만의 색깔을 틔워내는데 훨씬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연륜을 따라 무뎌진 붓끝이 둔중하지만 진득한 회화적 깊이를 쌓아내면서도 그 위에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다져내는 일이 업 이상의 작품활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새롭게 날을 세울 때인 것 같다.

    [200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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