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3-03-10 12:24 조회1,39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박일정 <목인(木人)의 춤>, 2023, 도자, 나무, 643×285×148cm,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상실의 캡슐로서의 전통’ 2023.2.11.-5.7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현대미술에서 향수적인 패티시의 한 형식으로 오래된 전통의 소환은 단순히 그리움의 대상을 불러오려는 욕망을 넘어 우리가 잊어버렸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류학적인 기억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이 ‘전통의 캡슐’은 과거의 역사와 현대를 잇는 다리에서 인간이 보존해온 풍경과 이야기와 상실한 것들을 소환하면서 화려한 현대문화의 외양을 걸쳐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부활하기도 한다. 동시대 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분청기법과 책가도(冊架圖) 혹은 책거리 형식의 작품들이 과거의 캡슐을 열어 현대의 새로운 해석을 부가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 캡슐이 현대라는 다리를 넘으면 책가도의 책가(冊架)는 그 캐논이 변주되어 건축적인 프레임이 되기도 하고 장식적인 정물들은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와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분청은 도자의 표면을 장식하는 역할을 넘어 원시적 샤머니즘의 세계나 지난 기억들과 그리움의 내러티브를 표현하기도 한다. 기억을 담는 책가도, 책거리 홍경택은 책가의 격자 안에 책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시각적 재현을 통해 주체의 소우주를 구현하는 책가도의 전통을 흥미롭게 현대적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세계를 책가의 격자에 담고 있는 작가의 ‘눈’은 강박적이라 할 만큼 매우 세밀하고 집요하며, 그의 책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물들의 표면은 방금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처럼 매끄럽고 불멸할 것처럼 반짝거린다. 그의 우주는 수평과 수직의 이원적 세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운동하는 이중적인 구조에 대해 그는 수평의 구조는 자연과 종교에 대한 메타포이며 자상한 어머니인 동시에 난폭한 아버지를 의미하고 수직 구조는 문명이나 과학의 힘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유혜경의 책가의 형태는 건축적인 프레임으로 확장되어 있다. 주체의 실재를 대신 했던 책가도의 형식은 사람들이 놀이를 즐기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건축적인 수평과 수직의 구도는 자연과 문명의 경계라기보다 상반된 두 세계를 공존 가능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유혜경의 격자는 규율이 아니라 자유로운 유희의 공간이다. 무한한 공간을 지니게 된 그녀의 책가(건축물)에는 준법으로 덩어리진 산들이 창문을 통해 바다처럼 흘러 들어오고,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날개 달린 제강(淛江)이 둥둥 떠다니며 개미처럼 작은 인간들이 이 공간 속을 소요하고 있다. 나오미는 무대를 구현했던 스펙터클한 시공이 촬영을 마치면 모두 사라져버리는 상실을 복원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현실과 허구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면서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재현 공간으로서 회화의 평면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책가도의 책가 구조와 병풍 형식에 주목하였다. 격자 형식의 책가와 접목 형태의 거대한 병풍 구조는 스테레오 카메라 혹은 디오라마적인 다시점의 입체 이미지 구현이 가능하며 또한 설치미술로서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책가도는 근현대 역사와 설화, 그리고 원초적이고 초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 등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이 동시적으로 굽이치며 역동하는 대서사로 확장된다. 서유라는 책가도의 오브제 중에서 책 그 자체에 주목한다. 전통적인 책가도에서 책들은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진 서갑더미 속에 갇혀 있지만 작가의 책더미는 책의 표지 텍스트와 장식, 이미지들이 공존하면서 미술사, 음악,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등으로 범주화된 세계의 오래된 지층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극사실적인 재현의 기법에 디테일한 책의 제목이나 이미지는 하나의 매체로서 책 속의 보이지 않은 텍스트와 이미지들을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이며 이는 서사의 바다로부터 이슈와 정치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서술적 풍경으로서의 분청 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반덤벙 기법이나 귀얄문은 우리나라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분청도자 형식이다. 현대 공예, 혹은 미술의 세계에서 분청은 청화문이나 철화문, 그리고 무안분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귀얄문(돼지꼬리나 빗자루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슬어내는 기법)등에서 보여지는 자유로운 선이 회화적인 기법과 결합하여 도조, 설치, 평면 등의 형식으로 공예와 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양하게 변용 중이다. 김문호는 사찰이나 탑 형식의 기물에서 건축적인 덩어리감이 바람이나 파도와 같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 일으키는 운동감을 분청기법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작가는 영산강과 서해바다의 높고 낮은 파도로 둘러싸인 무안 반도의 자연과 자신은 합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철저하게 무안의 거칠은 태토와 나지막한 구릉에서 자라는 소나무 장작불로 작업한다. 주변의 목우암이나 탑을 재현하고 있는 그의 작품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두꺼비나 돼지머리 이야기는 마치 픽쳐레스크한 영국식 정원처럼 자연스럽다. 토박이 작가의 도자세계는 서해 남단의 지형과 사람 그리고 분청 도자의 역사를 담은 하나의 아카이브라고 볼 수 있다. 박일정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역사를 이야기 한다. 그는 다양한 색조의 분채 기법으로 재현된 만물의 형상을 나무로 된 ‘풀다리’나 ‘무지개다리’ 위에 설치하는데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자연과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연극처럼 느껴진다. 각양각색의 모양을 지닌 만물의 형상은 모두 솟대처럼 승천하듯 나무다리에 매달려 있는데 이 설화의 무대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이내 신목이 되고 수많은 형상들은 만신이 되어 우리를 원시적인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윤신의는 분청과 태토의 성질, 혹은 불의 조화에 따른 다양한 변화를 이용하여 산이나 언덕, 바다 등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시키고 있다. 때로는 기둥에 바람이나 물의 흐름 혹은 작은 풀이나 곤충의 흔적을 담고 있는 화석처럼 유기적인 세계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은 무안 분청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본연의 세계, 즉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인 사건의 결과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 정인혜는 검정색 태토로 만들어진 다양한 정물에 여러 겹으로 분청을 입혀 과거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밀하게 빚어진 공, 수영복, 물갈퀴, 바퀴 달린 목마 등 정물의 표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분청은 순식간에 시간을 되돌려 지나버린 작가의 과거 일상과 기억 속의 정물로 변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회색빛 정물의 표면을 감싸고 있는 분청은 사라져버린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가져와 정물로 고정시키는 작업, 다시 말해 상실된 것들의 기록을 위한 매체라고 볼 수 있다.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박현화 관장의 전시 기획글에서 발췌함 홍경택 <서재-주호>, 2016, 천에 아크릴, 유채, 72.7x91cm,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유혜경 <진경(眞境) 책가도>, 2023, 장지에 채색, 340x360cm,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나오미 <시대의 초상>, 2017, 순지에 분채, 180×180cm(2폭),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서유라 <Vintage books>, 2014, 캔버스에 유채, 50x50cm 2폭,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김문호 <달항아리>, 월선토, 덤벙,귀얄기법, 장작가마 소성,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윤신의 <기억을 담다>, 2020, 적토, 화장토, 분청기법, 47×100×13cm,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정인혜 <겹으로 쌓인 기억>, 석기질토, 고화도 유약, 코일링, 1230도 산화소성,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사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