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사색의 창- 고명인의 회화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08-16 11:51 조회2,08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현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사색의 창 고명인 개인전 ‘프레임을 통하여 나를 보다’ 2020. 07.31-10.28 / 담양 대담미술관 “신비란 곧 생 안에 있고, 세계가 곧 신비다.” 전치화법(dépaysement)을 주로 한 착시효과 그림들로 실재와 상상을 중첩시켰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뜨(R.Magritte)의 말이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색이나 마음 속 독백을 낯익은 실재에서 살짝 비틀어 형상의 서사나 시적 회화로 담아내는 게 대체적인 초현실주의 경향이다. 일상 현실에서 숨겨진 신비를 찾아내는 마그리뜨의 회화처럼 초현실주의에는 무한한 상상의 자유와 시적 신비가 스며들어 있다. 화가의 직시와 성찰은 현상에만, 또는 몽환적 상상계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정신 이외의 세상 모든 것은 허무이며, 모든 물질적인 것은 허무와 환각이다.”고 달리(S.Dali)는 얘기했다. 하지만 현상적인 세상은 언제든 실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허무일 수도, 현실 너머 자유와 희망의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무한세계일 수도 있다. 고명인의 회화는 세상의 현상과 희망을 한 화폭에 중첩시켜내는 작업들이다. 치밀한 사실묘사를 착시효과로 활용하여 현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공허와 고독, 깊은 밤의 환상여행, 희비가 희미해진 지난날의 기억 또는 추억들, 들판의 들꽃무리와 바람결 등등을 사색의 단편들로 엮어내는 화폭이다. 자신의 내적 성찰과 사색이 주된 바탕이지만 이와 더불어 동시대 시류나 삶의 풍속에서 포착되는 욕망과 열정, 희망 찾기의 대변이 되기도 한다. 그가 작가노트에 남긴 “그 시대의 언어, 인식체계가 나를 빌려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다.”라는 미셸 푸코의 말도 그런 의미에서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로 갖는 이번 고명인 개인전의 주제는 ‘프레임을 통하여 나를 보다’이면서 ‘반짝이는 꿈들(Sparkling dreams)’을 전시제목으로 삼았다. 기존의 유화작품 형식과 함께 캔버스천 대신 거울을 붙인 작품들이 함께 선보여지고 있다. ‘프레임’은 캔버스작업이든 거울작품이든 이번 전시주제의 핵심이다. 그 ‘프레임’은 자기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의적 시야이기도 하고, 타인과 세상에 구획을 짓는 지극히 주관적인 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또한 꿈과 현실, 삶의 이편과 이면을 넘나드는 마음의 창이자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한 경계이기도 하다. <희열(euphoria)>은 소소한 일상 속 삶에 대한 경외와 또 다른 욕망의지를 담고 있다. 스스로를 말갛게 씻어낼 욕조와 샤워부스, 창너머로 펼쳐지는 아득한 수평선의 바다와 무한변주가 펼쳐지는 푸른 창공의 구름들, 두 세계 사이에 자리한 커튼과 타일벽체가 일러주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 그 프레임을 넘어서고 싶은 욕망과 희망의 하이힐, 자주빛 드레스와 꽃송이들이 중층적인 사색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기에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면, 격자무늬 요소들이 창 너머 구름과 무한대의 바다로 상징된 신기루일 수도 있는 욕망하는 세계의 증발성을 견고하게 다잡아주는 장치로 짜여져 있다. 같은 150호 변형 크기인 <욕망(Desire)>은 화면 가득 빨간 하이힐을 주소재로 삼고 화려한 찻상과 찻잔과 립스틱, 향수, 꽃송이, 입술 등등을 터지는 환희심으로 묘사해 놓았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상징부호처럼 차용되는 욕망의 응집체들이다. 고달픈 일상에서 꿈꾸는 고급문화, 상류사회, 정신과 육신의 풍요를 향한 내적 욕망의 독백이자 응원이고 연민이기도 하다. 