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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GBst 미디어아트그룹 초대전 ‘빛의 혀를 가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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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0-10-29 11:17 조회1,9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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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GBst 미디어아트그룹 초대전.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제공

     

    RGBst 미디어아트그룹 초대전

    빛의 혀를 가진 그림자

    2020.10.09-2021.01.31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AI가 인간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대에 이제 세계는 이를 인식하는 인간만이 주체가 아니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던 자연은 역시 더 이상 객체가 아니다. 주어진 것들의 세계 속에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가 침입하여 현실과 혼합을 이루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쯤 되면 회화의 기원이었던 그림자의 세계가 아이러니하게도 근대에 들어 발달하기 시작한 시각적 광학기구가 카메라, 비디오, TV, 컴퓨터 등 빛과 관련된 테크닉으로 인해 혁명적으로 진화하는 동안 현실과 가상의 변곡점을 지나 엄청난 세계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이 빛의 반대편 프레임(동굴)에 가두었던 그림자의 세계는 마침내 그 빛을 자신의 언어로 삼아 디지털 창세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림자는 빛의 혀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 미디어 아트전시에는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아티스트 RGBst그룹 16명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작가들은 두 유형의 작품을 보여준다. 빔이나 모니터를 이용한 디지털 영상작품으로 가상세계를 표현한 그룹과 건축적 구조물, 조각, 여러 겹의 메쉬 천, LED 조명 등 실험적이고 물질적인 설치와 영상 작업을 함께 보여주는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한편으로 과거보다는 미래의 시간을, 디지털화한 건조한 도시와 환상적인 유토피아를, 이질적인 것들이 혼합된 언캐니한 현실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물질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개인의 기억과 과거의 역사 그리고 사회현실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임용현의 <Digital Galaxy>는 도시를 상하좌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전자적 형태로 보여준다. 그의 도시는 옵아트가 더욱 더 확장된 디지털 옵아트의 세계처럼 보인다. 워홀의 팝아트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상품들과 각종 미디어에서 비슷비슷하게 생산되는 스타들에 대한 강박관념-은 결국 죽음충동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옵아트에도 흡수되었다. 하지만 작가가 3D기법으로 구현해내고 있는 디지털 옵아트의 세계는 팝아트의 강박관념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분할되고 변형되어 움직이면서 퍼져나가고 있는 시각적 유토피아로 관객들을 몰입하도록 만든다.

    박세희의 사진은 공항의 대합실과 숲속의 자연, 밤과 낮의 풍경, 휴양지와 콘테이너 박스처럼 이질적인 공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은 각각의 역할이 서로 바뀌거나 혼재되면서 장소와 비장소, 혹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사이의 공간이 생겨난다. 이 사이의 풍경은 무척 생경하다. 우리는 평범하지만 낯설은 공간과 시간들이 작가의 디지털 작업으로 봉합의 흔적이 전혀 없이 보여주는 효과에서 기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현실 그대로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조합으로 혼합된 것이 바로 우리의 세계인 것이다. 작가의 눈으로 새롭게 보여주는 이러한 유목적 공간은 낯설면서도 낯익은, 언캐니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정기는 현실 속에서 자신과 친밀하게 지내는 가족이나 노동자들을 캐스트하여 유물화 시키는 작업에 천착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희귀한 유물>의 임신한 여자 형상은 자신의 아내가 첫 아이부터 셋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모습이 각각 캐스트된 것이다. 이 설치조각 위로아이를 안고 있는 실재 아내의 영상기록이 오버랩 된다. 그런데 작가의 아내가 임신한 사실의 기록이라는 지표가 있는 복사물(캐스트된 조각)을 바라보는 주체는 현재에 있지 않다. 주제가 암시하고 있듯이 현재의 이 사건을 희귀한 유물로 발견하게 되는 미래의 세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임신이 불가능한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전염병의 창궐과 재난의 연속으로 절망적인 지구라는 아포칼립스적인 시대일 수도 있고, 여성이 직접 임신을 하지 않고도 시험관에서 발생을 거쳐서 인간과 다른 형질을 가진 키메라가 태어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주체는 전염병과 재난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전자를 보유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정기의 <희귀한 유물>에서 결과적으로 캐스팅된 현재의 아내 모습은 현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과거부터 미래까지 합성된 시간 속에서 미래의 주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닌 판타지한 몸으로 변화되었다.

    정정주의 <Facade 2019>는 벽, , 문과 같은 건축적 요소들이 단순화되어 15cm 정도의 깊이를 가진 자그마한 박스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박스들은 연결되어 길이가 3미터가 넘게 지속된다. 이로 인해 관람객들은 각각 다른 비율로 분리된 공간들과 아크릴, 금속구조물, 거울 그리고 LED 빛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요소들을 긴 시간동안 마주하게 된다. 건축적인 구조물은 사람들에게 응시, 반영, 차가움, 불안, 낯설음, 즐거움, 따스함과 차가움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유일하게 색이 있는 LED 빛은 건축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 사이에 은은하고 섬세하게 존재한다. 빛은 벽과 닫힌 문, 응시의 거울, 칸막이 등으로부터 느끼는 인간의 불안과 소외 등 여러 감정을 감싸고 어루만지면서 이내 중세의 빛처럼 승화된다. 작가는 파사드의 물질들과 추상적인 빛, 그리고 인간 심리의 복잡한 관계들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이남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점점 발화하는 빛의 입자(partikel)들이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모여들어 어떤 사건이나 형상을 창조하기까지의 긴 과정을 보여준다. 어둠 속에서 오롯이 걸어 나오는 인간군상은 컴퓨테이션화된 미립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곧 흩어져 소멸되고 죽음 후 부활한 듯 다시 새로운 빛(광원)이 모여든다. 빛은 쪼개어지고 미립자들은 다시 빛과 같은 속도로 모여들고 연결되어 일렉트로닉 음악 혹은 음향과 함께 가공할만한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요동친다. 빛은 인간의 도시와 역사를 찰라와 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모였다 흩어지며 수많은 형상들과 사건들을 창조한다. 마치 디지털 창세기를 보는 듯한 느낌 주는 <다시 태어나는 빛>의 세계에서 빛과 어둠, 생성과 소멸, 역사적 트라우마와 환희의 판타지 등 극명하게 상반된 요소들은 빛의 빠른 속도로 경계가 무너지며 통합된다. 아마도 이를 지켜보는 눈은 디지털 세계를 주관하는 신 혹은 찰라의 시간으로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디지털 부처의 것이 아닐까?

    RGBst 회원들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우리는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과연 예술은 근본적으로 변혁을 맞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방가르드 미술사에서 보듯 진화의 연속이며 그 속도가 빨라진 것일까? 가상의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할지 아직은 상상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눈은 적어도 미래를 향해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 박현화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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