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려낸 ‘그 곳 그 숨’ - 이정록 사진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21-03-19 17:22 조회1,983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이정록 <Iceland 03-1>, 2019, C-type print, 120x160cm 빛으로 그려낸 ‘그 곳 그 숨’ - 이정록 사진전 2021.03.09.–06.27 / 광주시립미술관 사진전시관 작가들은 현상과 비현상계를 무시로 넘나든다. 그들이 직시하는 사실도 작품이 되면 이미 현실이 아니다. 그들이 열어주는 세상의 창을 통해 실재와 그 너머로 우리의 삶도 생각의 반경도 무한으로 넓혀진다. 감미롭거나 산뜻하게, 뭉클하거나 날카롭게, 감성과 감흥을 돋우기도 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지금 당장의 세상에서 그 너머나 바깥으로 이끌어준다. 이정록의 사진작업은 매혹적이다. ‘공간의 영적 기운’을 화두로 삼은 그의 작업이 ‘그 곳, 그 숨’이라는 이름으로 봄날의 황홀한 세계에 젖어들게 한다. 지독한 투혼의 작업과정을 거쳐 현상과 상상을 결합시켜낸 그의 작품세계가 광주시립미술관 사진전시관 초대전으로 3월 9일부터 6월 27일까지 연작주제별로 펼쳐져 있다. 짧게 짧게 무수히 반복되는 순간광들과 적요의 공간으로부터 긴 시간 스며드는 노출광을 함께 결합시켜내는 그만의 독특한 작업방식들이 현상세계의 실체에 그곳에 서린 신묘한 영적 기운을 담아내며 갖가지 신비로운 세계들을 연출해낸다. 장소와 소재와 순간광원인 플래시의 기호형체와 터트리는 위치구성에 따라 ‘Tree of Life’, ‘나비’, ‘LUCA’ 등의 주제로 창출되어진 사진들이다. 작가는 “공간은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은 카메라에 담지만 나를 전율케 하는 에너지는 찍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에너지를 시각화하기 위해 라이트 페인팅을 한다.”고 이버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화폭에 필요한 색감을 바르고 무수한 붓터치들을 모아 형상을 그려내듯 그는 머리 속 구상에 따른 위치를 찾아 허공에 연속으로 플래시를 터트리고 나무와 사슴과 빛을 칠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담아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광주시립미술관 김명지 학예연구사는 “이정록은 가시적인 세계 이면에 내재된 근본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비가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영적인 신비를 주제로 작업한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과 세계를 시각화하기 위해 수많은 도전과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형성하였다. 작가는 아날로그 대형포멧 4x5필름 카메라로 장시간 노출상태에서 플래시의 순간광을 필름 위에 중첩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든다. 이처럼 지속광과 순간광의 혼용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구축하였다. 또한 순간광으로 기호의 형상을 만들어 라이트 페인팅 기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등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매체와 질료적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정록의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연작은 ‘빛의 회화(Light Painting)’ 초기부터 오랫동안 지속해 온 작업이다. 이파리가 더 떨어진 앙상한 나무지만 신목처럼 상징성을 담아 가지가지마다 생명의 열매들을 빛으로 밝혀낸 것들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각성… 마른 나뭇가지가 품고 있는 생명력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다가 빛을 사용하게 되었다… 빛의 숭고함은 나무의 신령함만큼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원형이기도 하다.”