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진의 회화 ; 존재의 부재가 들려주는 이상한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영재 작성일21-11-05 11:58 조회1,859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유선진 <사랑>, 2020 유선진의 회화 ; 존재의 부재가 들려주는 이상한 이야기 이 글은 2021년도 [대인예술곳간 묘수-3기 작가 현장 크리틱] 중 10월 22일 진행된 유선진 작가에 대한 고영재 큐레이터의 비평 요지로 작가이해를 넓히기 위해 공유한다.(편집자 주) 긴 호흡의 생의 한 가운데에서 삶의 유한함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는 언제일까. 안타깝게도 익숙한 존재가 부재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그 부재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낯선 사건으로 여겼던 죽음이 내 가족, 혹은 주변인의 생을 잠식하는 순간 남겨진 자들은 외려 그 죽음 너머의 현재를 응시하게 된다. 보통 인생의 초년기라 일컫는 이십대에 지인들의 죽음을 연달아 겪은 유선진은 화폭 안에 자연스레 삶과 죽음을 담게 됐다. 의식에 깊이 각인된 슬픈 경험을 풀어 놓을 수 있는 방편이 그림이었을 게다. 작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붓을 들게 되었다. 졸업 이후 근 4년간 그가 서술해온 이야기는 죽음 자체라기보다는 죽음과 연관된 살아있는 삶에 관한 것들이다. 올해 치러진 첫 개인전에서 유선진은 이웃(The Neighborhood)이라는 주제로 그동안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다가오는 이웃이라는 테마는 죽음이 나와는 먼 개념이 아님을 반증하는 의미이자, 존재의 소멸에서 도리어 살아감의 힘을 길어 올리는 일종의 생과 사의 변증법적인 표현으로 읽혀진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상징물은 단연 옥수수이다. 주요 작물을 심고 난 뒤에 밭의 가장자리와 같은 잉여 공간에 쉬이 심게 되는 옥수수는 별다른 관심 없이 잘 자란다. 사회적인 가치로 고려할 때 기근의 고통을 달래주는 구황작물이자, 산업화된 농업의 대표 작물로서 의외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쳐온 존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나름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소외된 존재에 시선을 둔다. 개개인의 삶처럼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는 하나의 상징물로써, 더불어, 열매를 수확하면 이내 그 생명을 다하는 대상의 극적 속성에 집중하며 옥수수를 작품의 주요 조사(助詞)로 착안하게 되었다. 구불거리면서 멋지게 쭉쭉 뻗어 있는 이 한해살이풀은 언뜻 우리의 삶과 닮았다. 생과 사의 순환 속에서 얻게 되는, 단순히 희망으로 치부하기에는 성격이 다른 삶의 기묘한 의지 따위가 유선진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다. 작가는 작품 <위장>에서 슬픔을 억누른 채 아무렇지 않은 듯 현실 안에서 나를 치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한다. 고개를 쳐든 뱀처럼 보이는 암녹색 옥수수 잎이 핏빛 붉은 땅 위에 자리하며 부자연스러운 생명력을 과시한다. <바람은 공평하다> 연작에서는 공기의 흐름이기에 산자에게도 망자에게도 똑같이 불어오는 바람을 나타낸다.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면, 화면 안의 모든 존재가 바람에 일렁일법한데도 혈색이 없는 망자에게는 그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떠나간 개체가 남은 개체들에게 끼치는 의외의 얽히고설킨 영향력, 혹은 일상의 무수한 변화가 산 사람만이 인지할 수 있는 바람의 형태로 함축된다. 위령제의 의식이나 장례의 어느 한 순간으로 보이는 <의식 _ 남겨진 자들>에는 승무의 고깔을 쓴 여인들이 운구 행렬의 자세를 취한다. 지고 있는 푸른 숨결은 바람에 흩날리며 생동하고, 단정한 머리칼의 산자들은 도리어 그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형국이다. 작가의 표현대로 죽음은 망자보다 남겨진 자들의 생에 더욱 강렬하게 따라 붙는다. 유선진의 화폭은 연극의 한 장면과 같은 서사적 구조와 함께 두드러지는 필선과 어두운 원색으로 구축된다. 곳곳에 유의미한 상징물의 배치와 더불어, 정면성의 원리처럼 부자연스러운 동세의 인물들은 화면 안에서 일련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만의 회화세계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서사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이미지나 대상 자체로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제 작업의 도입기이기에 기존의 서사성과 상징적인 틀을 유지하며,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더욱 밀도를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의 순리대로, 쏟아낼 만큼 쏟아낸 후에야 그 안에 내제된 에너지는 의도치 않게 내공이라는 이름으로 축약될 수 있을 터이다. 유선진은 본인의 작업이“기억하는 행위, 죽은 자에게 육체를 부여하는 행위”가 되기를 바란다. 죽음으로 인해 우리 생이 더욱 압도적인 것이 될 수 있기를, 종국에는 죽는 그날까지 모두가 잘 살아내기를 원한다. 그가 작품 <As one body>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죽음과 삶은 인생의 한 선상일 것이다. 작가적 바람대로 유선진만의 기묘한 그림이 보는 이에게 살아있는 감각으로 온전히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고영재 (독립큐레이터) 유선진 <바람은 공평하다 1>, 2017 유선진 <바람은 공평하다 2>, 2020 유선진 <의식_남겨진 자들>, 2020 유선진 <꽃은 떨어져 온 땅을 붉게 덮었구나>, 2016 유선진 <위장>, 2019 / <As one body>, 20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