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주 섬유조형전 ‘#직․물․구․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0-03-06 11:15 조회2,268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한선주 <Bruny Island>, 2018 한선주 섬유조형전 ‘#직․물․구․조’ 2020. 03. 20 ~ 04. 28, 광주롯데갤러리 ‘한 오라기의 삶을 엮어’ 섬유예술가 한선주의 작업은 오롯이 그의 삶에서 유래했다. 예술의 형식적 실험과 현실 참여적 미술이 양립하기 시작한 80년대 초, 한선주는 베틀이라는 목재기구에 매료되었다. 씨실과 날실이 서로 어울려 조화로운 구조물을 탄생시키는 직조(織造)의 미감처럼, 작가는 매 순간의 생의 단편들을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때로는 상징과 은유로써 묵묵히 엮어냈다. 직조의 성찬 한선주는 80년대 초반부터 근 40년 가까이 섬유예술가로 활동해왔다. 조선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출판사 생활과 석사과정을 밟던 작가는 82년에 돌연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시기 직후의 그의 초기 작업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1984년도에 공간 사옥에서 선보인 <오후 여섯시>이다. 태양 빛을 머금은 채 펄럭이는 돛을 추상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유학시기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해질녘 항구에서 석양과 함께 물들어가는 황금빛 돛은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를 불러일으켰으며, 더불어 타국생활의 낯섦과 고충을 위로해주었다. 천장에 매달린 형태의 이 열 여섯 개의 직조물은 회화적인 형태와 텍스처, 색상이 고루 조화를 이루었으며, 작가는 조명의 강약과 벽면의 그림자까지 표현 영역으로 끌어들여 작품 감상의 폭을 넓혔다. 작품 발표 당시의 국내 섬유예술은 이제 막 부흥기를 준비하는 시점이었기에, 파격적인 구성의 이 설치 작품은 당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선주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그 흐름을 관통하는 주제와 주제성은 자연 그리고 동양적인 사유방식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작가는 자연의 다채로운 미감과 감성들을 작품에 반영했다. 그는 자연을 표피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고, 자연 앞에 선 인간과 종교적 숭고함, 근원성 따위의 정신적인 부면을 실험적 재료와 조형구조로써 제시했다. 초기작업부터 10여 년간 지속된 바람 시리즈에는 염색한 종이실과 같은 부드러운 질감의 재료가 등장한다. 이후의 작업에도 종이실 혹은 한지와 같이 자연의 색과 성질을 닮은 재료가 자주 쓰이며, 깃털과 부목(浮木), 대나무, 동선, 철재, 커피필터, 기성 오브제를 활용해 아상블라주(Assemblage, 집합 ․ 집적) 형태의 독특한 섬유작업들을 선보인다. 이는 작업적 외연의 확장으로, 한선주는 섬유미술의 평면성과 공예적 특질에서 벗어나 작품 속에 삼차원의 공간성을 구축하고자 했다. 형태와 텍스처, 색상 등의 직물의 기본 요소에서 더 나아가 공간성을 표현요소로 적극 끌어들여, 일종의 연성조각(soft sculpture) 형식의 작품세계를 형성해갔다. 91년 작품 <Weaving the wind>에서 보이는 형식적 실험은 개념미술의 그것과 유사하다. 바라나시의 평원에서 마주한 바람이 모티브가 된 본 작품은 144장의 개별 직조물이 한 데 응축된 대규모의 설치작품이다. 벽면에는 우리의 보자기와 연, 딱지의 형태에서 착안한 직조작업을 설치하여 자연 안에서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인연에 관한 작가적 서정을 드러냈다. 90년대 중반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다시 광주에 내려온 한선주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단행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컨테이너 96」에 선보인 <바람과 영혼을 부르는 손길>은 한지로 도배한 컨테이너 안에 동선과 모시실로 직조한 망을 매단 작품이다.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부지깽이와 같은 나무 오브제로 솟대 형상을 만들어 한국적인 토테미즘을 서술했다. 