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되는 것들에 대해 ; 양나희의 작품 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0-01-24 17:00 조회2,30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양나희 <담양산수>, 2019, 골판지 설치 소외되는 것들에 대해 ; 양나희의 작품 세계 운전할 때 유독 마음이 불편한 행인들이 있다.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지나가는 어르신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의 몸체보다 배는 커 보이는 폐지 더미를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에서 종종 지금의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분들이 평생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순 없지만, 잔뜩 웅크린 그 굽은 등을 마주할 때면 가슴 한편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주행 소음 하나 허투루 낼 수 없을 정도의 연민이 울컥 올라오다가도, 순간의 감정이란 게 다분히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연민이라는 것을 알기에 불편한 마음을 애써 접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차창 밖의 도시풍경은 오롯이 ‘오늘’의 삶이다. 쉬이 지나치거나 흘러가버리는 오늘이기에, 무엇이 소외되고 무엇이 잊히는지를 보통의 시선에서는 체감하기 힘들다. 종이부조 회화로 익숙한 양나희의 작업은 재개발 구역의 어느 골목길에 시선이 머물면서 시작되었다. 일종의 감정이입과 같은 체화된 시선에서 말이다. 소비사회의 뒷모습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양나희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화가를 꿈꾸었기에 현실적인 모든 것이 순탄치 않았다. 무명이라면 무명이라고 할 수 있는 7년 여 간의 방황 끝에 작가가 목도한 것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이었다. 구도심에서 마주친 폐지 줍는 노인, 그리고 리어카에 그득하게 실린 폐지더미가 상기시켜준 소비사회의 일그러진 이면은 창작자에게 작업적 모티브를 부여했다. “포장이나 운송에 쓰이는 골판지가 내 작업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것들이 쉽게 쓰다 버리는 풍요로운 시대의 편린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쓸모를 다해 버려진 폐지에서 희망을 저버린 채 살아가는 자신을, 버려진 폐지를 고이 주어 담는 연로한 노인에게선 우리사회의 단면을 투영했다. 그 누군가에게는 사용가치가 없어져 마구잡이로 버려진 폐기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자산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 이 우연한 자극에 의해 양나희의 초기 인물작업은 삶의 풍경으로 그 표현 범위가 이행된다. 최소 생존의 수단으로 전락한 폐지는 우리네 사람살이의 터전으로 재구성되어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하나하나 잘라낸 골판지 조각을 캔버스 위에 이어 붙이고, 유화물감으로 채색하는 공정을 통해 실재하는 풍경들을 구축한다. 우리가 길을 거닐며 보았을 법한 동네 풍경은 부조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우리의 밤하늘, 우리의 언덕, 우리의 산하와 마을, 그리고 우리의 별빛은 그렇게 빼곡히 들어찼다. 양나희의 초기 골판지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색채와 물성이다. 작가 본인의 표현대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드는 그림’에 가까운 종이부조 작업은 회화와 입체의 경계에 서며, 회화적 색채와 입체적 물질감을 동시에 드러낸다. 2013-14년에 걸쳐 완성한 300호 대작 <삶, 풍경>은 물성 자체에 더욱 집중한 결과물이다. 광주 동구의 재개발 이전의 풍경을 담은 본 대작은 채색하지 않은 폐지 본연의 물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으로, 작가는 사라져가는 삶의 복원과 기록의 의미에 천착했다. 재료의 건조함과 시선의 따스함이 교차하는 이 독특한 화폭은 양나희의 작업적 특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버려진 종이박스는 사라져가는 삶터를 담아내기에 그 무엇보다 적절한 소재이자, 재료 자체로서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여전히 따뜻한 서사 양나희는 2015~16년 북경과 상해에서의 레지던시를 기점으로 기존의 작업 방식에 변화를 준다.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회화성, 그리고 평면성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캔버스 위에 골판지가 아닌 골판지 위에 골판지를 이어 붙이는 형태로 형식적 변화를 주는가 하면, 폐지를 설치미술 형태로 치환하여 작업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2018년 개인전 <쉽게 그려진 그림>은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이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서 착안한 본 전시에서 작가는 옛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작업적 성찰을 단행한다. 보길도 여행을 경험하며 그린 <고산(孤山)의 성>과 같은 작품에는 실재하는 공간과 가상의 풍경이 혼재하는가 하면, 밤과 새벽, 아침 풍경이 공존하는 작품 <해동네>에는 특유의 포근한 서정이 물씬 배어나온다. 전시명과 동일한 <쉽게 그려진 작품>은 20여 점의 풍경 사진을 기본 베이스로 작업한 실험작으로, 풍경 안에 위치한 사진 속 작가는 하나 같이 네모 프레임의 액자를 들고 있다. 액자의 안과 밖을 통해 드러나는 이미지는 일종의 사고의 상대성을 상징한다. 실재와 허상, 혹은 아름다움과 추함,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예술의 절대적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선보인 설치미술 형식의 작품들은 기존의 작품성향과 비교해볼 때 파격에 가깝다. 폐가의 빈방에 가득 깔린 폐지더미는 물성 자체로써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프레임 안에서 때로는 낡은 수도꼭지 아래서 쏟아져 나오는 폐지조각들은 장소 특정적인 형태를 띠며 작품 감상의 유연성을 담보한다. 부연 설명을 걷어냈지만 소재가 함축한 서사를 더욱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이러한 시도는 외려 작업의 주제를 부각시킨다. 쓸모를 다하고 오래되었기에 그 사회적 수명을 다함은 비단 종이 상자에만 국한하진 않을 테다. 성과주의 중심의 사회에선 사람 또한 쓰다 버릴 부속품과 같은 존재가 된다.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 번아웃 증후군도 어찌 보면 인간의 존엄이 거세되었기에 야기된 정서적 기형 현상이 아닐까 싶다. 양나희는 계속 가치 있는 서사를 추구하려 한다. 화폭 안에서 여전히 사람다움을 이야기하고, 사라지지 않는 삶의 풍경을 구축하고자 한다. “골판지로 이루는 따뜻한 세상”. 작가의 포트폴리오 마지막장에 새겨진 이 문구가 새삼 마음을 다독여준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양나희 <눈내린 월산>, 2018, 골판지에 유채, 112.1x162.2cm 양나희 <쉽게 그려진 그림> 연작, 20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