아성처럼 닫힌 어두운 화면공간에 당초무늬장식과 동심원들의 반복으로 채워진 파란 사각면의 배치는 화면의 색면구성 효과와 함께 희망과 불확실한 세계를 내비치는 심리적 창으로도 보인다. <꿈은 본능의 저편에 있다>는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숨길 수 없는 인간욕망의 초상과 상상의 쾌감이 직설과 은유로 뒤섞여 있다. 젖은 머리에 관능적 관음대상인 누드 가슴으로 대체된 두 눈, 립스틱, 팔찌치장, 노을 지는 지평선 너머로 이어지는 무지개와 환락의 춤사위처럼 바람결에 나풀거리는 비단자락들, 거기에 문양처럼 담긴 색색의 입술들, 은빛 날개와 금빛 트로피가 받쳐진 빨간 하이힐, 인간본능과 자성의 수많은 눈 등등이 금빛 액자면까지 채우며 드러내어져 있다. 아울러 유화소품들은 대작에 담아지던 욕망과 희망의 상징물들을 각각의 소재들로 나누어 묘사한 것들이다. 리무진과 크루즈유람선 위로 나풀거리는 오색풍선들, 넓게 트인 황혼녘 고속도로 풍경, 창가의 꽃송이, 반짝이는 보석과 꽃잎들로 장식된 하이힐 등등을 정교한 묘사 또는 거친 필치들로 작은 화폭에 담아 놓았다. 한편으로,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거울화면 작업들이 흥미롭다. <월광>, <설광>, <Daylight> 등등인데, 오래되고 넓은 옛 가구판재로 짠 우묵한 프레임 안쪽에 화폭 대신 거울을 붙인 작품들이다. 프레임의 넓은 면에는 앙상한 겨울나무나 개망초 무리, 붉은 모란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거기에 알알이 크리스탈 구슬들이 박혀 화려함과 장식미를 더해준다. 정작 작품의 주 공간인 화폭자리에는 아무런 꾸밈이나 개입 없이 거울로 화면을 대신하고, 관람객은 작가가 그려서 보여주는 그림 대신 자기성찰과 반추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기존 정형을 깨트리는 그림이 그려진 위치나 실재 감상꺼리가 되는 화폭공간의 이미지에서 작가와 관객 사이 주‧객의 전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명인에게 ‘프레임’은 일차적으로 작품의 일부이자 장식요소이면서 또한 세상을 대하는 관념의 틀이고, 자신을 관찰하고 투영해 보는 창이기도 하다. 자기내면과 현실세계, 이성과 상상 사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색의 창을 통해 제약과 한계라는 사회적 억압의 의미가 아닌 관람객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욕망과 열정의 삶에 대해 위안과 보상을 보내는 화려한 크리스탈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그는 “현대 사회는 불확실하고 코로나와 같은 질병과 위해환경, 자연으로 부터의 괴리, 불안한 현실에 대한 외로움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밝은 그림과 희망적인 메시지 등으로 조금이라도 따뜻한 위로가 되는 그림이 되고 싶다. ‘sparkling dreams’의 크리스탈 구슬들이 희망의 아이콘, 꿈의 다이아몬드가 되는 날을 꿈꾼다.”고 말한다. 현실세계나 물질계로부터 초극하거나 도피하기보다는 욕망과 열정을 긍정의 에너지로 응원하는 것이다. 다만, 그 효과적인 실행을 위해 실재처럼 착시효과에 빠질만한 절묘한 표현묘법을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재현적 사실화법이 아니라면 실재와 상상세계를 결합시킨 주관적 도상변경과 화면 구성력으로 연상과 환상을 간접화법으로 깔아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낯익은 현상과 소재를 사실적으로 즐겨 다루는 만큼 또 다른 회화적 묘미나 발상, 또는 실상인 듯 상상인 듯 오묘한 회화적 표현력이 독자성을 더 키울 수 있다. 미술교사도 아닌 일반 교직이면서 시간을 쪼개어 작업하다 보니 창작에 몰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전업작가 못지않은 예술의지를 독자적인 회화세계로 펼쳐낼 수 있도록 꾸준한 정진을 응원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고명인 <EUPHORIA>, 2020, 캔버스에 혼합재, 202.7x172.5cm 고명인 <DESIRE>, 2020, 캔버스에 혼합재, 202.7x172.5cm 고명인 <꿈은 본능의 저편에 있다>, 2020, 캔버스에 혼합재, 158.5x122.3cm 고명인 고명인 <Like Tropica> <설광>, 2020, 고판재에 혼합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