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신화’ ; 터전에 관한 긴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2-08-03 16:59 조회1,804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여성과 신화' 기획전에서 이연숙 전시 ‘여성과 신화’; 터전에 관한 긴 이야기 2022.07.23.-10.09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가부장 사회에서 가족 윤리, 모성의 역할과 여성성의 개념은 현대에서 가족형태의 다원화, 변화된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모성성에 대한 재고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모성 신화는 모성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요즘 영화가 보여주듯 어머니는 결코 육아를 책임지는 ‘끝없는 희생’의 전통적인 역할이 아니다. 때로는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의 화신으로 때로는 죽음을 부르는 공포의 어머니로 현현하면서 모성 신화는 탈신비화 되고 공포의 권력을 지닌 새로운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공포의 모성 권력은 가부장사회의 법과 윤리를 흔들며 끊임없이 균열을 일으킨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 속 원형들과 땅과 바다 혹은 공중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벌이는 신들의 세계는 이성과 광기, 의식과 무의식, 실재와 환상, 그리고 기억과 망각 혹은 잠재된 기억을 지닌 남성주체의 자아가 기거하는 거대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여성과 관련된 서사를 전개시키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이 남성주체의 공간임은 마찬가지이다. 신화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남성성의 공간은 강인한 하드바디의 영웅 서사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카운터 타입의 부드러운 여성적 남성성으로 보존되기도 한다. 18세기 말 혹은 19세기 무렵 라파엘전파나 후기 신고전주의 그리고 뒤 이은 낭만주의 회화에 나타난 남성신들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그 예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남성동성사회적(male homosocial) 신화의 공간 아래 잠재된 상태로 묻혀 있는 여성 개인의 서사는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까? 여성 예술가는 어떤 언어나 형상으로 얼음같이 차갑고 날카로운 터전 위에서 그녀들의 시간들을 일깨워 망각된 기억을 소환하고 새로운 신화를 생성해내고 있는가? 이번 초대전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특정장소로 불러내어 선형적 기억을 뒤섞거나 대상의 경계에서 안과 밖을 전도시키면서 그 잠재태를 독특한 형식으로 재현하고 있는 두 작가를 초대하여 여성 자신의 자아 공간으로서 기록되고 있는 신화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연숙은 비닐봉지, 재개발로 폐허가 된 집터, 숟가락, 나무, 계피향, 빗소리, 깃털과 같은 하찮고 가볍고 연약한 것들을 모티프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장소로 소환하여 다시 새롭게 직조하는 작업을 한다. 그녀에게 기억이란 “제 각기 둥둥 떠다니다가 여기저기 붙어가면서 다른 기억으로 재조합되는 것처럼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찮은 하류들을 통해 마술처럼 소구하는 기억의 지점은 또 다른 잠재태의 시공을 일깨워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점점 확장되다가 이내 특정적 장소를 가득 채우는 서사를 생성해낸다. 하지만 새롭게 쓰여진 이야기는 결코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녀의 모티프들은 개인의 향수를 넘어 사회의 지형학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군에게 학살된 매향리 민간인, 제주 4.3 사건, 광주 5.18의 역사와 맥이 닿으면서 잊혀진 죽음과 상처에 대한 제의와 치유의 윤리로 전환된다. “왜 나는 과거의 시간과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는가? 오래전 계획한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장소에서 경험한 감각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와 타인에게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 내가 경험한 시간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구현하여 가상현실이 아닌 실재와 기억 사이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었다.” - 이연숙의 작가노트 중 이피의 신화세계는 남성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의 관계망들을 탈주하는 수많은 상상의 도상 조각들이 언어가 되어 만다라, 혹은 단일한 하나의 우주(모나드)의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녀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초현실적 도상들은 유동적이어서 결코 사로잡히지 않지만, 어느 곳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녀의 언어는 ‘사이’의 공간에서 비로소 살아남은 여성적 기표이기 때문이다. 몸의 내부와 외부가 뒤집어져 유출되는 덩어리, 눈물, 내장, 거울의 앞면과 뒷면의 사이, 혹은 껍데기와 내용이 전도된 사물이 바로 그녀의 터전이다. 이 통로의 메카니즘 덕분에 그녀의 몸(자아)은 현실과 함께 소외된 사회적 타자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온갖 환상적 형상들이 살고 있는 이피의 신화는 그러므로 자아와 타자 그리고 현실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다수의 미술에서 탈주하기를 꿈꿔왔다. 권력 있고, 관계망 있는 다수 집단의 연결망 바깥에 있는 내 모습을 내 손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처럼, 세필의 가느다란 선들로 그린 나의 회화 작품들로 확인했다. 나는 나의 동반자들인 이런 여자들을 그린다… 여성들은 왜 이 비현실계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현실에서는 도움을 받을 터전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다수가 아닌 소수자로서의 여자의 탈주를 여성신화에서 배운다. 그리고 현실을 탈주한 그 비현실계의 자리가 또 다른 소수자의 터전이라는 것을 나의 조소 작품을 제작하면서 생각한다.” - 이피의 작가노트 중 신화에서 그녀들은 ‘과거와 현실을 잇는 시공’의 통로 혹은 대상의 ‘안과 밖 사이’라는 결코 정복된 적이 없는 특별한 공간을 헤엄치며 재조합되는 기억과 사건을 관장하는 매혹적인 여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두 작가 모두 보편적인 인류의 새로운 질서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아버지의 법’이 아닌 실재적이고 여성적인 윤리를 제시하는 데 있다. - 박현화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장) 이연숙 <할머니의 부엌>, 2020,_나무, 설탕, 소금_가변설치 이연숙 <상상 (相廂)>, 2020,_판화 이연숙 <토끼굴에 빠지다-다섯 이야기들>, 2019, 혼합재 설치 '여성과 신화' 기획전에서 이피 전시 이피 <나를 먹는 나>, 2022, 혼합재료, 120x80x155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