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작가의 ‘역사와 동시대성’-산수미술관 기획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인호 작성일19-03-01 13:53 조회2,52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아홉작가의 ‘역사와 동시대성’-산수미술관 기획전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과 미술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산수미술관이 특별전을 기획했다. ‘동시대미술, 역사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강운, 김상연, 김유섭, 송필용, 이매리, 정광희, 정영창, 조정태, 황중환 등 중견작가 9인을 초대하여 3월 1일부터 29일까지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장민한 관장(조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는 “역사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일어난 역사’와 ‘쓰여진 역사’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역사가가 일어난 사건 자체의 인과관계에 관심을 갖는다면, 동시대 미술가는 그 사건을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지에 관심을 갖는다… 동시대미술은 미적인 양식의 창안이 아니라 타자와의 소통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이번 참여작가들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들 중 몇몇 작가는 세상을 꿰뚫는 통찰을 다양한 매체와 양식으로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넓지 않은 전시장에 각자 1점씩을 내건 작품들은 그 담고 있는 의미내용이나 표현형식에서 각자의 세계들로 서로가 별개이면서 그로 인한 무게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2월 28일 오후 전시현장에 둘러앉아 개막행사로 이루어진 짧은 대화들에서 자기 출품작과 그런 역사와 동시대성에 대한 생각들을 얘기 나누었다. 3.1절 기념 기획전이라는 전시 성격에 맞춘 조정태는 <검은 깃발>이라는 붉은 바탕 캔버스에 태극기를 그리고 그 위에 독립선언서를 필사해 넣었다. 식민잔재의 끈질긴 질곡으로 오염된 태극기는 한 귀퉁이가 타들어가고 있는데, 그 아래 짖이겨진 독립열사의 두상과 빈 의자, 수북이 쌓인 유인물들로 화면을 구성했다. 때 되면 의례적으로 잠시 수선스럽다 사라지는 반복되고 박제화된 역사가 아닌 진실된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서 그림이고자 했다 한다. 김상연은 <영웅 시리즈-안중근> 입체판각을 출품했다. 영웅 이전의 안중근을 그의 손모양으로 추념하면서 지혜로운 삶의 사유를 나무에 글자를 새기고 먹과 흑연으로 검은 침묵으로 형상화하여 날개달린 인물판각과 함께 구성해 놓았다. 보편적인 손의 형상을 빌어 복합적인 심중이었을 그의 비장함과 묵묵한 과업의 수행을 되비춰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사건을 그리는 순간 과거는 다시 현실로 소환된다.”는 정영창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 가운데 죄수번호가 매겨진 수의를 입고 미소를 띤 <김재규>의 당시 신문기사 사진을 검은 그림으로 옮겨냈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평가도 일치되지는 않는 한 인물을 통해 역사인식에 대한 묻고 답하기를 유도하는 것이다. <철책단상>을 출품한 강운은 최근 GOP방문기회를 가지면서 33년 전 혹한 속 그곳 경계근무를 서던 당시가 오버랩 되는 경험을 처연한 비극적 조형미로 풀어내었다 한다. 이를 위해 캔버스에 콘테와 유화물감을 이용해 가시덤불 같은 철책선을 사실묘사하고 그 선들이 엷게 번지는 효과를 주어 시간의 흐름 속 두 지점 간의 시차와 현재의 흐릿한 현실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송필용은 ‘폭포’ 연작의 하나인 <역사>를 출품했다. 파열하는 폭포 물줄기가 강조되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화폭에서는 굵고 거친 텃치들을 중첩시켜 폭포아래 바윗돌을 강조시켜 놓았다. 폭포수 같은 세상의 수많은 외압과 자극과 상처들 속에서도 반석처럼 굳건히 버티고 있는 근본이자 소소한 것들의 결집으로 이루어진 존재 자체에 대한 성찰의 상징이다. 구체적 형상언어로 주제의식을 드러낸 이들과는 달리 몇 작가는 함축과 상징과 은유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매리는 <Poetry Delivery 190301> 검은 화폭에 일정한 간격으로 황금색 점들을 배열해 놓았다. 그 점들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담신 그의 시대정신과 조국·민족의식을 이 시대에 배달하는 기표이지만, 세상의 무수한 언사들로 그 글과 뜻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을 빗대고 있기도 하다. 언어의 생성과 소멸의 경계를 그리고자 한다는 정광희는 입체 한지 먹작업 <자성의 길 5>을 출품했다. 한지 화폭에 한지를 말아 먹을 묻힌 토막들을 고른 간격으로 붙여 음영의 변화까지 입체효과를 낸 작업이다. 문자의 해체와 왜곡, 난독 이미지를 통해 문자 이전 또는 세상의 언어로 드러나지 못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사실들을 형상화하였다. 거친 붓질들이 덧쌓인 비형상의 검은 침묵의 화면을 보여주는 김유섭의 <두 빛>은 역사와 존재에 대한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자문을 담고 있다. 변화의 연속인 듯한 역사이지만 정작 변한 것 없고 되돌아가기만을 반복하는 세상에 대한 은유이자, 보여지는 빛과 스며 있는 색들의 함축으로 세상과 역사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일간지에 만화로 시사를 얘기했던 황중환은 이번 전시에도 만화형식이 가미된 <Sailing>을 출품했다. 푸른색조 화면에는 초승달과 별무리들이 떠 있고 강줄기를 거슬러 오 르는 쪽배가 묘사된 그림이다. 구름너머에도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 있듯이 일시적인 세파와 우회 속에서도 물과 별과 민중과 영속되는 존재들을 세상 역사의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한다. 역사와 동시대성은 인과관계이면서 거대담론과 개별역사들의 총체이기도 하다. 한 시대 한 사건에도 무수한 사실들이 엮이고 모여져 있듯 역사도 현재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함께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의 기록과 전수도, 개인의 사고나 성찰도, 예술적인 반추와 해석과 발언도 무수한 개체들이 뭉쳐져 큰 흐름을 만들어가듯이, 시대의 담론과 개별 존재·사실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서 역사인 것이다. -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