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상처 위에 돋아난 영혼의 들꽃들' 김근태 초대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05-15 17:03 조회1,68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5월 14일 개최된 5.18_40주년 기념 김근태 초대전 개막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5관) 오월 상처 위에 돋아난 영혼의 들꽃들 5·18 40주년 김근태 초대전 / 2020.05.13-07.30 (연장전시), ACC창조원 복합5관 오월의 일그러진 초상 분노와 정의감에 찾아 들어간 80년 절대시국의 한 복판, 생사가 뒤엉킨 충격적인 참상들의 목격, 최후의 새벽을 앞두고 조여 오는 극한의 긴장과 두려움, 그 터질 듯한 공포로부터 본능적인 탈출, 그날 이후 천형처럼 깊이 패어버린 트라우마. 오월은 현장에서 무참히 스러진 수많은 희생들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이들에게 지독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남겨놓았다. “5월 26일 저녁7시, 그날부터 나는 죄인… 밤마다 불나비가 되어 떠도는 영혼이었다.” 옭죄어 오는 고통을 털어보려 알코올로 자신을 마비시키고,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자기부정과 일탈 때문에 교단에서 퇴직하게 되고, 계속된 극단적 시도와 처절한 몸부림 속 내면의 상처... 오월로부터 살아남은 화가 김근태의 젊은 날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세상 뒤 소외된 영혼들과의 만남 응어리진 상처와 자폐감에 방황하던 그는 인생출구를 찾아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타국의 낯선 시공간에 몸을 숨기고 인물화에 집중해서 새롭게 화업을 다지고자 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1년여의 짧은 유학을 접고 돌아와야 했다. 귀국한 뒤 세상의 그늘진 곳, 소외된 이들을 찾아 목포 역전과 고아원 등지에서 인물작업을 주로 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고하도 공생원에 집단수용된 지적·지체장애아들을 접하고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뒤틀린 자세들로 군집해 있는 그들 모습은 오월기억 속 주검들과 다를 바 없었고, 내적 고통으로 헝클어진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 여겨졌다. 김근태 회화는 한때 80년대 민중민족미술운동의 일반적 저항형식을 취했었다. 대 사회적 분노와 저항의식을 터뜨리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공생원의 운명적인 만남 이후 몸뚱이는 비록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험한 고통 그 자체지만 영혼만은 참으로 맑고 순수한 그들을 한 생의 주체로서 그려내자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들꽃처럼 별들처럼 김근태의 ‘들꽃처럼 별들처럼’ 주제연작은 거친 필촉과 강한 색조로 표현주의적 요소가 강하다. 더불어 그들 영혼과 교감하는 이입통로로서 초현실적인 구성이 자주 나타난다. 거칠게 분할되어 덧쌓이는 붓질들에서 점차 색면 처리가 넓어지고 색조도 점차 밝은 색채들로 변화되어 간다. 특히 2013년부터 3년 동안 이루어낸 100m 대작은 김근태 작업의 전체 흐름에서 새로운 의지를 결집시킨 야심작이면서 그에 따른 변화의 징후들을 보여준다. ‘봄의 경계-여름의 아픔-가을의 길-겨울의 꿈’ 4부로 구성된 이 대작은 비발디의 ‘사계’를 모티브로 100호 캔버스 77폭을 이어 붙여내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주조색과 각 색채들 간의 조응, 윤곽과 형체묘사가 또렷한 인물과 자연배경 요소들, 마음을 비춰내는 얼굴표정의 심리묘사와 주변의 상황설정, 하늘과 바다와 대지가 공존하는 경계 너머의 시공간, 관념적 3차원 착시화법을 탈피한 무한의 평면감, 두터운 마티에르와 덧쌓은 필촉들로 초기의 불안정한 화폭들과 비교된다. 비정형으로 녹여낸 상처, 그리고 무아의 순수영혼 그런 김근태의 회화작업은 점차 구체적 서술이 사라지고 상징과 암시가 더해지면서 형상이 점차 생략되더니 최근에는 아예 비정형의 추상화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외적 형상보다는 내면세계와 본질로 향하게 된 조형적 변화이면서 몇 년 전 양쪽 청력을 잃은 데다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시력이 점차 흐려지고 있어 불가피한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절망 대신 세상의 언어로는 한계가 있는 지적장애아들과의 소통에서 현상 너머 그들 영혼과 우주 존재들과의 영적 교감에 더 몰입하도록 인도하심이라 여기고 있다. 이 때문이지 최근 작품들은 대부분 비형상의 화폭들이다. 몇 번씩 덧칠해진 두터운 화면들은 어렴풋하게 남아 있던 육신의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암시와 상징의 부정형(不定形), 불특정(不特定) 작업으로 채워지고 있다. 오직 질료와 작업행위의 흔적들만이 남겨진 이들 화면은 온전치 못한 육신을 털어버린 지적장애아들의 영적 무아의 세계일 수도 있고, 5·18의 상처와 고통의 딱지들이 세월 속에 녹아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자폐아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라며 두텁게 겹쳐 바른 화폭들은 갈라지고 긁히고 깎이고 쓸어 훑어진 흔적들뿐이다. 트라우마 역사현장에서 씻김과 거듭나기 이제 5·18 40주년을 맞으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트라우마의 장소-옛 전남도청에 씻김과 용서를 청하는 작업들로 다시 찾아왔다.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자신뿐만 아니라 동시대 집단의 상처로 남았던 오월의 희생과 상처로부터 정신적 치유와 자유로의 승화를 바라는 제의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날의 트라우마를 치유시켜 준 100m 주제연작 ‘들꽃처럼 별들처럼“을 지나 이어지는 ‘별빛’에서 절정을 이룬다. 일그러지고 분절된 오월 시민군들의 주검이자 행불자들이면서, 또한 지적장애아들의 몸뚱이이기도 한 1,000여개의 토우들이 옛 도청 앞 분수대를 상징하는 원형의 단에 타고 오르듯 둘러져 있다. 그 위로 1,000여개 하얀 소지의 영혼들이 별무리를 지어 허공에 떠오른다. 조여 오는 진압군의 군화발소리, 헬기소음과 기총소사 소리, 오월 어머니들의 목소리들이 영상과 사운드 등이 블랙홀로 빨려들었다가 다시 새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로 분출된다. 오월 그날과 40년의 시공간을 잇는 이 공간은 그 자신과 오월 영령들, 순수 영혼들의 씻김과 천도, 거듭남의 성소가 되고 있다. 인권과 화합과 평화로 오월정신 녹여내기 이번 김근태의 ‘오월, 별이 된 들꽃’ 전시는 5·18의 상처와 지적장애아들을 결합시킨 또 다른 차원의 ‘오월전’이다. 80년 그때 그곳에서의 의기(義氣)와 좌절과 아픔을 넘어 한국은 물론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빛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불명확 상태에 있는 희생들을 추모하고 인류의 희망을 찾아가는 기억과 씻김과 치유, 천도와 승화의 장이다. 5·18 40년, 김근태의 40년으로 쌓여온 광주의 오월은 시대와 지역과 소통형식을 넓혀가며 또 다른 차원으로 계속 거듭나고 있다. 오월의 가슴으로, 김근태의 상처 깊은 가슴으로 세상 뒤 소외된 소수자들, 그들 영혼을 보듬고 씻기면서 보편적 인권가치와 화합과 평화로 ‘오월정신’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속뜻이 오버랩 된다. ※ 이번 전시에 맞춰 출판된 ≪김근태 예술세계≫(2020, pp110~119) 평문 요약,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