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삶의 잔편들로 ‘가치의 재구성’- 유지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0-12-23 14:32 조회2,045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유지원 <노동의 가치>, 2020, 폐지리어카 설치, 영상 사라진 삶의 잔편들로 ‘가치의 재구성’- 유지원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레지던시 결과보고전 ‘샛길-오아시스’ 온라인 전시 https://youtu.be/BRYWzk8v_9Q 요즘 세상 도처에 재개발이 끊이지 않는다. 묵은 삶과 낡고 헐어 빛이 바랜 살림은 번듯한 도회지 질서에 반한 듯 재단장 되어야 할 전근대적 폐기대상들이 되었다. 사라지는 것은 공허와 아련함을 남긴다. 오래토록 가족사를 꾸려왔거나 고향 떠나 이 도시 한 켠에 자리 잡고 현실사회에 동승하려 애쓰던 삶의 터전들은 가슴 속 추억과 누군가의 사진들로만 남게 되었다. 누구라도 그와 무관한 이는 없다보니 사라진 삶의 터전과 골목과 동네를 추억하는, 도시의 재개발을 소재로 삼은 시각예술 작업들이 꽤 많다. 유지원의 도시 재개발을 소재로 한 작업도 이 같은 시대적 공감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도 또한 시골이 고향인데다 대학 졸업 후 답답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의 출구를 찾아 2년간 일본생활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가 8년 동안 다시 공부하고 활동하다 지난해 돌아오기까지 10여년을 떠나있었던 입장이다. 더구나 수백 년씩 덧쌓이고 지속되는 유럽의 도시문화나 건축물들과 달리 짓고 없어지는 것이 순식간이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도시의 풍경이 급격히 바뀐 고국의 상황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그는 대학에서 세밀한 묘사위주 구상조각에 회화적 서사를 곁들이는 작업을 익혔고, 대안미술을 추구하는 신예들의 ‘그룹퓨전’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독일 유학 중 조형작업의 토대로서 다각적인 철학적 사유를 지도받고, 기존의 고정관념과 작업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모색들을 시도했다. 그 선례인 ‘아트 포베라 Arte Povera’ 활동을 참조하기도 하고 은유와 풍자가 깔린 개념적인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흐르지 않는 호수에 떠 있는 패널들 위의 자화상들을 한 화폭에 묘사하여 정체감과 번뇌를 드러내기도 하고, 진짜 사과는 썪어 가고 가짜만 남는 세상, 흙으로 빚은 것이긴 하지만 똥들이 잔뜩 깔린 전시장에 개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풍경, 남성근육 키트 완구들로 변질된 육신을 표현하는 등의 작업이 그런 예들이다. 그런 개념적 작업과는 전혀 다르게 폐기된 삶의 흔적을 찾는 유지원의 작업은 폐선 철로 퍼포먼스인 <예술가의 여정>(2015)에서 전환점이 만들어졌다. 쓸모없어져 방치된 도시 폐선 철로를 동료들과 함께 우거진 잡목들을 제거하며 끝 모를 여정을 계속하는 행위를 영상으로 담아놓은 작업이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 청년작가 셋이서 사전 각본 없이 현장에서 수집한 자재들로 이동용 단차를 만들어 타고 수없이 부딪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의 기록이다. 산업철로로 상징되는 도시 근대화의 현재 뒷 그늘과 함께 청년기의 불안정한 현실을 뚫고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향한 의지를 다지는 현실기반 행위영상이다. 화려하고 번듯한 새 것보다는 오래되고 낡은 것에 대한 유지원의 관심은 사라진 집의 흔적들을 조형화시켜낸 2018년의 ‘장식적 가치’ 연작으로 나타난다. 허물어진 벽체나 계단 같은 집의 파편들을 골판지로 재현하고 채색을 입혀 그 자체로 조형적 구성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파편들의 조합이면서도 유럽 주택들의 건물구조나 색채들과 함께 시멘트벽이나 모자이크, 벽지 등 갖가지 벽체 질감까지 더해져 사라진 본체를 대신한 삶의 잔편들이 특별한 가구조형물로 재탄생된 작업들이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뒤 유지원에게 달라진 광주의 모습은 당혹스러운 풍경이었다. 도심 공동화로 활력이 떨어진 원도심권이든 변두리 소시민들의 달동네든 오래 묵은 삶의 터전들은 재개발로 털려나가고 그 자리엔 예외 없이 고층아파트단지들이 장벽을 치고 들어선 진풍경인데, 계속해서 동네단위 주택지들은 사라지고 그 삶의 주체들은 무표정한 거대아파트 속으로 흡입되거나 낯선 어딘가로 떠나가고 있다. 도시 곳곳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지구에서 삶의 체취를 채집하는 유지원의 ‘흔적 수집가’ 활동은 설치와 영상작업으로 옮겨진다. 대형 유통점의 쇼핑카트를 끌고 철거된 재개발지구 폐허 속을 돌아다니며 개인이나 가족, 마을의 존재를 되짚는 흔적 찾기이다. 수집된 생활소품들과 함께 집주인의 삶과 세월이 배인 주택의 목재들을 모아다 목조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2019년 선보인 <Trace-(un)Building>인데, 뼈대만 남은 집 공간을 구성하고 거기에 전구와 요강과 선풍기, 난로, 깨진 기와 같은 채집된 오브제들을 들여놓고 낡은 TV 모니터로 재개발지구에서 채집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소한 소품이든 재조립된 건축구조이든 이를 통해 공허한 회상 속에 남겨진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내고, 개발의 그늘에 가려진 파편화된 도시생활사를 되비춰내는 것이다. 유지원의 재개발지구 채집작업은 마을과 집들의 흔적과 함께 그 공간의 주체인 인물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접근도 중첩된다. 그 매개고리이자 오브제인 폐지는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생업을 꾸려가는 일거리들이 되기도 한다. 버려진 폐지의 재활용은 현생의 주 무대 밖 노인들의 일상을 재활용하는 것이면서 수입원이자 소일거리로서 소박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최근 유지원은 그 폐지줍기를 노동투입 대비 시급으로 환산한 수치를 폐지설치물과 함께 <노동의 가치>라는 작품으로 사회적 의미를 들추어내기도 하였다. 유지원은 화려하고 산뜻한 현대문명 이면의 인간적 온기와 정겨움을 조형적인 작업으로 재활용해내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그것은 철거된 재개발지구나 집들에서 채집한 삶의 잔편과 자취들을 시각적 조형작업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그런 일련의 작업에서 다만 해체된 개개인의 가족사나 마을구성원들의 삶의 흔적과 온기를 되짚는 작업일지라도 그것을 채집하는 과정이나 발견된 오브제의 제시만이 아닌 ‘가치의 재구성’을 보다 독자적으로 특화할 수 있는 명료한 조형해석이나 변환도 필요하다고 본다. 세상의 소재들을 선택하고 집약해서 시각적 이미지의 구성미와 완성도를 높이는 창작의 숙성작업들을 기대한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유지원 <Trace-Collector>, 2019, 단채널 비디오 유지원 <Trace-(Un)Building>, 2019, 폐목재, 오브제, 영상 유지원 <장식적 가치>, 2018, 폐골판지에 채색 유지원 <탱크, 장갑차>, 2017, 폐골판지 유지원 <예술가의 여정>, 2015, 단채널 비디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