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비, 마른 언어’ 신호윤 이지현 초대개인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현화 작성일22-05-20 20:46 조회2,241회 댓글0건 관련링크 이전글 다음글 목록 본문 신호윤 <마른 비>, 2022, 종이커팅 설치. 500x10cm, 480pcs ‘마른 비, 마른 언어’신호윤 이지현 초대개인전 2022.05.04-07.17 /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주체가 한 눈으로 소실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풍경과 건물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절대적 공간을 형성해냈던 원근법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라는 시각중심적인 사고였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생각은 계몽주의나 데카르트 형식주의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19세기에 이르러 사진기, 현미경, 활동사진, 망원경 등의 광학기구를 발명하도록 만들었고 이로부터 얻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점차 기술(언어)중심의 역사를 대신하는 ‘이미지 전환의 시대’를 이룬다. 하지만 이와 다른 흐름도 존재한다. 광학기구나 해부학의 발달로 인간의 눈이 보지 못한 세계, 즉 피부 아래 숨어 있는 신체의 비밀을 밝혀내는 의학적 접근이나 전투기에서 조망되었던 전쟁의 참혹한 광경은 유토피아 대신 죽음의 트라우마를 안겨주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시각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하여 시각중심의 사고를 반성하거나 이에 저항하며 다른 지각이나 신체를 통한 경험을 중시하는 현상학이 나타났다. 또한 시각은 ‘보는 눈’(eye)과 보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응시’(gaze)로 분리되고 이 ‘응시’는 권력이나 자본과 연계되어 모든 사회적 관계로 확장된다. 미술사에서도 절대적 공간에 시간이 들어오게 되면서 재현 중심의 체계가 무너졌다.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어 큐비즘이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아방가르드 그리고 1960, 70년대 모더니즘의 역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곡점을 만들어냈던 상황주의 인터내셔날(SI, Situationist International)에 이르기까지 명백한 반시각적 흐름이 존재했다. 현대 포스모더니즘의 해체와 전복의 전략 역시 이러한 반시각적 담론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번 오승우미술관 초대전은 이처럼 시각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의 이면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소위 ‘반망막적 미술가’인 신호윤, 이지현작가가 초대되었다. 신호윤은 정교한 문양이 레이저 컷팅된 5m 30cm에 이르는 붉은 종이띠로 천정에서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마른 비’를 내린다. 마치 제논의 화살처럼 작가는 지속되는 액체성의 빗줄기를 종이라는 가변적인 물질로 변환하여 정지시키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관객들은 종이로 물질화된 ‘비와 비 사이의 공간’을 걸으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눈’ 대신 ‘신체’로 경험하게 된다. 빈 공간은 죽음과 상처, 고통의 기억에 대한 치유의 장소를 의미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기를 의도하고 있다. 이지현은 신문이나 성경, 고전문학 등의 책에 인쇄된 텍스트를 날카로운 도구로 수백 번의 행위를 통해 해체하여 공허한 종이뭉치로 만드는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주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옷의 기호들을 해체하여 한갓 천이라는 물성으로 변화시킨다. 책이나 옷의 기호를 뚫는 행위는 대상에 대한 작가의 적극적인 해석을 나타내며, 결과적으로 물질이 지닌 고유한 빈칸과 접힌 면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제시하게 된다. 텍스트를 무화(無化)시켜버린 작가의 ‘마른 언어’는 의미 대신 너덜너덜해진 종이의 물질성을 감지하는 촉각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대상의 표면에서 그 내부로 안내하게 되는 것이다. 두 작가는 공통으로 가볍고 연약하고 가변적인 종이를 소재로 해체와 전복, 표류와 역설의 비유를 통해 비가시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끌면서 존재 혹은 실존의 무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박현화 (무안군오승우미술관 관장) 신호윤 <마른 비>(부분), 2022, 종이커팅, 500x10cm, 480pcs 신호윤 <마른 비>(부분), 2022, 종이커팅, 500x10cm, 480pcs 이지현 <022MA04001_dreaming book-Clothes Project>, 2022, 책뜯다, 옷만들다, 420x570x380cm 이지현 <022MA04001_dreaming book-Clothes Project>(부분), 2022, 책뜯다, 옷만들다, 420x570x380cm 이지현 <022MA04002_dreaming book-Library project>(부분), 2022, 책뜯다, 247x256x172cm 이지현 <022MA04010_dreaming book-bible>, 2022, 성경책 뜯다, 20x28x11c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