는 작가노트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뭇 생명의 영적 기운들이 침잠해 있는 어둠 속에서 한 그루 나목에 떨어진 이파리들 대신 섬광 같은 빛의 열매들을 가득 채우고 나무 몸체에 빛을 칠해 그려낸 결과물들이다. 이정록 사진의 신비감을 극대화 한 ‘나비(Nabi)’ 연작은 ‘생명의 나무’처럼 신성이 깃든 소재로서 맥락은 유지하면서 훨씬 넓은 시공간의 풍경을 열린 화면으로 끌어들인다. 보이지 않는 기나긴 시간성과 영적 기운이 깃든 장소를 찾아 이런 신비감을 최대한 극대화할 수 있는 새벽녘 시간에 현장촬영을 진행하며 비가시적 에너지들을 담아낸 것들이다. 제주 바닷가나 한라산, 산티아고의 순례길, 터키의 이슬람 사원, 아이슬란드 차가운 땅 이끼 낀 침묵의 땅 등 작업주제에 맞는 곳을 찾아 귀하게 선택된 장소들은 작가와의 내밀한 교감과 조응을 통해 정신계와 접신이 이루어지면서 신묘한 풍광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의 ‘나비’ 작업에 대해 이정록은 “밤과 낮이 섞이고 빛과 어둠이 부드럽게 엉키는 시간이 오면, 깊고 그윽한 공간의 에너지가 서서히 그러난다. 그러면 나는 그 신비로운 순간의 에너지를 필름에 가득 퍼 올린다… 찰나의 빛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에너지 그 자체로 내 작업의 핵심 도구이자 주요한 상징이다… 빛에 의해 태어난 나비는 동양에서는 영혼을 상징하며, 우연히도 히브리어로 Nabi는 선지자를 의미한다…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대지와의 깊은 교감, 그 숭고한 체험을 시각화했다.”고 쓰고 있다.(2018 ‘나비’ 작가노트 중)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최근 신작들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는 한라산 백록담에 얽힌 흰사슴 전설을 소재 삼은 작업이다. 한라산 신선들이 흰사슴을 타고 다니다가 산정호수에서 물을 먹인다는 등등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설을 시각화시켜낸 것이다. 피안의 이상향일 수도 있는 이 설화와 연관 지은 ‘LUCA’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하나의 조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정록은 신비의 상징인 사슴형상 주변에 수없이 플래시를 터트려 빛무리를 뿌리고 ‘생명의 나무’ 작업처럼 사슴몸체에 빛을 칠해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내었다. 기계적 기술에 의한 C.G와는 전혀 다르게 작가의 영감과 상상력을 치밀한 계산에 의해 긴 시간 수작업 중첩촬영으로 이루어낸 노작들이다. 이정록은 오래전 시골 들녘이나 바닷가 또는 호수 등 자연풍광을 소재로 실사작업을 계속할 때도 ‘신화적 풍경(Mythic Scape)’이라는 연작제목을 붙였었다. 작품제목처럼 초기부터 눈앞에 펼쳐진 외적 풍광만이 아닌 그 곳에 깃든 자연 생명세계와 응축된 기운을 담아내는데 관심을 두어온 것이다. 그로부터 꾸준히 이어진 ‘빛으로 그려낸 생명의 기운’ 작업들은 실재하는 시‧공간 너머 현세와 상상계의 경계가 모호한 신화적 세계에서 자연만물의 혼을 부르는 영매의 접신행위처럼 보인다. 지금 시대는 현상계와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 무수한 온‧오프라인의 연결망들이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번 이정록의 ‘그곳 그 숨’ 사진 전시는 정작 그런 전자기술과 인공지능 등으로 채워질 수 없는, 사유조차 사라진 ‘근원적인 세계에 대한 환기와 각성’의 시간을 공감해보는 전시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이정록 <Tree of Life on the Wather>, 2020, 동영상 8분 6초 이정록 <Nabi 128>, 2015, C-type print, 120x160cm 이정록 <Santigo 15>, 2019, C-type print, 90x120cm 이정록 <Iceland 14>, 2019, C-type print, 90x120cm 이정록 <Iceland 12>, 2019, C-type print, 120x160cm 이정록 <Santigo 01>, 2019, C-type print, 120x90cm 이정록 <LUCA 15>, 2021, C-type print, 120x160cm 이정록 <LUCA 31>, 2021, C-type print, 152x120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