이러한 한국적인 조형성에 대한 고민은 밥그릇, 다완, 또는 둥지 모양의 한지 볼(bowl)작업에도 투영되었는데, 자연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따스한 정서를 오목한 그릇 형태로 치환하여 자연광이 어우러지는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호주 타스마니아에서의 교환교수시기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사소하지만 가치 있는 흔적 수직과 수평의 움직임만으로 구축되는 직조작업은 본시 기법과 소재 부분에서 표현범위가 한정돼 있다. 그러나 시와 같은 절제된 형식이 내면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처럼, 직조작업 또한 외려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감성들을 파생시킨다. 직물의 감촉을 비롯해 자연만물의 텍스처에 집중해온 한선주는 직조형태가 담아내는 다채로운 물성에 천착한다. “일상 주변에 있는 것에 지속적인 관심을 둡니다. 개인적인 성향은 채집이 맞아요.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를 그대로 작품에 반영합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재료와 대화’하는 이 과정으로 인해 작업실 곳곳에는 도토리를 비롯한 온갖 열매와 씨앗, 솔방울, 그리고 마른 나뭇가지와 꽃잎, 풀잎들이 즐비하다. 90년대 후반 처음 선보인 커피필터 작업 또한 재료확장의 일환이다. 2미터 가량의 대형 철재 구조물에 건조와 염색 과정을 거친 커피필터를 깃털처럼 쌓아올린 <공룡새>는 당시 「한국종이조형전」에 선보여 큰 반향을 야기했다. 생활이라는 우연의 효과에 의해 물들여진 커피필터는 그 자체로 일상의 흔적이다. 2015년에 발표한 <채집과 변형>시리즈에는 10년 동안 모아온 커피필터를 비롯해 자연에서 길어 올린 나무열매, 씨앗 등이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 광주로 내려온 시점부터 16년간 담양에서 터전을 잡은 작가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생활 가까이에서 체감했다. 자연이 선사하는 풍성한 재료들을 제목 그대로 채집과 변형의 형태로 작품화 하였으며, 커피필터와 한지, 직물과 색실을 이용해 일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축했다. 이러한 아기자기한 형식으로의 변화는 그가 개인적으로 겪은 큰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무리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시선은 좀 더 삶의 지근거리로 옮겨졌고,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삶의 흔적들을 작품 안에 촘촘히 나열하게 되었다. 정년을 앞둔 시점, 광주에서 27년 만에 개인전을 준비 중인 한선주는 다시 직조의 정통성과 실험성을 제기한다. 열여섯 번째 작품전인 이번 전시의 주제는 <# 직 ․ 물 ․ 구 ․ 조>이다. 직조의 순수성과 다양성을 두루 다루게 될 본 전시에서는 평면형식의 고전적인 직조와 자연재료로 직조한 직물작업, 그리고 커피필터를 비롯한 채집과 변형 시리즈, 검은색과 분홍색 실을 이용한 상반된 이미지의 설치작업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시간이 맞물리는 금번 자리는 작가 스스로에게 새로운 시작을 점검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직조는 문명이 시작된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의 삶에 자리했다. 자연 앞에서는 높고 낮음과 경계가 없이 그 안에서 모두 하나의 존재가 되어 간다. 직물작업이 상징하는 것도 넓게 보면 나와 너, 나와 시간, 나와 공간 등의 관계의 기억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한선주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한 올 한 올의 날실과 씨실이 어우러지며 형성되는 수평, 혹은 공존의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 고영재 (광주롯데갤러리 큐레이터, ≪전라도닷컴≫ <문화야 놀자> ‘고영재의 작가탐험’ 2020년 3월호 연재) 한선주 <eastㆍwest>, 2008 한선주 <존재의 이유>, 2018 한선주 <어릴적 보물들>(부분), 2018 한선주 <Empty action>, 201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